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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너에대한 나의 해석

[너에 대한 나의 해석]

 

 

그 친구와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초등학교도 같이 나오긴 했지만 그녀와 같이 했던 기억이 시작되는 시간은 정확히 중학교 때 부터이다. 같은 반이 되고 단 한 표의 차이로 나는 반장이 되었고 그녀는 부반장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2학년이 끝날 때까지 라이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키도 고만고만했고 집안 형편도 비슷했으며 위로 언니가 하나 있다는 것까지, 우리는 서로 닮은 점이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성적까지 비슷해 그녀와 나는 한 표차이로 운명이 갈린 것처럼 한 문제 차이로 엎치락뒤치락 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한번 1등을 하면 나는 밤을 새워 공부해 다음번 시험에는 내가 1등을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태연한척 하지만 다음 시험에서 나를 이기기 위해 밤을 새워 공부한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반을 하는 1년 내내 서로 경계만 할뿐 편한 친구사이는 되지 못하였다.

 

사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성격이며 집안이며 나와 라이벌이었다는 것까지.. 실제와 다른 아이를 기억하는 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에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단발머리에 똑같은 교복을 입은 우리는 같은 교과서로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밥을 먹었지만 그녀와 내가 달랐던 점은 바로..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26살 후반 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취업관문에 막혀 도서관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고 다닐 때였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여간해서는 취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 공무원이나 해보려고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내겐 공부가 힘든 것보다 늦은 나이에 도서관에나 처박혀있어야 한다는 생각, 꽃피워보지 못한 내 젊음이 아깝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골 도서관은 한갓졌다. 점심을 먹고 푸른 등나무 아래서 커피를 마시며 떠가는 구름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어디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을 때 흔들리는 그림자 아래로 중학교 때 모습 그대로 백팩을 메고 한손에는 큰 영어사전을 들고 안경을 추켜올리며 나를 보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나는 그녀를 보자 반가움보다 반사적으로 예전의 긴장감이 다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취직도 못하고 이렇게 있는데 그녀는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그녀의 두꺼운 사전을 보며 열심이었던 예전의 내 모습도 다시 떠올라 약이 올랐다. 그녀가 터벅터벅 내 앞으로 다가 왔다. 심장이 쿵쿵 방망이질 쳤고 나는 반가우면서도 예민해 졌다.

우리는 일단 반갑게 인사를 했고 음료수를 나눠 마셨다. 하지만 그녀의 잘 지내냐는 인사를 시작으로 나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 되는 듯 했다.

 

그녀의 그간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녀는 동네에서 영어 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고 있었다. 졸업은 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영어 영문학 졸업장을 따고 싶어서..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영어선생님이 되기 위해 유학을 준비 중 이었다고 했다. 학비도 벌어야 했고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영어점수도 따야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준비한다는 그 시험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며 유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뜬구름 잡는 일인가 하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히려 내가 현실적이고 쉬운 길을 택해 다행이었다. 우리는 잠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후 헤어졌고 나는 그녀를 만난 후 공부할 이유가 다시 샘솟기 시작했다. 모든 게 귀찮고 의미가 없었던 내게 그녀의 존재는 이런 것이었다. 세상 다른 사람에게는 다 져도 그녀에게 만은 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이것은 내 나름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만난 것이 잘된 일일 것이라고 생각 한 것은 나만의 오해였을 것이다. 그녀는 도서관을 오가며 나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해도 예전만큼 나를 의식하지 않는 듯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이유로 자극을 느끼던 어린 그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몸에 밴 듯한 성숙함이 그녀 주위에 아우라를 만들어 나 따위는 밀쳐내 버렸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자면 내가 보지 못했던 세월동안 그녀는 잘 자랐다. 손에는 습관처럼 책이 들려있었고, 비록 코흘리개들을 가르칠지언정 영어 교육자의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녀는 이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그녀의 오가는 뒷모습을 보는 나만이 아등바등 그녀의 뒤를 쫒는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고 나는 여러 번의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영어점수를 올려 받더니 드디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대학원 합격소식을 듣고 나는 축하해 주었다. 그러고 돌아서는 길에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진지한 물음을 내게 던져버렸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이것은 그녀가 나에게 물은 질문이기도 했다.

한 달 뒤 그녀는 나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놓고 머나먼 유학의 길을 떠났다. 나는 그녀가 잘되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못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사라진 도서관은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열심히 잘하고 있을 거란 생각도 해보았지만 더 이상 내게 큰 자극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공부에 손을 놓아 버렸다. 그러다 우연찮게 작은 회사에 일자리를 구해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녀의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그녀는 미국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공부가 어려워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항상 밝은 목소리라고도 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일까? 그녀가 떠나며 던진 질문이 질문을 던졌다. 누구도 나에게 삶의 진지한 해답을 선 듯 내주진 않았다. 나는 그제야 그녀가 그랬듯이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하였다. 철학에서부터 종교까지, 소설에서 시까지. 그녀처럼 시작했지만 그녀를 의식하지 않고 천천히 책을 읽어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녀에 관한 생각을 차츰 잊어 버렸다. 일 년이 가고 한 번의 이직이 있었고 서울로 직장을 옮길 기회가 생겨 나는 고향과도 천천히 멀어졌다.

 

지금 나는 혼기가 훌쩍 넘었고 고집스럽게 솔로생활을 유지하면서 역시나 작은 회사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일이 적성에 맞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모두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여느 직장인처럼 참고 버티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 나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간간히 소설을 쓰고 있다. 그녀와 헤어지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까지 되었다. 신춘문예를 꿈꾸고 있으며, 이런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가끔 글을 쓸때 그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항상 웃을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어도 행복할 것이고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멋지게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느 날 고향에서 그녀의 결혼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만사를 제치고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영락없는 새색시처럼 홍조를 띠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상상했던 대로 그녀는 잘 살고 있었다.

나 외에도 알고 지냈던 친구 몇이 더 있었다.

이미 결혼해 아이를 안고 친구를 위해서 와 준 그녀의 오래된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녀의 근황이 궁금했지만 꾹 참고 있었다. 이런 날 이런 자리에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그녀라도, 그리고 내가 아무리 많이 변했다고 해도 그녀와 나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한 번에 변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 성주 긴장하는 것 봐, 얘는 미영하고 있음 꼭 이러더라.”

눈치 빠른 친구가 한마디 했다.

얘네 둘은 옛날부터 라이벌이었잖아. 안 그래?”

나는 그저 웃기만 했지만 부끄러웠다. 내 질투심 많은 코흘리개 자아가 그녀 앞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하하하. 그래 맞아 성주는 나하고 있으면 아주 이글이글 불탔지. 그래도 지금은 예전의 그런 분위기는 없는데?”

그녀도 오랜만에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많이 불편했었다느니 하며 심경고백이라도 할까봐 잠깐 난감했지만 뭐 어때 다 지난 일인데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영이 이번에 2번째 임용에서 떨어졌어. 3차 면접에서 떨어졌데.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 ”

어머머 아까워서 어떡하니?”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떨어졌다고 하니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앞에서는 나는 여전히 중학생이었다.

그런 내 얼굴을 보며 그녀는 웃는 듯 했다.

지금은 대안학교에 근무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이야기했다.

미영이는 한 가지 하면 끝장을 보는 것 알아줘야해. 예 중학교 때 별명이 악바리였잖아.”

불연 듯 나도 그 별명이 생각이 났다. 다음시험에 1등을 하려고, 좋아하는 영어 과목에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밤을 새며 열심히 하던 그때의 그녀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악바리.....그럼 그때 나의 별명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은 나를 뭐라고 불렀을까?

 

돌아오는 길에 내일 결혼식에 보기로 약속하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나는 오랜만에 엄마 집에 들렀다. 그리고는 중학교 졸업앨범을 꺼내 보았다. 3학년 때 바로 옆 반이었던 그녀가 나보나 먼저 얼굴을 드러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다만 세월의 흔적이랄까... 조금씩 처지고 있는 피부가 세월을 갈라놓았지만 그 분위기만은 변함없어 보였다. 그 다음에 얼굴을 내민 내 모습. 큰 뿔테안경을 끼고 모범생처럼 근엄한 표정은 하고 있는 이 아이는 지금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때의 내 별명이 떠올랐다.

단발머리에 똑같은 교복을 입은 우리는 같은 교과서로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밥을 먹었지만 그녀와 내가 달랐던 점은 바로..별명이었다. 그녀의 별명은 악바리였고 나의 별명은 덜렁이였다. 그녀는 악바리여서 악바리처럼 살았을 것이고 나는 덜렁이여서 덜렁이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반대였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열심히 했어도 내게 붙었던 덜렁이라는 별명은 졸업할 때 까지 붙어 다녔으며 미영이의 악바리라는 별명을 부러워하며 그녀를 질투했다. 내게 한번 붙었던 그 별명이 나를 만들었을까?

그녀와 나를 갈라놓은 그때의 작은 차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돌이킬 수없이 벌어져 버린 것 같았다. 지금의 나와 그녀를 비교해 보자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길게 한숨이 나왔다. 그때 그 시절에 나를 제대로 알았다면, 그런 별명이 붙은 나를 고쳐보려고 노력 했을 것이고 지금 조금은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책상 앞의 작은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때의 덜렁이가 늦게나마 철이 들어 앉아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악바리 같았던 친구의 인생을 30년 넘게 부러워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내 인생을 살아야지 생각하며 졸업앨범을 덮었다. 그리고 좀 더 성숙하기를 바라며 어릴 적 쓰던 작은 나무책상에 앉아 쓰다만 원고를 꺼내 찬찬히 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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