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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누(累) - 이병률 누(累) -이병률 늦은 밤 쓰레기를 뒤지던 사람과 마주친 적 있다그의 손은 비닐을 뒤적이다 멈추었지만그의 몸 뒤편에 밝은 불빛이 비쳐 들었으므로아불사 그의 허기에 들킨 건 나였다.살기가 그의 눈을 빛나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환히 웃으며 들킨 건 나라고 뒷걸음질쳤다.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늦은 밤 빨랫감을 털고 있는 내 방 창문을 지나막다른 골목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숫그림자는 구둣굽에 잔뜩 실은 욕정을 들키자번뜩이는 눈으로 달겨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이럴 땐 눈이 눈에게 말을 걸면 안 되는 심사인데도자꾸 아는 척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내 눈은 오래도록 그 눈들을 따라가고 있다.또 한 번 세상에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싶게깊은 밤 쓰레기 자루를 뒤지던 눈과 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친.. 더보기
어두워지는 순간 -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노작문학상 수상작)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 더보기
가재미 - 문태준 가재미저자문태준 지음출판사문학과지성사 | 2006-07-21 출간카테고리시/에세이책소개문태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제5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누가 ... 오랜만에 좋아하는 시인 문태준씨의 시를 읽었다. 것도 직접 빌려서... 요즘 시는 인터넷에 떠도는 짤막한 것들만 읽는 것 같다.... 역시나 문태준 씨의 시는 편안하고 잔잔하다. 그렇다고 감동이 없는것도 아니다. 감동은 ....이루 말할수 없는 크기로 덮쳐온다. 감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마리 가재미로 눞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 더보기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가장 낮은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쫒겨 나도 노출혈로 쓰러져 말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는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래도 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 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은 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