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의 원래이름은 경운궁이다.
대한제국의 정궁
광해군이 1611년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을 "경운궁"이라고 정식궁호를 붙이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하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함.
지금의 3배규모,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도 바뀌었다.
이후 궐내각사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고 일제가 많은 부분을 매각하고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몇년전 덕수궁을 찾다가 실패했다..
이유가 이거였군..입구에 덕수궁이란 현판이 없고..대한문이라고 돼있구나..
중화전, 공식행사를 치렀던 궁궐의 으뜸 전각.
헤이그 밀사파견이후 일제는 고종에게 여러차례 양위를 강요하였고
고종은 결국 순종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지만..일제는 이것을 양위로 바꾸어버린다.
그 양위식을 1907년 7월19일 중화전에서 치른다.
고종과 순종은 양위식 참석을 거부한다..TT
석어당 :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층건물,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같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그해 다시 중건됨..
그때의 기와인지 모르지만..닳고 닳은 느낌이 남아있다.
1904년 4월 발생한 대화재로 경운궁은 거의 잿더미로 변하였다.
당시 일본은 온돌때문이라지만..각국의 공사관 사이에 위치한 경운궁에 고종이 기거하는것을 못마땅히여긴 일제가 방화한것이 아닌가 하는의심을 한다.
고종은 불이난후 다른궁궐로 이어 권유를 물리치고 다음날부터 재건공사에 착수했다.
고종이 아니었으면 사라질뻔한 궁이었네..
고종황제가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
고종이 기거하는 방과 부속시설로 되어있었다.
고종황제 승하후에 경운궁이 황폐해지는 과정에서 석조전은
일본 회화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TT
석조전을 시공한 오쿠라 토목회사.
처음에슨 영국인 브라운이 발의하여 짓기 시작하였으나
1905년 일본인 메가다가 재정고문이 되면서 일본의 오쿠라 토목회사가 시공함..
오쿠라 토목회사는 아시아 여러나라 수만 점의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린 기업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1917년 경복궁 자선당을 해체해 일본으로 빼돌려 사설박물관 으로 사용.
1923년 관동 대지진을 불타버려 초석만 남았다 1995년 한국으로 돌아옴.
이상은 덕수궁 관람 책자를 읽으며 발취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읽으면서..우리나라의 아픈역사..
뺏기고 수탈당한 역사가 궁이라는 장소에 고스라니 묻어 있는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한것은..왜 우리가 아직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계속써야하는지..
고종폐위후 바뀐이름이라면..타의로 바뀌었음이 분명한데..
다시 경운궁이라고 써야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또하나의 의문은..석조전은 엄연히 황제의 침실이었습니다.
일제가 미술관으로 바꿔버린 이곳을 우리가 아직도 미술관으로 써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대한제국 황실의 모습을 복원해야하는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미술관은 여기아니라도 남아돌지 않나요?
음..........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