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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 여름밤의 기억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김동우는 자취방에 베개를 접어베고는 10분에 한번 꼴로 휴대전화를 쳐다 보았다. 그는 제대후 복학하면서 학자금대출을 또 받았다. 등록금부터 매번 조금씩 받아오던 대출이 지금은 꽤 금액이 커져 마음의 짐이 되어버렸다. 조금씩 갚아보려고 학기중에도 틈틈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방학는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던 차였다. 

 

그가 서울권에서 대학교를 다니게 되던 해 시골의 온 집안이 다 기뻐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자랑스럽게도 생각하며 1년을 보냈다. 하지만 사립대의 등록금과 학비가 시골에 있는 가족에게 부담이 되는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원서를 쓸때 조금만 더 부모님 생각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그는 전역하고 나서야 하는것이다. 앞으론 좋은대학을 나온다고해서 쉽게 인생을 바꿀수 있는 그런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복학한 동기들에게선 다 빠져버린 군기지만 그는 전투적으로 한학기를 보낸 탓에 규칙적인 생활이 아직 익숙해 있었다. 그는 방학이지만 6시 기상해서 동네 한바퀴를 가볍게 뛰었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쌀을 씻어서 밥솥에 밥을 하는 중이었다. 반찬은 먹다남은 김치와 시골에서 가져온 멸치볶음이 다지만 이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밥이 다되기를 기다리있다. 대학생들에게 인기있는 관공서아르바이트에 접수하려고 했지만 기말시험이 늦어져서 접수기간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시급이 쎈 아르바이트들은 자격증이 있어야해서 않되거나, 몸으로 떼우는 일들은 방학이 늦어져 이미 자리가 다 차 버렸다. 지금은 군대가기전에 일하던 홍대쪽의 노래방 사장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군대가기전에 6개월을 그곳에서 성실히 일했으니 당연히 연락을 해주실거라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어제 전화를 했을때 '어~ 김군이구나, 지금 바쁜시간인줄 알지? 나중에 전화 할께' 하고 할말도 못했는데 전화가 끊겨버린것이 신경이 쓰였다.

 

탁하고 취사에서 보온으로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밥솥은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망설임없이 일어나서 신속한 동작으로 밥을퍼서는 누가 보지도 않는데도 90도 각을 유지하며 수저를 움직여서 밥을 먹고 있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무능하게 시간을 보내는것 같아 불아해졌다. 제대를 하고 나니 그는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의 시선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현재가 아닌 미래에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시시 때때로 엄습하는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볼때마다 아무런 돈도 빽도 없는 자신이 한심해 오는것이다.

게다가 이번학기에 연구 수업의 한조에 있던 후배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 사건이 있었었다. 아픈 가슴을 달래며 술을 마실때 동기가 하던 말을 잊을수가 없었다.

"이자식이 아직 감을 못잡았네, 요즘 기집애들은 남자가 차없으면 않사궈요. 그것 뿐이냐, 돈없는 남자랑은 데이트도 않한단다. 제대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감이 없냐?

삼포세대라고 못들어봤냐? 돈이 없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세대라고 우리는 "

더러운 세상하며 술을 마시며 그녀를 잊어가려는 즈음에 그녀가 BMW를 몰고다니는 강남 황태자란 별명을 가진 동기와 사귄다는 소문을 들었다. '정말 더러운 세상'하며 그는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모든걸 잊기로 결심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일이 있고부턴 그는 눈에 띄게 긴장하고 또 초조해 해 하는것이었다.

 

그는 밥을 다 먹고 밥그릇과 수저를 씻으며 2시까지 전화가 오지 않으면 찾아가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뒤 그는 꼼꼼히 면도를 하고 부드러워진 자신의 뺨과 턱을 확인한 뒤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마냥 전화만 기다릴수 없어서 학교 도서관이라도 가서 토익공부를 할 참이었다. 몇벌 않되는 남방이지만 깨끗하게 다려진 옷을 걸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때 징~~잉하며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전화가 사지를 떨었다.

"여보세요, 영식이냐?"  여자를 잊게해준 친구 영식이었다.

"알바는 구했냐?"

"전화 기다리고 있어. 너는?"

"홍대에 있는 클럽있잖아 요즘 핫한데~ 거기서 일하기로 했어."

"너 잿밥에 더 관심있는거지?"

"인마 인생이 전세 아니면 월세라는데 놀면서 돈도 벌수 있는데 고민할게 뭐있냐?"

"나 지금 도서관간다. 있다 전화하께"

"오늘 방학했다. 긴장 좀 풀어라 인마"

"끊어"

 

동우는 입학할때 부터 보아온 영식이가 제대후에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걸 느꼈다. 그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영식이가 입학초기에 자신의 꿈을 말하며 눈을 반짝이던 그때를 기억하기 때문에 지금의 삼포세대니 전세아니면 월세니 하는 말을 하며 일칙감치 포기 하려고만하는 그가 못마땅하였다. 그렇다고 동우도 이렇다할 뽀족한 수가 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애먼 대문에다 화풀이하듯 쾅하고 닫고 나와 버렸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었지만 벌써 아침기운은 사라지고 태양은 정오의 열기를 조금씩 뿜어내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다 노래방 사장님이 11시 쯤에 출근 하시는것이 갑자기 생각이나서 그는 바로 지하철로 발길을 돌렸다.

 

홍대의 오전은 그야말로 차분하였다. 아니 차분하다기 보다 실신 했다고 표현하는것이 더 맞는것 같다. 밤새 필름이 끊기도록 마시고 오바이트하고 씻지도 않고 아직 자고있는 실신한 홍대앞 거리.10번출구앞을 나서자 마자 시큼한 바람냄새가 났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의 발길이 기억을 더듬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1층 주점과 2층 노래방이있는 건물은 홍대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자리잡고있다. 그는 익숙한 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10시 정도인지라 예상대로 가게문은 닫혀있었다. 그는 2층계단에 앉아 가방에서 토익책을 꺼내 들었다.

'900점은 넘어야 취직이 된다는데 아니 어학연수정도는 다녀와 줘야 어디 원서라도 쓸수있다는데' 하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그는 난독증 환자처럼 한 문장도 읽어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그는 책을 덮고 '수 노래방'이라고 노란글씨가 써져있는 유리문을 쳐다 보았다.

1층 주점과 2층 노래방을 운영하면 한달에 얼마를 벌수 있을까?

아니 이 두층의 가격은 얼마일까?

노래방 하나를 하는데 얼마나 들까?

그전에 6개월동안 일할때엔 가져보지 못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40대 초반의 젊은 사장, 가장 번화한 홍대앞에서 부모님이 차려 준 주점과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고,마포동에 40평대 아파트에 살며, 아름다운 사모님과, 토끼같은 자녀들...사장은 그의 동기인 강남 황태자처럼 다른 출발선상에서 시작하는 사람중의 한사람인것이다. 강남 황태자는 그의 별명답게 이번 방학을 영국에서 보낸다고 한다. 다른 출발선상에 있는 사람들과의 격차는 매일 눈뜰때마다 한걸음씩 더 벌어져 있는듯 했다.

 

"김군이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11시가 다 되어버렸다. 예전보다 배가 조금더 나온 최 사장은 예상외로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학이 되니 더 바빠서 어제 전화를 그렇게 끊어 버렸지 뭐야. 안그래도 지금 전화 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김군은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장님을 따라 예전보다 더 세련되게 인테리어가 된 가게안으로 들어갔다. 담배냄새와 술냄새가 방향제 냄새와 섞여 끈적하게 코 점막에 들러붙었다. 

"아르바이트 구하려고 전화한거 맞지?"

"예"

"제대하고 복학한거지?"

"옙"

"근데 아직 목에 힘이 않풀렸네 하하, 오늘부터 일해도 되지? 일하던 애가 방학이라서 고향 내려간대. 김군은 유경험자니까 시급을 조금 더주고 야간은 두배로."

사장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지만 계산은 정확히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목에 힘풀라구"

사장은 1층 영업준비를 해야한다며 2층을 그에게 맞기고 유유히 내려갔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노래방 기계를 켜고, 화장실 불을 켜고, 환풍기를 켰다.

기억을 더듬어 모든걸 turn on 시켰다.그는 예전보다 더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고 군대에서 배워온 별거아닌것같았던 것들이 그를 프로페셔널한 생활인이 되게 해주는것 같았다.

배달된 점심을 먹으며 '홍대앞 수 노래방에서 오늘부터 일해'하고 영식에서 문자를 보내고는 답장도 기다리지 않고 휴대폰을 가방에다 쑤셔 넣어버렸다.

1층의 준비를 끝내고 올라오신 사장님께서 잘 정돈된 상태를 보고는 '역시 김군'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웃어주었다.


2시쯤부터 5시까지 뜨문뜨문 손님이 온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노래를 부르러 오는 사람들이거나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오전시간에 오는 돈없는 고등학생들이다. 

"어서오십시오"

"7000원입니다"

"음료수 드시고 싶으신거 골라가십시오"

"몇번 방으로가십시오"

그리고 에어컨 틀어주고 시간 넣어준다.


그는 손님이 붐비지 않는 틈엔 가끔씩 책을 읽기도한다. 시끄러워서 공부는 할수 없고 그렇다고 잉여시간들을 그냥 보낼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님도 오히려 책읽기를 권하셨다.

"김군때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돼. 책않읽으면 나처럼 된다구. 점잖게 돈벌지 못하고 낮밤이 바뀌어서 다른 사람들 처럼 사람답게 살지 못하잖아."

빛을 많이 보지 못한 탓인지 하얀 그의 얼굴이 이럴땐 잠깐 진진해졌기 때문에 그는 작년부터 사놓고 읽어보지못한 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이라는 책을 카운터에 두고 짬짬히 보곤하였다.


5시이후부터 전쟁은 시작된다.

 

"어서오십시오"

"15000원입니다"

"음료수 드시고 싶으신거 골라가십시오"

"몇번 방으로가십시오"

그리고 에어컨 틀어주고 시간 넣어준다. 그리고 다음 손님을 위해 빨리 방을 비워야 하기때문에 기계를 주시하고 있어야했다. 손님이 기다릴땐 1분전에 서비스시간을 5분만 주어야 하기때문에 긴장하고 주시해야한다.

수 노래방은 여전히 장사가 잘되었다. 밤과 주말에 더 활기가 넘치는 이곳 홍대앞에서 1층 주점을 거쳐오는 손님들만 받아도 새벽 3~4시까진 쉴틈이 없었다.

한가지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녁 6시엔 1층엔 사모님이 카운터를 보시기 때문에 사장님은 2층 카운터만 보시면 되는데 사모님이 오실시간이 되어서는 자주 시계를 보시고 나에게 카운터를 맞기고 내려가는 횟수가 잦았다. 사모님과의 금실이 더 좋아지셨겠거니 했지만 왠지 불안해보이는 사장의 눈빛에서 이상함을 느낄수 있었다.

사장님과 사모님은 3시경에 퇴근하시고 그는 새벽 4시부터 정리를 하기 시작해서 5시 정각엔 turn on되어있던 모든것들을 turn off 시키고 집으로 돌아 갔다.

아침 첫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길에 가방에 있던 폰을 꺼내들었다.

2통의 문자와 1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모두 영식이다.

'잘됐네,  여기 노래방이랑 멀지 않아 시간있으면 들러라, 물좋다'

'나 지금 여자랑 나간다. 내일 전화하께'

이래 놓구선 자기가 먼저 전화했다.

'미친놈'

이라고 답장을 쓰려다가 동우는 지워버렸다.

 

오랜만의 육체노동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물론 끈적한 노래방의 공기보다 새벽 골목길의 공기가 더 신선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기가 오랜만인듯 했다.

오전에 보았던 책의 한구절이 생각이 났다

"희망은 지금 이곳에서, 자네가 만드는 거야. 불행할 게 뭐 있어? 오늘, 이곳에서, 가능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네"

그는 간단히 양치만 한뒤 아무렇게나 이불을 펴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반듯하게 개어논 이불의 날도 그의 남방에 세워놓은 선도 모두 무너지고 없는 시간이었다.

 

이런 조금은 피곤하고 단순한 일들이 조용히 일상을 이루며 그의 시간들을 채워가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있는 무언가를 가르켜주겠다는 책을 읽으며 하루 하루 보내는 그날같은 매일이 지나갔다. 하지만 뭔가 그날같지 않은 한가지는 사장님이었다.

사모님과 싸우셨나 생각하다가도 두분이 있을때는 늘 다정해 보였기때문에 그런것도 아닌듯 해보였다. 3주정도 지났을때야 그는 사장님의 행동을 이해할수 있었다.

어느날 만취한 상태로 사장님이 2층 노래방에 올라오신 것이다.

"집사람이 오늘 일칙들어갔어"

"사장님도 일칙들어가십시오 제가 택시태워드리겠습니다." 사장은 두손으로 머리를 쥐어 뽑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그놈이 쉬는 날이거든."

"그놈요? 누구요?"

"1층 서빙보는 키큰놈"

이상호씨를 말하는것 같았다. 키크고 모델같이 호리호리하게 생긴 남자를 지나가면서 몇번 보았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그놈이 쉬는날에 꼭 마누라가 일칙 집에 들어가거든...."

사장님은 꺼이꺼이 우는듯하다가 술기운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행이 마감시간이어서 노래방 문을 닫고 사장님을 들쳐업고는 주차장으로 갔다.

사장님의 은색 BMW M3 COUPE 가 주차장 구석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차! 키'

그는 차 열쇠가 노래방 책상 서랍에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술취한 사람을 두고 다시 올라갈수가 없어서 할수없이 그는 택시를 잡아 타야만 했다.

워낙 유명한 아파트이고 또 입대전에 한번 찾아가본적이 있었던 터라 기억을 더듬어서 그의 집앞까지 도착하였다

몇번 벨이 울리고 나서야 사모님이 자다 일어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셨다

"어머 김군. 웬일이야?"

그러고는 축처져있는 사장님을 보시고는 대번에 예쁜 얼굴의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다른 말없이 "고생했어요" 하며 익숙한 일인듯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사장님을 침실에 옮겨다 주고 재빠르게 인사만 하고 집을 나왔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가려먼 너무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그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이미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온갖 전단지만 텅빈 골목을 뒹굴고 있었다. 그는 노래방 앞에서 내려 한블럭 뒤에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한바탕 뛰었더니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문을 열기위해서 문고리를 잡았을때 계산대에 있는 익숙한 눈과 마주쳤다.

"동우오빠?"

"아....어...미우구나"  BMW를 따라간 송미우가 거기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도 그런곳에서 그를 만난것이 부끄러운지 그 뒷말을 잇지 못하고 그의 신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 요 앞 수 노래방에서 일해"

"그래요? 저두 방학하고 계속 여기서 일했어요"

"그렇구나....몇시에 집에가니? 커피나 한잔 할까?"

"아니에요. 지금 커피 마시면 잠 못자서 않돼요"

그녀는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계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참...내정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컵라면하나와 삼각깁밥하나를 골라서 돌아왔다.

"밤새는거 위험하지 않아?"

그녀는 삑 삑하며 바코드를 찍은뒤

"예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2600원입니다."

"응.. 여기, 몇시에 집에가? 데려다 줄께"

"괜찮아요. 지금 정리하고 바로 앞에서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

"그럼 정리하고 있어. 잠깐 노래방에 갔다올께.가지말고 기다려"

 

그는 컵라면과 삼각김밥을들고 노래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사장님의 차열쇠를 들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충성스러운듯 묵직한 느낌을 가진 그차는 얌전히 주차장을 지키고 있었고 시동을 켰을때 차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는 차를 편의점 앞으로 몰고가 세웠다. 교대중인 그녀와 또다른 사람이 모두 그를 쳐다 보았다.

그녀에게 면이 서는듯해서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

"집이 어디야?" 

"영등포요"

그는 뛰는 가슴을 달래며 네비게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영식이도 홍대앞 클럽에서 일해."

정적을 깨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야만 할것 같았다.

"........"

"수철이는 영국갔다며"

".....헤어졌어요"

"......그랬구나..미안"

짧고 어색한 대화는 이렇게 급하게 끊어져 버렸다.

둘은 마포대교를 지나며 새벽안개가 떠있는 한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빠"

"응 미우야"

"이 차 오빠 차 아니죠?"

"..........."

이제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훔친 차는 아니지만 주인 모르게 끌고나왔으니 훔친차가 돼버렸다. 내차도 아닌 차로 우쭐대기까지 했으니 더욱 부끄러울 노릇이었다. 남의 차를 타고 남의 인생을 흉내내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녀는 내일보자, 잘자라,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안개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는 돌아와 차와 열쇠를 제자리에 두고난 뒤에 홀 쇼파에 누웠다.멀리 카운터위에 뭔가를 가르쳐주겠다는 책이 눈에 보였다.

그는 이미 그 책을 다읽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끄떡여가며 그책을 읽었는데도 인생은 배운대로 되는게 아닌것 같았다. 그책 어딘가에 사랑보다 깊은 우정을 느끼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현자가 말했지만 그는 이미 미우를 좋아하게 되버려서 우정을 만들 기회를 잃어버렸다. 어색한 고백때문에 뒤틀려버린 미우와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었다..그때 고백하려고 하던 나를 불러 다시 세우고 싶다고 그는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끈질기게 울어대는 전화벨소리에 깨어서 그는 일어났다.

"김군, 몸이 않좋아서 오늘은 쉴꺼야 노래방좀 잘 부탁해"

"예 알겠습니다."

"하하, 아직도 목에 힘을 못뺐구나. 김군..살아보면 알겠지만 인생이 다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 근데 김군처럼 그렇게 몸에다 뻣뻣하게 힘주고 살았다가는 금방 부러진다구. ...자 그럼 오늘 잘부탁해" 그는 어제일은 기억이 없는지 아니면 시치미를 떼는지  쾌활한 아침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힘을 빼라구 김군!'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다 못잔 잠과 싸우며 하루를 보냈다. 그는 힘을 뺀다는 속뜻을 알수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물리적인 힘을 빼고 일을 했다. 각을 잡아 빡빡 문지르던 바닥청소도 힘을 뺐을때 덜 피곤했으며 그날따라 시비걸던 술취한 손님도 힘을 빼고 대하니 화가 나지 않았다.

슬슬 정리를 하고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되어갔다.  미우가 교대할 시간이었다.

그녀 생각을 하자마자 몸이 다시 굳어지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BMW열쇠가 있는 서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힘을 빼라구 김군~그래야 부서지지 않아" 그는 잡념을 떨쳐버리고자 머리를 흔들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힘을 빼자구 김군, 모든건 내가 만들어 가야 되는거라구"

 

그는 가볍게 뜀뛰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꽉 쥐고 있는 손을 흔들어 풀었다.

인생이 만들어 낸 풀지못할 어려운 상황에 그는 그런식으로 마주해 오고 있었던 것을 이제 알았다. 주먹을 바짝쥐고 몸의 모든 근육들을 긴장시켜 보이지 않는 적과 무턱대고 싸워보겠다고 준비를 하는것.

그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굉장한 거인이라 착각하며 대면해오던 인생이라는것이 그냥 그가 만들고 있는 평범한 오늘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림자와 싸우느라 늘 긴장하고 애타했던 자신을 이제 보게 되었다.

또한 그에게 있어 오늘이라는 작은 단위의 인생을 살아가는데에는 BMW 도 애절해서 놓치기 싫은 사랑도 거추장 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미우와는 사랑에 실패했으니 이제 우정을 쌓을 기회가 그에게 주어진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마음의 힘도 빼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칼 필레머의 책을 가방에 챙겼고, 오랜만에 긴장감없이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교대하고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송미우 같이가자~~"

그는 멀리서 지하철쪽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향하여 뛰어갔다.

 

다음날 사장은 해맑은 얼굴로 다시 출근했고 1층 개점준비를 하러내려가다 말고 돌아와서는 "점심 내것도 시켜줘, 짬뽕으로" 하고는 총총총 소리를 내며 내려갔다.

"마누라는 가게 나오지 말고 이제 집에 있으라 했어"

"이상호씨는요?"

사장은 후루룩 짬뽕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캬~ 1층은 상호씨 때문에 장사가 되는거야, 그리고 나도 눈에 힘좀 뺐지, 힘빼고 보니까 둘이 아무사이 아니더라고..하하하, 그리고 마누라가 셋째 임신했어"

"축하드려요"

"어!! 김군 축하드립니다가 아니고 축하드려요야? 그새 편해졌나봐 하하하"

"그러게요"

둘은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먹는 사람처럼 웃었다.

"참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김군이 2층 총책임좀 맞아줘, 난 1층에 힘쓸테니까"

"예 그렇게 하죠, 그런데 방학때까지만이예요"

"총책임 맡으면 시급이 아니라 월급으로 줄께. 중소기업 대리정도수준으로 어때? 계속할 생각 없어?"

그는 잠시 생각하고는 이야기 했다.

"누군가가 그랬어요. 사랑하는 일, 매일 하고 싶어 설레는 일이 직업이 되어야 한다고요"

"저분?" 사장은 짬뽕국물이 뚝뚝 흐르는 젓가락으로 카운터위의 책이 늘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동우는 아무말없이 웃어보이며 자장면의 마지막 한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시간을 들여서 장래에 무슨일을 하면 좋을지 찾아볼려구요"

"그래 그래, 그렇게 하시게나. 그러고보니 이제 몇주전에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그때의 김군이 아니네. 인생이 마음대로 살아지진 않지만 어떻게 살지는 신중하게 마음먹어야지 않그래?"

 

일을 마치고 미우에게로 가기전에 휴대폰의 문자를 열어보았다.

'나 짤렸다. 젠장'

영식의 문자였다.

'인생 살고싶은대로 살아지는거 아니지?. 내일 술이나 한잔하자' 고 오랜만에 친구에게 답장을 했다.

 

그리고 저 멀리 홍대역 지하철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미우가 보였다.

그는 어느때 자연스럽고 경쾨한 흔들림으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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