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김00군의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학교 유전공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김00(실명을 밝히면 안될 것 같아서...)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전에 저희 학교에 오신 LG생명과학 사장님께서 교수님께서 쓰신 '장미와 찔레'라는 책을
추천해주셔서 오늘 사서 오늘 다!!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좀 바보같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책 초반에 한 학생이 성 교수에게 면담을 했을 때 성 교수가 학생에게
'자네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거야.'
라고 이야기 한 부분입니다. 지금 제가 며칠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고민하는 부분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에는 그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이 되지 않아 그 부분에
대해 조언을 얻고 싶어서 이메일을 보냅니다. 좀 바보같은 질문이지만 교수님께서 조언해주시면
앞으로 제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쓰셔서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신것 감사드리고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조동성 교수의 답변
김00 군,
1월 13일에 보내준 편지에 20일이 지난 오늘 답들을 보내는 것은, 제 "대화 및 토론"에 있는 다른 편지를 보면 알겠지만,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만큼 김 군이 제기한 질문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 동안 혼자서 생각도 해보고, 제가 아는 여러 어른께 여쭤도 보면서 답변을 가다듬어봤습니다. 아직 충분한 답변은 되기 어려울 듯 하지만 준비한 답변을 이제 알려드리겠습니다.
김 군의 질문은 두 개, 즉
(1)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What do I want to do in my life?
(2) 내가 하고 싶은 일, 즉 (1)번의 답을 찾아내는 방법은 무엇인가?---How to find it?
이지요?
이 질문을 김 군으로부터 받았을 때, 저는 당황했습니다. 실은 김 군이 질문한 내용 그 자체가 제게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것을 질문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김 군도 질문을 하면서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표현을 달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질문은 다 의미가 있는 법이므로, 김 군의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http://bloggernews. media.daum.net/news/731625?pos=1)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야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고
쉴 틈 없는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친 아이들
아직 열다섯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아이들에겐
꿈을 꿀 여유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꿈이요?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저희는 고등학교 일단 잘 가서
대학 잘 가면 그 때 뭔가 꿈이 생기겠지… 다 이런 생각 갖고 그냥…”
고1이 되는 여학생이 한 말이 왜 이리 슬프게 들리는 건지…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김00 군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학력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며, 나이도 다를 것 같은 두 분이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젊은이들이 한국 사회에 의외에도 많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면서 좀더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 질문 중 첫 번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즉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질문이므로, 진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질문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러한 결론이 맞으리라는 전제 하에 저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해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해 가장 보편적인 답변은 “철학”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목적을 찾아내는 학문이므로 “철학 그 자체가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찾아내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김 군에게 철학을 공부하면 된다는 답변을 하기에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특히 철학 비전공자에게는) 너무 무겁고, 그러면서도 답변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따라서 철학이란 학문을 공부하라고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겠습니다.
1. 책을 읽으십시오.
특히 김 군이 전공하는 영역보다는 비 전공 분야의 책을 읽으면 그 효과가 배가됩니다. 그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인문학 고전을 만나면 책에 들어있는 내용에서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삼국지, 수호전과 같은 동양 고전이나 일리아드, 오디세이 같은 서양 고전 모두 좋습니다. 플루타크 영웅전, 세종대왕, 이순신장군이나 퀴리부인에 대한 위인전도 좋습니다. 쉐익스피어,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토스토에프스키, 허균, 이춘원, 노신(중국), 박경리, 이문열, 황석영이 쓴 문학서적도 좋습니다. 이백, 두보, 하인리히 하이네, 애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 버틀러 예이츠, DH 로렌스, 자크 프레베르,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이해인의 시집도 좋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이러한 책을 읽으면 김 군이 그 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하거나 위인들을 벤치마킹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을 계획하겠다”는 식의 목적을 갖고 책을 잡지는 마십시오. 박목월 시인이 묘사한대로 “구름에 달 가듯이” 그냥 책에 빠져드는 “나그네”가 되어보십시오. 어느새 내가 모르던 동네로 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여행을 하십시오.
국내 반도 삼천리를 버스나 기차로, 또는 걸어서 여기저기 다녀도 좋고 세계 5대양 6대주에 걸쳐 흩어져있는 200여 개 국가를 배나 비행기로 다녀도 좋습니다. 혼자 다녀도 좋고 친구들과 함께 다녀도 좋습니다. 각 지역의 자연풍광과 역사 유적을 샅샅이 찾아 다녀도 좋고, 예술, 문화, 음식을 즐겨도 좋겠지요. 테마여행이라면 더욱 멋있겠지요, 이를테면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을 찾아서 그 디자인을 보여주는 책이나 디자인이 들어가있는 옷을 모으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태극이나 무지개 색이 들어있는 색동저고리가 있듯이 세계 각국에는 그 나라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무늬나 색이 있는 법입니다. 여행길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보통이지만, 여행에서 보고 느낀 바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기행문으로 적어둔다면 나중에 뿌듯한 결실이 남겠지요. 그런가 하면 목표를 정하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보고 느끼는 여행도 해볼 만 합니다.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목표가 정해지지 않았으면 앞을 향해서 첫 발자국을 내디뎌라. 그러면 머지 않아 목표가 만들어질 것이다.”
3. 대화를 나누십시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형제를 비롯하여 친척들이 있고, 스승도 있으며, 학교 친구, 동네 친구도 있습니다. 단골식당의 아주머니나 종업원도 있고, 아파트 입구의 편의점 주인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김 군 주변에 있는 분들을 만나면 단 10초라도 대화를 나누십시오. 날씨도 좋고, 최근 일어난 국내외 사건도 좋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얘기를 들어주어도 좋고, 내 고민거리를 얘기해도 좋습니다. 상대방이 나와의 대화를 피하면 포기하고, 원하면 계속하십시오. 그러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과의 대화 길이를 1분, 10분으로 늘여가십시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내면을 이해하게도 되고 내 문제를 상대방이 공감해주게도 될 것입니다. 말솜씨가 슬슬 느는 것도 느끼고, 전연 모르던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한다면 그 것은 보너스입니다.
4. 일기를 쓰십시오.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이나 내가 행동에 옮긴 일을 오늘이 가기 전에 적어두십시오. 일기장에 써도 좋고, 수첩에 적어도 좋습니다. 생활이 단조로워서 쓸 것이 별로 없다는 분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쓸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친구를 만나서 나눈 대화도 있고, TV에서 흘러간 영화를 시청하면서 받은 뭉클한 느낌, 음식을 먹다 불현듯 떠올린 옛날 추억, 신문에 실린 존 네스빗 (John Naisbitt)이란 미래학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미래 트렌드에 대한 통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사를 하거나,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벌이는 “사랑의 열매” 사업에 용돈 일부를 보냈다면, 더욱 쓸 거리가 많아지겠지요. 일기를 쓴 다음에는 쓴 내용을 꼭 모아두십시오. 그리고는 한 해가 지난 다음 이 일기를 꺼내서 읽어보십시오. 연말연시에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대화 및 토론” 267번 (http://www.dongsungcho.com/board/list.asp? ConfigID=5)에 작성방법을 소개 드린 “나의 지속경영보고서”를 만들어보기 바랍니다.
5. 봉사를 하십시오.
김 군 주변에는 김 군의 손길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인간이 누리는 권리를 천부인권, 즉 하늘이 준 권리라고 하지요? 정상인이나 장애인 모두 태어난 순간, 그리고 사회를 살아나가는 동안, 하늘이 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사회의 모든 인간은 장애인에 대해 그들이 정상인과 똑 같은 기회를 가지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활 조건을 만들어드리고, 돌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민주사회의 구성원은 구성원 중 어느 누구도 소외를 느끼지 않도록 배려를 할 적극적 의무가 있습니다. 김 군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장애인과 소외된 사람들을 도울 의무와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견 정상적인 사람들도 김 군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기말 시험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친구도 있겠고, 점심값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온 동료도 있을 듯 합니다. 김 군이 시간이나 용돈에 약간의 여유만 가지고 있다면 이런 이웃들을 돕는 게 큰 어려움은 아니리라 봅니다. 그러니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더 나아가 거국적이거나 세계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서 김 군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태안반도에 가서 기름 떼를 제거하는 작업이나, 쯔나미와 같은 재앙에 피해를 입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도와주는 활동은 평생 기억에 남는, 경우에 따라서는 김 군의 인생 자체를 바꿔놓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6. 사랑을 하십시오.
부모님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은 구태여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김 군은 멋진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경험도 있겠지요? 신앙심에 입각해서 이 세상을 만드신 절대자에게 사랑을 바치고 있으시지 않습니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은? 사랑은 사랑 받는 대상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부모님, 가족, 애인, 절대자, 국가와 민족 모두 중요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 분에게 사랑을 바칩니다. 사랑을 하는 이유는 사랑할만한 대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에릭 프롬 (Erich Fromm)에 의하면 사랑은 사랑을 줄만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랍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사랑이란 인자가 생긴다면 그 사랑을 받게 될 첫 사람은 자기 자신이겠지요. 김 군 역시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자연히 김 군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김 군은 자신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게 되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이 모두 하고 싶은 일이 될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그 일에 몰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김 군,
이 편지를 쓰면서 김 군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졌습니다. 그 동안 저 자신도 꿈을 제대로 꾸지 못했던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 꿈을 어떻게 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3주에 걸쳐 조금씩 써오던 이 편지를 오늘 끝내면서, 저도 이제부터 꿈을 꾸어보렵니다. 김 군에게 제안한 위 여섯 가지 방법을 저 스스로 실천하면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조동성
- 김성민 대표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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