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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대재앙

 

 

 

올 여름은 유난히도 비 소식이 많았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하루걸러 하루씩 하늘은 비를 퍼 부었는데 여름이 절정에 치닫는 8월인 지금도 여전히 장대같은 비가 장난치듯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확인하고서는 "또 비네"하며 짜증을 낸다.

"비가 와서 요즘 지하철에 사람도 많고 말이야 축축해서 사람냄새가 너무 난단 말이야, 요앞 자전거 길은 이제 다 잠겼더라"

 

쫘---- 하고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오늘 하루의 시작을 어수선하게 만들어 주었다.

 

"비도 많이 오는데 오늘 출근하지 마세요"

"왜그래, 애도 아니고, 대신 빨리오께"

"치~ 그러지말고 비그치면 와요"

바라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그는 농담으로라도 있어주겠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 여유없는 남자다.

남편이 출근하고 설거지며 청소를 마무리하고는 요란한 비소리에 물새는데가 없을까 하고 앞 뒤 베란다를 확인하는데 우리집에서 내다보이는 동네의 하천이 이미 범람해서 흙탕물 위로 부러진 나무며 각종 쓰레기들을 도로로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집은 5층이라서 조금은 안전 할지 모르겠지만 1층에 사는 사람들은 곧 잠길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많이오니 저층에 사는 주민은 가까운 고층 건물로 대피 하라는 방송을 한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여기 동네가 물에 잠기게 생겼어요"

"여기도 지하철이 이미 잠겼어. 도로에도 물이 많아서 오늘 집에 못가겠다"

"어떻해요, 여기는 대피하라고 이미 방송도 했어요"

베란다 밖으로 몇몇 사람들이 짐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말했다.

"자기, 일단 중요한거 챙기고, 기다리고 있어. 조퇴해서라도 꼭 갈테니까 어디가지말고 집에 있으라고 헤어지면 못찾아"

침착하게 있으려고 했지만 점점 난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는 중요한 귀금속만 일단 챙겨서 가방에 넣고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지방까지도 지금 물난리가 났다고 정부는 재난경보특보를 발령했단다. 기자는 방송국 고층건물위에서 물에잠긴 서울시내를 비춰주었다. 자동차 두껑만 간신히 보이는 주차장이 보인다.

아무래도 남편은 올리가 없어보였다.

 

12시가 되기전에 TV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놀라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곳도 어두운 동굴처럼 깜깜하다. 집안에선 째깍째깍 시계가는 소리와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외엔 모든 것이 놀라 멈춰버린듯 했다.

 

휴대전화를 들어 남편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질 않는다.

남편이 제발 그냥 그곳에 있어주길 바랐다. 이 아파트는 이미 1층이 잠겨버렸는데 남편이 있는 강남은 더할 것 같았다.

자방에 사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동네 산위에 피신해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빨리 높은데로 올라가라고는 하지만 이미 출구에 물이 차있어서 나갈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뾰족히 떠오르는건 없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불안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지만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똑똑똑 계세요?" 하고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3층 사는 사람인데요. 집에 물이 들어와서 잠시 피해 있으면 않될까. 우리집 영감이 몸이 불편해서 말이에요."

나는 그제서야 문을 열고 내다 보았다.

가끔씩 오르내리며 마주치던 그 할머니셨다.

"들어오세요, 벌써 3층까지 물이 차버렸나요?"

"말도마세요, 설마설마했는데 반나절도 않되서 베란다로 물이 들어와서 집에 있는것 싸들고 나왔어요"

"다른사람들은 없던가요?"

"1,2층 사람들은 오전에 나가는것 같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빈집이 태반일거예요. 그나저나 이러다 여기도 잠기는거 아닌가 몰라"

 

나는 일회용 가스버너를 가지고 와서 할머니와 밥을 해 먹고는 집에 있는 물놀이용 튜브와 돌고래 튜브에 바람을 넣어놓았다.

"우리 염감이 몸이 않좋아서 우리는 못가요. 여차하면 먼저 가시구려"

"....혹시나해서 준비하는거예요. 설마 그렇게 까지 비가 오겠어요?"

"평생 이런 난리는 처음이네그려..웬 이렇게 비가 많이오다니..하늘에 구멍이 난것도 아니고...재앙이야..벌받는거지..쯧쯧"

 

밖을 다시 내다 보았다. 저 멀리 시내 고층건물외엔 모든게 잠겨버렸다.

여기가 잠긴다면 갈데는 없었다. 정처없이 떠다닐수 밖에...그러다 저체온증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띠리리리리" 전화벨소리에 깜짝 놀랐다. 남편이었다.

"여보세요? 어디야?"

남편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들렸다.

"집이야. 여기 3층까지 차버렸어요"

"일단 구조대에 연락하고 거기 있어"

"당신은 안전한가요? 여기 올 생각말고 당신도 거기 있어요"

"내 걱정은 마. 난 그래도 수영이라도 잘하지만 당신은 수영도 못하잖아"

"그래서 튜브에 바람넣어놓구 있어요"

"그래.여차하면 돌고래 타라구"

"알겠어요"

 

끊겼다 들렸다하는 전화상태로 우리는 간단히 할만만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 말대로 119구조대로 전화를 걸었지만 불통이었다. 우리만 위급한게 아니고 모두가 위급한 때였다.

 

이제 3층은 완전히 잠기고 빗물은 4층 베란다 모서리에서 찰랑찰랑거렸다.

이 속도로 계속 비가 온다면 오후 6시 정도면 우리집도 위험했다.

반복되는 비소리는 나의 감각을 마비시키는것 같았다. 시간이 가는지 어떤지, 배가 고픈지 어떤지 아무것도 알수 없었고 오로지 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에만 모든 신경이 반응을 했다.

나는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을 지나다 어디선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누워계셨는데 어디서 애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착각이 아닌 현실적인 아이들의 소리였다.

혹시나 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앞집에 사는 아이3명이 짐을 둘러메고 밖에 나와 울고 있는것이었다.

"부모님 않계시니?"

"흑흐...엉...엉"

갑자기 아이들이 더 크고 서럽게 울었다.

첫째로 보이는 중학생 여자아이가 곧 울음을 그치고는

"부모님 모두 회사가셨어요. 우리끼리 있는데 무서워서 나가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어요"

 

"집에 있는 중요한 물건하고, 튜브같은 거 다 챙겨들고 이리로 와. 같이 있자꾸나. 여기 아래층 할머니도 와 계셔"

아이들은 쭈뼜쭈뼛했지만 그래도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큰애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째는 초등학교 3~4학년 여자아이,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쯤인 사내아이였다.

3명의 아이들은 3개의 튜브와 2인용 튜브베드를 가지고 왔다.

어른3명과 아이3명, 우리는 만일을 대비해서 탈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기로 했다.

 

먹을것과 물은 각자가 나눠 가지도록 하고 튜브를 엮어서 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2인용 튜브베드를 중심으로 4개의 튜브와 돌고래 튜브를 양쪽으로 엮고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켰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도록 긴 대걸레로 네 모서리를 고정 시켰다.할아버지를 중심에 누위고 할머니 아이들 3명이 양쪽 가로 앉으니 딱 맞았다. 나는 남편의 말대로 여차하면 돌고래에 의지해야 했다.

 

"우리는 신경쓰지마세요. 우리는 고만 살아도 돼"

할머니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런 말씀 마세요"

".......괜찮데두"

우리는 저녁을 해먹고 하염없이 밖만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비는 그칠 생각도 하지 않고 기여이 우리를 삼킬 생각인 것만 같았다.

 

물이 우리집 베란다 문을 찰싹찰싹 치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때가 온것 같았다. 일단은 치분히 기다릴수 있는 만큼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모두의 얼굴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아줌마 우리 옥상으로 가요" 옆집 중학생 다은이가 말했다.

 

우리는 짐을 싸들고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에 올라갔다. 우리 아파트가 섬이 되어 물위에 솟아 있었다. 저 멀리 다른 단지들도 섬이 되어 있었다. 주위는 어둡고 적막하고 불빛도 없고 빗소리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름이지만 연일 내린 비때문이 기온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밖에 나오자 마자 아이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나는 다은이와 다시 집으로 내려와서 겨울점퍼와 따뜻히 입을수 있는 것을 사람 수대로 가져나왔다.그리고 집에있는 가능한 것을 모두 연결해 최대한 긴 줄을 만들어  가지고 나왔다. 아이들과 어른들을 다 입히고 우리는 마냥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텅빈 앞 단지의 옥상을 보며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이웃들은 정말 집에 있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만들어 놓은 튜브배가 비를 맞으며 장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이 5층을 삼키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순식간 이었다. 3년동안 살았던 집..그 안의 냉장고며 가구들...소리없이 수장 되는 상상에 몸서리가 쳐졌다.

일단은 계획했던 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이들을 먼저 태웠다. 나는 상황을 봐가면서 돌고래에 올라 탈 것이었다. 그리고 만들어온 긴 줄을 옥상의 튀어나온 철근과 배에 꽉 묶었다. 계획없이 떠다니긴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옥상끝에서 물이 넘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10분도 안되어서 옥상 바닥은 물로 꽉 채워졌다. 곧이어 배가 떠오르려고 흔들거렸고 우리는 '악' 소리를 지르며 배를 꽊 붙잡았다.

배는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두려워 흐느꼈다.

"괜찮아 울지마..."

우리가 있어줘서 다행이었다.아니 우리는 서로가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어디로 흘러 가는지 알수 없었지만 이내 아파트 옥상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메어 놓은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뒤로뒤로 흘러갔다.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하는 생각이 불연듯 들었다. 그리고 그이는...

 

손목시계는 8시를  가리켰다. 우리는 깜깜한 어둠속에서 뭐라도 나올세라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후레시의 밧데리를 아껴야 했기 때문에 가끔씩 껏다 켤때 좀전에 없었던 큰 쓰레기가 지나가면 깜짝 놀라기도 했다.

"물이 얼마나 찼는지 이제 모르겠네, 새댁 아니면 우린 벌써 죽었어요" 할머니가 입을 여셨다.

"춥지 않으세요?"

"추운게 뭐 대준가...우린 다 살았는데 세상이 마지막이래도 아쉽지 않지만 이 아이들이 불쌍하구먼"

"예....다 잘될꺼예요"

"아줌마 우리 그냥 방향을 정해서 어디로 가는데 더 낮지 않을까요? 산이나 높은 건물을 만날수 있잖아요?"

"그렇긴하지만 바다로 나가버리면 정말 끝일거 같아서 말이지, 여기 줄이 팽팽해지면 그때 가보도록 하자"

 

나는 간신히 돌고래를 붙잡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졸다간 실수로 물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그런데다 구조대가 혹시 지나갈까 잠시라도 눈을 붙일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비는 조금씩 잦아드는것 같았는데 차있던 물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앗!!"

어두워서 보지못했던 큰 나무 둥치가 내가 앉아있던 돌고래를 치고 지나갔다. 나는 놀라 기우뚱하다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물속은 어둠보다 더 어두웠다.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거리가 무언가를 붇들었고 고개를 물 밖으로 빼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할아버지의 팔이었다. 나무 등걸처럼 딱딱한 그의 손이 마지막 힘을 내고 있는것 같았다.

"어이구 새댁!! 여기 여기 붙잡으라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다시 튜브위에 올라 앉게 되었지만 나는 추위에 정신을 자릴수가 없었다. 어디서 이렇게 얼음장 같은 찬물이 흘러 들어오고 있을까?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신의 장난 이라면 이제 그만 멈춰주었으면 했다.

 

잠깐이었는지 나는 정신을 잃었던것 같았다. 눈을 떴을때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고 우리가 떠다니는 물은 선분홍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출렁이는 고무배 위를 바라보았다.

다은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한 아이들 ..할머니는 저쪽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할아버지는요?"

나는 할아버지가 않계시다는것을 알았다.

"잠깐사이였어. 우리 영감이 자기 할일을 한거야."

"무슨일 있었어요?"

나는 터져버려서 바람이 다 빠져버린 돌고래가 웃으며 물위를 넘실거리는것을 보았다.

"아줌마를 눕히고 자리가 좁아서 할아버지가 일서서 계시는것 같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드셨어요. 그러고는 물위로 한번도 올라오지 않으셨어요."

다은이가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나는 조용히 다은이와 할머니를 안았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내 손목에 아직 빨갛게 그의 마지막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할머니 죄송해요 저때문에..."

멍하니 물밑만 바라보던 할머니는 그냥 웃어 주었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생쌀을 삼켰다. 이거이라도 먹을것이 있다는것에 감사하며..

그리고 한 아이도 칭얼거리지 않고 잘 참고있다는것도 감사했다.

메어놓은 줄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끊어진지 오래된듯 했다.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듯 고무배는 뱅글뱅글 돌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배라는 운명위에 우리는 몸을 싣고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흘..아니 십일이 지난듯했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은 거치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바다도 산도 없어지고 그냥 온통 푸른 물뿐이다. 올 여름...그냥 비가 많이 올거라 생각은 했지만 사람의 한계를 넘겨버릴 정도의 비가 올줄이야...

우리 외에는 다른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개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먹을것이 떨어질 때 우리의 희망도 꺼져버릴것 같았다.

그런순간은 곧 오게 되어 있었다. 자원은 유한 하니까.

아이들 3명과 여자 2명 우리는 나란히 배에 누워있었다. 모두들 본능적으로 힘을 아껴야한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빙빙도는 고무배 때문에 가끔씩 눈을 떠 바라보는 하늘도 빙빙 돌았다.

우리는 구원 받지 못할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모두 꼭 껴안고 누워있다가 뭔가 향긋한 풀냄새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삼일 정도를 굶어 후각이 예민해 졌거니 생각했지만 잠깐 눈을 떠 하늘을 바라 보았을때 하늘은 더이상 일렁이지도 뱅글뱅글 돌지도 않았다.

나는 잠깐 일어나 앉았다. 우리배는 어딘가에 걸려 있는듯 했다.

나는 풀냄새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물이 아닌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고 한줄기 해를 안고 신의 축복이라도 받는듯 찬란해 보였다. 나는 아이들과 할머니를 깨웠다. 다행이 모두 아직은 살아 있는듯했다.

"우리 어서 내리자"

"여기가 어디예요? 우린 살았어요 아줌마?"

힘이다해 일어나지못하는 막내를 안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땅에 발을 디뎠다.

"우리가 죽은건 아니지? 여기가 천국은 아니지?"

할머니도 마지막 힘을다해 걸어나오셨지만 아직 믿기지 않는듯 하셨다.

그 곳은 섬같았지만 높이 솟지않고 야트막한 언덕과 같았다. 올림픽경기장만한 크기의 땅이 아직 물에 잠기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긴 우리들 뿐이었다.

"아주머니 여긴 먹을것이 천지예요"

다은이는 여기 저기 탐스럽게 열린 과일들을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래. 그렇구나..우린 이제 산거야"

"새댁..여긴 없는게 없구먼..여기 이거 무화과 좀 먹어보구려 아주 달아"

우리는 정신없이 과일을 따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여기는 이상하리만치 환상적인 곳이었다. 여기만 같은면 일년이라도 버틸수 있을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배를 채우고 언덕의 한가운데 바위돌 밑에 누웠다.

"여긴 어디죠?"

다은이가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나를 보며 물었다.

"글쎄..세계에서 절 높은 에베레스트 정도라야 물에 않잠겼겠지?"

"근데 에베레스트는 눈이 많잖아요? 여긴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렇구나. 그럼 여긴 천국이겠지.."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한동안 제대로 자지 못해서 인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잠들어 버렸다.

 

"이브.이브..이 사과 하나 먹어봐"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잠이 깨었다.

"그래 이브 너 말이야. 일어나서 이쪽으로 와보라고. 여기 정말 맛있는 사과가 있어."

나는 일어서서 소리나는 쪽으로 가보았다.

큰 사과 나무가 있었고 거기에는 상상만 해오던 태초의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것이었다.

"난 이브가 아냐."

나는 뱀을 보고는 불길한 생각에 돌아서려고 하였다.

"이봐. 넌 여자고 그러니까 이브야. 네가 왜 이곳으로 온지 알고 싶지 않아? 내가 이야기 해줄수 있는데 말이야"

나는 돌아서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영악한 짐승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다시 세우려고 비를 내렸다네..비가 꼬박 십일을 내려 세상을 다 덮었다네. 거기서 살아남은 자가 없다면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다시 만드실 생각이었다네"

뱀은 노래를 하듯, 아니 나를 홀리듯이 이야기를 계속해 갔다.

"오늘 드디어 산자가 에덴에 발을 들였다네. 아담 하나와 이브가 넷이라네"

아담 하나는 막내를 이야기 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겠다는거야?"

"하나님은 모든 걸 새로 만들거야. 아주 순결한아담과 이브를. 그런데 너희들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계획이 틀어진거지. "

뱀은 징그러운 혀를 날름거리며 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래서"

"성급하기는..천천히 내말 들어보라구. 하나님이 너희들을 가만 두시겠어? 여지껏 말도 않듣고 죄만 짓는 인간이 지긋지긋 하셨는데 너희들을 가만히 두시겠냐고? "

"우린 재앙같은 비속에서 이렇게 살았어. 우리가 어떻든 우리는 살았다고. 하나님이 정말 있다면 산 사람을 어쩌겠냐구"

뱀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더 바짝 다가왔다. 은밀한 이야기를 하려는듯.

"이봐 이브. 침착하라구. 당신도 에덴땅을 밟는 순간 태고의 이브처럼 순결해졌다구. 저기 저 사람들을 봐 모두 빛이나잖아"

나는 뱀이 가기키고있는 우리 식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빛이나고 있었다. 흰광채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그럼 다 된거 아니야? 우리는 이제 죄가 없이 순결해 졌다구. 이제 하나님을 기다릴꺼야. 영원히 행복해지는거지"

나는 기쁜소식을 전하고 싶어 들뜨기 시작했다.

"이봐, 이봐, 그러면 않되지.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보라구. 당신의 남편. 그리고 당신대신에 물에 빠져죽은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가족들..그들은 모두 하나님 손에 버려진거라구..순결하게 살고싶어? 그들은 다 죽이고?"

"어쩔수 없었던 거잖아"

"어쩔수 없었던게. 아니지...이건 하나님의 각본인걸.."

"그래 그렇다고 쳐. 그래도 우리가 어쩔수 있는일이 없잖아. 우리도 간신히 살아서 왔다고"

"침착해..널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 잘들어봐. 그때도 그랬듯이 하나님의 계획을 다시 망쳐 놓은거지. 그럼 하나님도 인간들은 어쩔수 없구나 하실꺼야..그럼 다시 물을 빼고 죽어 지옥에 떨어진 다른 인간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주실거야"

빨갛게 충열된 눈을 한껏 부라리며 이야기하는 뱀의 눈을 보고있자니 어지러웠다.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안간 힘을 썼다.

'지금은 우리만 구원받은거라고?다른 사람들은 다 죽는다고? 그러니까 다시 시작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다시 타락해 버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 한다는 말이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것 처럼 뭐가 뭔지 알수가 없었다.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뭐든 나를 시험하는것 같아서 있을수가 없었다.

"아줌마 나 엄마 보고 싶어요"

나는 이제서야 다은이와 그녀의 동생들이 거기에 와 있는것을 보았다.

그들은 사과를 들고 간절한 눈빛을 나에게 보내어왔다.

"엄마가 보고싶어요 아줌마..이것 먹으면 엄마가 돌아온다면서요."

내가 말릴새도 없이 아이들은 사과를 한입 베어물었다.

"그래 새댁...뭐가 뭔지는 몰라도 난 그냥 우리 영감 얼굴 한번만 보고 죽었으면 한다우. 마지막 인사도 못했는데..."

그리곤 할머니도 울먹이며 사과를 베어 물었다.

뱀의 입은 짖어질세라 웃고 있었다.

그는 기뻐하고 있었다. 에덴동산을 비추던 한줄기 빛은 점점 흐려지고 열렸던 하늘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이봐 이브..다 끝났다고. 자기만 이 동산에 덩그라니 살아남아서 재미없잖아. 당신도 당신 남편과 함께 인간답게 살다가 돌아가라구"

"인간답게라고?"

"인간은 완전하지 않아..죄를 짖는다구. 아무리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을 만들려고 해봐야 그렇게 되지 않아...흐흐흐..어때 이브 당신은?"

 

나도 내가 한순간도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도 누군가를 완전하게 사랑해 본적도 없으며 싸우고 미워하는 한가운데 살아온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런 죄가 많은 인간이지만 같이 부딪겨 살아가니까..

나만 순결하게 하나님곁에 있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과 할머니는 아까의 빛은 사라지고 다시 넝마가 되어 울고 있었다. 여기가 지옥이래도 함께 살아가면 그곳이 천국이지 않을까...천국은 바로 여기 있다고 했으니까..

나는 천천히 사과를 깨물었다. 그리고 빛은 사라지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딩동..딩동.여보...여보 집에 있어?"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빗소리는 사라지고 밖은 붉게 노을이지고 있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잤어? 전화해도 않받더니 자고 있었구만"

남편은 한숨을 쉬며 신발을 벋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왔어요? 비는?"

"당신혼자 두기가 불안해서 비 그치자마자 나온거야"

"어떻게? 물이 많지 않았어요?"

"3시쯤 되니까 물이 좀 빠지더라구.. 버스가 운행 하길래 버스타고 왔지. 당신은 아주 태평이었구만..아주 푹 잘 자셨네.."

나는 다 젖은 바지와 윗도리를 벋으며 샤워하러 들어가는 남편을 보며 우리집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 하였다. 밖은 비가 이미 그쳤고 물도 많이 빠져서 천천히 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오후의 해는 석양을 토하며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앞집에서도 왁자 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앞집의 아이들의 부모님이 집에 오신것 같았다. 막 문을 닫고 들어가는 앞집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인사를 해 주었다.

"고마워요, 우리 아이가 그러는데 아주머니와 같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아이들 챙겨줘서 너무 감사해요. 언제 식사라도 같이 해요"

"뭘요.."

"저 그럼..먼저 들어갈께요"

"예"

열린 문틈으로 다은이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두 아이들도...

 

"여보 배고파...밥먹자"

샤워를 하고 나온 남편은 앞 뒤 베란다에 물세는 데가 없는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여보 돌고래가 없네. 여차 하면 타고간다더니 없잖아?"

"어...그러게 ...물만나서 그런지 돌고래가 도망갔나봐"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오고, 아무일없다는 듯이 시간은 또 흘러 갔다. 그렇게 사람은 살아갈 것이고 아무리 살아도 완벽하게 살아내지 못할 삶, 나는 그 사람과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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