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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미술관

덕수궁미술관 - 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 화창한 초 겨울 한국 근현대 회화를 만나기 위해 덕수궁으로 갔다. 서울에서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곳입니다~~ 학교 다닐때 미술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을 직접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게다가 고흐와 고갱등의 이국의 작과들의 그림과는 다른 한국적인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뭐라할까 황토 흙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외국인들의 그림과는 다른 정서가 느껴서서 눈물이 날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이 일제시대때 그려진 그림들은 더욱더 무표정하고 어두워 가슴이 아팠습니다. 전시실에서는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서 모조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사진을 몇장 찍었습니다. [이중섭씨의 작품] [천경자씨의 작품] 박수근씨의 작품은 정말 대작이었다.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어떻게 저런 느낌을 만들어 냈는지 알수가 .. 더보기
가을 덕수궁 돌담길 커피축제 이렇게 낙엽이 질때면 괜스레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보고싶은 마음이 생긴다. 집에서 멂에도 불구하고 어거지로 남편을 데리고 나가 욕들어가며 걸어본 2013년 덕수궁 돌담길... ^^; 사실 덕수궁 미술관에 현대서양미술 전시가 있다고 해서 갔었는데 다음주 화요일부터라고 해서 그냥 산책만 하게 된것... 가을과 커피.. 주말에 커피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특별한건 아니고 바리스타들이 직접 커피를 내려 주었는데요 3000원에 드립커피를 마실수 있었습니다. 거리가 온통 커피향으로 가득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정성이 담긴 드립커피 커피내리는 방법도 알려수시드라구요 커피로 그린 그림도 있었구요 커피가루로 그린 그림도 있었습니다. 틈새지장 공략하신 어르신들요 추억의 설탕과자 돌담길 끝에있는 시립미술관 정원은 나무.. 더보기
꿈과 시- 덕수궁 미술관 꿈과 시라는 제목으로 전시회중인 덕수궁미술관을 찾았다. 1층은 이인성전을 하였고 2층이 꿈과 시 전이 열렸다. 초중고때 학교에서 배웠던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말그대로 감동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던 박수근의 작품과, 이중섭의 작품을 실제보니 교과서에 실렸던 한줄한줄의 설명이 실제처럼 다가왔다. 노인과 손자 중의 일부 박수근이 그리고자하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반만년 역사를 지키고 살던 우리 모습을 보게 된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이란 이 그림의 주인공이 시인 이상이란 사실도 이제 알게됨.. 고흐의 초상같은 느낌이 들지만..그것보다 시인 이상..그리고 이시대의 예술가들의 우울과 힘든상황을 알것 같다. 그외에도 많은 그림이 있었다. 12월 2일 까지 하는전시이므로 시원해지면.... 더보기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덕수궁 미술관 덕수궁 미술관 시대의 천재화가라 불리는 화가 이인성.. 서양화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시대에 서양화풍을 흡수해 자기화 하였다는 평을 받고있다. 이인성은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않은데다가 어깨너머로 배운 그림실력이 전부였다. "가을 어느날" 이라는 이 그림은 고갱의 타이티여인같은 그림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파란하늘과 붉은 땅은 조선을 상징하고 가을이지만 한여름처럼 벋은 웃통과, 빈 바구니가 헐벋고 굶주린 조선의 사정을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외의 작품속에서도 이런 붉은 색과 녹색의 배치가 많고.. 빛을 표현하는 색..바랜듯한 느낌의 색을 많이 써 독특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 많았다. 교육도 지원도 없던 시기에 스스로 이루어낸 작품이란 생각을 하니 천재라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없는 여.. 더보기
덕수궁과 경운궁 덕수궁의 원래이름은 경운궁이다. 대한제국의 정궁 광해군이 1611년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을 "경운궁"이라고 정식궁호를 붙이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하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함. 지금의 3배규모,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도 바뀌었다. 이후 궐내각사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고 일제가 많은 부분을 매각하고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몇년전 덕수궁을 찾다가 실패했다.. 이유가 이거였군..입구에 덕수궁이란 현판이 없고..대한문이라고 돼있구나.. 중화전, 공식행사를 치렀던 궁궐의 으뜸 전각. 헤이그 밀사파견이후 일제는 고종에게 여러차례 양위를 강요하였고 고종은 결국 순종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지만..일제는 이것을 양위로 바꾸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