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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존의 희망여행

[존의 희망여행]

 

 

 

그는 갑자기 잠에서 깨었습니다. 매년 이맘때 연어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그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잠결에 쏴 하고 물을 가르는 시원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다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일 년 전 자신이 사람의 엄지손가락 만 했을 때 연어가 돌아오는 때가 되자 부모님들이 자신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연어들은 거칠게 상류로 올라간단다. 휩쓸렸다간 뼈도 못 추리지.”

그러곤 일주일을 꼬박 바위틈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는 일주일이 채 끝나기 전 한참을 온 강을 휘저어 놓았던 거센 물살소리가 차츰 잠잠해 질 무렵 몰래 바위 밑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밑은 연어들이 휘저어놓은 덕에 뿌옇게 먼지가 떠올라와 있었고 간간히 연어에게서 떨어져 나온 비늘이 반짝이며 자신의 살결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저쪽 바위틈으로 자신보다 20배는 커 보이는 연어 한 마리가 배를 드러내며 누워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심스레 그는 옆으로 다가갔고 아가미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연어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물살을 가르고 올라왔을 지느러미 근육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비늘이 떨어져 나간 배와 등에는 맨살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어이 꼬맹이. 여기가 어디지?”

갑작스러운 연어의 질문에 놀라 그는 수초 뒤로 숨고 말았습니다.

겁쟁이 민물고기로군

연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겁쟁이라는 말이 부끄러워 한 발짝 다가갔지만 지느러미가 후들거려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이름은 존이야.”

연어는 다시 작은 민물고기인 존을 바라봤습니다.

그러고는 자꾸만 뒤집어지는 배를 간신히 바로 하더니 그는 존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난 데니안. 헤이 존, 여기가 어디지?”

여긴 디오네강 중류지. 근데 넌 어쩐 일이야? 어쩌다 그렇게 됐지?”

데니안은 존의 이야기를 듣고 낙심한 듯 바위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중류라고? 아이구, 이걸 어쩌지?”

존은 연어의 이름이 데니안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의 처지가 왠지 안쓰러워 졌습니다.

데니, 내가 도와줄까?”

존의 말에 연어는 예의 바른 인사를 했지만 그의 눈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쉬고 기운을 차려서 나는 다시 떠나야 해. 우리는 강의 상류로 가야만 하거든.”

존은 기어이 다시 일어서려는 데니안의 지느러미를 붙잡았습니다.

안돼! 데니. 지금 움직이면 죽을지도 몰라. 여기 내가 사는 이곳도 좋은 곳이란다. 먹을 것도 많고 다들 친절해. 여기서 같이 산다면 좋을 텐데.”

존은 덩치는 크지만 예의 바른 데니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잘 말한다면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을 가르는 연어들의 힘찬 퍼덕거림이 들리지? 나는 그들과 함께 가야해. 그것은 내 운명이란다.”

운명? 삶이란 말이야?”

. 이 여행은 내 삶속에 포함돼 있는 거야. 내가 태어난 아름다운 곳에 내 아이들을 다시 자라게 하는 것이지. 어머니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에 나를 낳아 기르신 것을 우리는 평생 생각하고 살아. 우리는 일생을 떠돌아도 마지막엔 어머니가 우리에게 그랬듯이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우리도 아이들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다시 돌아오는 거란다.”

존에게는 어려운 말이었지만 왠지 숭고해 보였습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뭐가 있지?”

연어는 힘이 드는지 눈을 감고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용한 숲으로 둘러싸인 깨끗한 골짜기가 있어. 봄이면 아카시 나무에서 떨어지는 꿀을 먹을 수도 있어. 누구도 포식자 행세를 하지 않아. 우리는 종에 관계없이 친구가 되지.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곳에서는 그렇게 살게끔 질서가 잡혀있어. 그래서 목숨을 걸고 올만한 곳이지.”

연어의 말을 들은 존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연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존은 데니에게 얼마간의 수초를 뜯어다 주었으며 상처 난 곳이 잘 아물도록 약도 발라 주었습니다. 두 어 시간 뒤 데니는 기운을 차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잘 있어 존.”

잘 가 데니.”

서로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다시 보자는 인사는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부디 네가 찾는 아름다운 곳에 도착하길 바라.”

존은 힘차게 물질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니의 뒷모습을 보며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존이 기다리던 연어 떼의 움직임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존은 정든 디오네강 중류를 떠나 연어와 함께 올라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비록 정이 든 고향이지만 이곳은 더 이상 깨끗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봄, 가을이 되면 낚시를 하러 찾아왔고, 언젠가부터 난폭한 포식자인 가물치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나고 자란 형제들도 다 죽었고 존은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존은 다 자란 어른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지느러미 옆으로 멋진 둥근 반점도 가지게 되었고 몸의 길이도 20cm가 다 되어 갑니다. 자신의 아이를 가지는 때가 오자 존은 깊이 생각 했던 것입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러던 중에 어릴 적 만났던 연어 데니를 떠올렸고 목숨을 걸고 떠난 데니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많은 친구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아. 연어들은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어디든 물고기들이 사는 데는 다 똑같지. 먹고 먹히고, 그런 걸 버티고 이겨내며 사는 게 삶이라고.”

처음에는 존도 흔들렸습니다.

만약 데니가 말한 그런 곳이 없으면 어떡하지? 연어들처럼 가다 죽어버린다면 아무 소용도 없는 걸. 여기서 적당히 자리 잡아 사는 게 더 안전하긴 해.’

이런 생각을 하며 존은 마음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짝짓기를 하기로 한 사랑했던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려 그의 곁을 떠나 버렸을 때 그는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어딘가 나와 아이들이 편히 살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존은 점점 거칠어지는 연어 떼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왔지만 그때 만났던 데니의 희망찬 눈빛을 떠올리며 그는 천천히 연어 떼들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먼 여행에 지치고 상처 입은 연어들은 서로를 밀어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존은 그들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 모두가 상류의 고요한 숲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함께 움직임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존은 알았습니다. 물이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쉽고 편안했다면 물을 거스르더라도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죽을힘을 다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존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지느러미는 어느 때 보다 힘차고 자유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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