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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미들마치로 가는 길

[미들마치로 가는 길]

 

 

 

오늘날에도 수많은 테레사가 태어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명성을 드높일 서사적 삶을 찾아내지 못한다. 고귀한 정신은 있지만 그런 정신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실수투성이 삶을 사는 것이다. ’ -미들마치 중에서

 

*미들마치 : 영국의 작은 도시이자 소설의 제목

 

바람이 북극의 얼음이라도 몰고 바다를 건넜는지 옷깃을 여며도 찬 기운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인천 국제공항에 내려 그 규모에 놀라 넋을 놓고 있다 서늘한 기운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갈 방향을 확인하고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출구로 향했다.

그녀는 종로로 가는 공황버스를 타고 흘러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서울 공기를 마시다니. 그녀는 나고 처음인 상경에 새삼 감격스러웠고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엔 졸음과 씨름하며 공부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일을 시작으로 그녀의 인생이 지금 달리고 있는 인천 대교마냥 쭉 뻗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만학도로서 해냈다는 뿌듯함에 최근 자신감 또한 최고조에 올라와 있는 그녀였다.

 

버스의 문이 여닫히면서 건들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그래서 그녀는 잠을 깨고 밖을 바라보았다. 몇 층인지 셀 수도 없는 높은 건물들이 세련된 광채를 발하고 일제히 일어서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행히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놓치지 않고 내릴 수 있었다. 광화문 광장.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녀는 아침 댓바람부터 서둘렀었는데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것이다. 정류장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니 시청이 보였다.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낯익은 건물이 광장 끝에 어색하게 서있었다. 그녀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이 시청 쪽으로 뛰어 갔다. 몇 개의 건널목을 건너야 할까? 생각하면서 건널목 앞에 섰다. 지방에서 올라온 티가 나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들 눈을 피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날 때 약간의 여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잊지 않고 잰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지하철 입구에서 아주머니들이 광고지를 나눠 주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어쩔까 생각을 하다 추운 날씨에 손을 꺼내는 것이 귀찮아 고개를 숙이고 지나쳐 왔다. 그리고 덕수궁이 보였고 시청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서울이라고 직장인들의 모습이 다르지는 않았다. 몸은 웅크리고 있지만 즐거운 표정인 그들에게 동지의식을 느꼈다. 그녀도 잠시 서서 쏟아지는 정오의 해를 만끽했다.

 

그때 그녀의 평화로운 시간 속으로 낯선 손이 불쑥 들어왔다. 그것은 뼈만 남은 거친 노인의 손이었다. 그녀는 순간 짧은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어 삼켜버렸다. 그러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고 더듬어 따라가 손의 주인을 찾아내었다. 거기에는 몇 년은 씻지 않은듯한 얼굴을 하고 머리카락으로 눈을 반쯤 가린 체 그녀 앞에 버티고 서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지독한 노숙자였다. 가끔씩 그녀가 일하는 주민 센터에 찾아오는 부랑자들이 있었지만 남자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그들과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 노인은 그녀가 꿈쩍도 않자 반 발짝 더 다가섰다. 그의 눈은 그녀의 가방을 향해 있었고 그녀가 지갑을 꺼내기 전에는 돌아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녀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그녀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적선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미나에 늦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잠시 주춤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뒤돌아 시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큰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뒤에야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그가 쫓아 올까봐, 그래서 그녀가 공무원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봐 그녀는 마음이 졸여왔다. 하지만 다행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 돈을 구걸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세미나가 열리는 5층 강당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전국의 문화 관광과 공무원들이 모두 모여 있는 듯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서로 통성명을 하며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눈의 띄었다. 그녀는 가능한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모두 밝은 얼굴 이었지만 그녀는 방금 일어났던 일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못 볼 것을 보고 도망쳐 나온 기분이 들었고, 자신이 뛰어 도망쳤던 사실 또한 부끄러웠다. 그녀는 배가 고파왔다. 그 일이 없었다면 편의점에서 라면이라도 먹고 들어올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아차 하며 지금이 점심시간이라는 것, 그래서 그 노인은 정말로 배가 고팠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 배고프고 가련한 노인을 매몰차게 못 본체 해버린 것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인정 없는 사람인가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은 줄곧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착석을 했고 국민의례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지나버린 일이니 생각 말자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20대 중반의 젊은 아가씨가 10분이 지난 뒤 뛰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강의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는 대전에서 온 강빛나라고 합니다. 지루하시죠? 음료수 한잔 하실래요? 아가씨는 나긋한 말투로 그녀와 친해지려고 했다. 저는 합천에서 온 김솔입니다. 통성명을 하고 둘은 밖으로 나왔다. 기지개를 켜고 어두워 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솔씨, 여기서 일하면 정말 샐러리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겠어요. 늦게까지 켜져 있는 맞은편 사무실을 보면 마치 내가 거기 있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요?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빛나씨 덕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어쩐지 묶은 때를 씻어내 주는듯한 맑은 목소리였다.

덕분에 그녀는 그날의 강의를 그럭저럭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딱히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빛나씨와 함께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치 빠른 빛나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근처에 맛있는 집을 안다며 그녀를 안내하겠다고 했다. 둘은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낮에 그녀가 지나왔던 길을 따라 다시 걸어갔다. 돈가스 좋아하세요? 일본식 돈가스인데요. 저 가끔 서울 오면 그 집에 잘 가요. 솔은 그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세종문화회관 앞은 어느새 관광객들과 차들로 무척 붐비고 있었고, 매연 때문에 목이 따끔거려 왔기 때문이다. 서울은 보기와는 다른 이면을 빨리 드러내었다. 솔은 사람들의 구두 뒤축을 보며 아슬아슬하게 비껴 걸었다. 드디어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골목으로 들어섰고 솔은 빛나를 따라 2층에 있는 작은 일식 돈가스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실내의 따뜻한 기운에 그제야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둘은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았다. 솔은 마주 앉은 빛나의 두 손이 전단지로 가득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정리해 옆자리에 두고는 메뉴판을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그걸 왜 다 받아오셨어요? 귀찮지 않아요? 하고 솔은 빛나에게 물었다. .그렇죠. 근데 날이 춥잖아요. 아주머니들 일찍 퇴근하시라고요. 라며 활짝 웃는 것이었다. 솔은 뭔가 찌릿하고 가슴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내색은 않았다. 좋으신 분이군요. 하고 솔은 빛나에게 가만히 이야기 했다.

둘은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끌고 숙소로 향했다. 둘의 숙소는 달랐지만 같은 방향이어서 어느 정도 같이 걸을 수 있었다.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걷다 지하도로 내려갔다. 긴 지하도에서 둘은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길 양쪽으로 쭉 늘어 누워 있는 노숙인들을 본 것이다.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솔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조금 전 보았던 화려했던 서울의 밤거리는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과 빛나는 서로 바짝 붙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솔의 걸음이 잠깐 멈칫하였다. 그녀는 길 끝에서 종이 박스위에 앉아 있는 낮에 본 노인을 발견한 것이었다. 낮보다 더 말라 보이는 그 노인은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죽은 듯 벽에 기대어 있었다. 마치 서울의 유령이라도 될세라 그는 자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멈춰선 솔의 얼굴을 보던 빛나는 그녀의 팔을 툭하고 쳤다. 솔은 빛나의 얼굴을 보며 그냥 웃어보였다. 지하도를 겨우 빠져나오자 둘은 숨을 몰아쉬었다. 온 몸에 뭔가가 달라붙은 느낌이 들어 옷이라도 벗어서 털고 싶은 지경이었다. 금방 왜 그랬어요? 빛나는 솔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본 할아버지요. 낮에 시청 앞에서 봤거든요. 제게 돈을 구걸했는데 바쁘기도 해서 그냥 지나쳤지 뭐예요. 다시 만날 줄 몰랐네요. 솔은 자신의 가방을 돌려 메며 빛나를 보았다. 그러셨군요. 저도 낮에 그 할아버지 만났어요. 제게도 불쑥 손을 내미시기에 근처 편의점에 가서 빵과 우유를 사드렸어요. 점심때라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그냥 돈을 주긴 그렇잖아요. 따뜻한 밥을 먹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 솔은 다시 한 번 찌릿하며 가슴속에 전류가 흘렀다. 솔은 빛나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평범한 외모의 젊은 여성이었지만 이름처럼 그녀는 빛나고 있었다.

참 좋으신 분이군요. 저는 사실 무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도망쳤었어요. 하고 솔은 빛나에게 자기도 모르게 고해를 했다. 고해가 맞는 것이 그녀의 환한 얼굴을 보니 불편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빛나는 웃었다. 사람들 다 그래요. 저도 그렇고요. 근데 언젠가 한번 도와줘야겠다 생각하고 나니 어렵지 않더라고요. 그런 이야길 들었어요. 자꾸 도와주면 버릇 돼서 혼자 살아갈 힘이 없어지지 않겠냐고...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 했거든요. 근데 겨울이 되면 마음이 바뀌어요. 보세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 추위를 견딘다고 생각해보세요. 술이라도 마시고 버텨야하지 않겠어요? 빛나의 말에 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지금 이 길을 걷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그런데 자신은 한 번도 모르는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오직 자신만 생각하며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내가 배고픈 것만 생각하고 내가 추운 것만 생각하며 걸어왔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핑계를 만들고 살았는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자신의 인생은 핑계로 범벅이 된 삶이었다. 어느새 둘은 헤어지고 저만치 솔이 묵을 호텔 미들마치의 간판이 보였다. 평범한 작은 도시 미들마치가 서울 한복판에 서있었다. 그녀는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객실은 집에 온 것 마냥 편안했다. 자신은 어느 때고 조용한 지방에 살아야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등바등 그렇게 앞만 보고 사는 것 말이다. 그러고 나자 빛나의 웃는 얼굴이 잔잔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과 달리 빛나가 얼마나 넓은 보폭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걷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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