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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내 인생의 절친 [내 인생의 절친] -거북이- 성심요양원 B동 405호, 따스한 아침 햇살이 창을 뚫고 흰 시트위에 쏟아져있다. 늦게 까지 책을 읽다 잠든 김노인은 몇 번 뒤척이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아침잠이 없는 같은 방의 다른 환자들은 벌써 나가고 없어 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김노인은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곳에 들어 온지 한 달이 다 되 가지만 아침이면, 보이는 것이라곤 병원 앞 큰 도로 뿐인 이곳 풍경이 아직 낯설기만 하다. 방음벽 너머로 대형 덤프트럭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세다 얼굴근육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작년 뇌졸중으로 큰 수술을 받은 후 남은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이다. 미국에 사는 아들 내외가 조리를 더 해야 하는 그를 혼자 두는 것이 걱정이라며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 더보기
절망 [절망의 얼굴] 내 얼굴을 보라내 이름은 ‘못 이룬 꿈’어깨를 무겁게 하고 삶의 의미를 흐리게 하는 못 이룬 꿈이라 나를 부른다. 나는 ‘더 이상은 아님’이다.꿈 잃은 자들이 다시 희망을 찾지 못하고절벽 끝 마지막과 마주섰을 때이제 더 이상은 아니라고 나를 부른다. 나는 ‘너무 늦음’이라 불린다.술잔을 기울이며붙잡기엔 너무나 멀리 가버린 것 같아이제는 너무 늦었다 그들은 나를 부른다. 내 얼굴을 보라한강대교 위에서, 겨울 바다에서멍한 눈으로 떠도는 내 얼굴을 자세히 보라.가슴 시리게 바라보라. [낙망] 달에게 빌었던 기도가구름에 갇히었다. 내 기도는 하늘을 떠돌 뿐달을 비켜가 버리고 달을 가린 구름, 구름에 갇힌 내 마음어둔 밤 한숨 되어다시 내려앉는다. [실망] 5주년을 맞은 결혼기념일그가 사온 장미 .. 더보기
뒷골목 고양이 교정소(4) (4) 우리는 고양이 지름길을 따라 단숨에 그곳까지 달려갔다. 늘어서 있는 담을 뛰어넘고 주택가로 들어선 후 짖어대는 개들을 무시하고 어두운 어느 골목까지 도착했을 때 마침 콜필드도 맞은편에서 뛰어 오고 있었다.“무슨 일이냐냥.” 그는 숨도 고르지 않고 우리를 재촉하였다.“치우 영감이 당한 것 같아요, 대장” 콜필드는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는 어두운 골목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곳에는 짖은 짐승의 오줌냄새가 콜필드의 영역냄새를 지워 버렸다. “네오다”콜필드는 기분 나쁜 그 냄새 때문인지 조금은 예민해 보였다.“저깁니다, 대장. 저기 치우 영감이있어요”애꾸눈이가 가리키는 곳을 우리는 일제히 쳐다보았다.골목의 후미진 곳 쓰레기 더미와 같이 노란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그 고양이는 급소.. 더보기
인생은 스트리트 파이터 처럼 [인생은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어린 시절 우리 집엔 백수 삼촌이 있었다. 단벌의 줄무늬 체육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는 경찰 시험 준비를 위해 동네 도서관을 오가던 삼촌이었다. 삼촌은 24살이었고 군대 제대 후 복학을 하지 않고 우리 집에 기숙하는 처지였다. 집안의 막내였던 삼촌은 아빠의 말에 의하면 오냐오냐 키워져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삼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인생의 멘토라고 이야기 하고 싶을 정도로 그는 멋있고 훌륭했다. 삼촌과 내가 각별했던 이유는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때문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와 친구들은 의례처럼 동네의 오락실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항상 삼촌을 만났던 것이다. 어렸던 나는 그런 삼촌이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쪼르르 달려가 삼촌에게 .. 더보기
나는 달밤에 태어났다(2) 엄마도 아빠도 없던 내게 할머니는 ‘너는 달이 낳았지.’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다. 사실 학교들어가기 전까지 친구도 없었던 나는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엄마’라고 불러보기도 하고 달이 대답 없이 반짝이기만 하더라도 나는 좋았다. 하지만 학교를 가고, 아기는 그렇게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이 이야기기가 지어낸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달은 지구를 맴도는 위성. 물도 공기도 없는 별. 암스트롱이 찍은 발자국이 있는 곳. 아무도 살지 않는 무척 추운 곳. 이것이 내가 학교에서 배운 달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할머니가 탯줄이 섰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까지 어떻게 지어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필리핀 외숙모.. 더보기
나는 달밤에 태어났다(1) [나는 달밤에 태어났다] 달이 휘영청 밝은 7월의 밤에, 도암댁은 건너 마을 아들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는 천천히 재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반주로 한잔한 막걸리의 기운 때문에 오랜만에 배실 배실 웃음이 난다. 도암댁의 머리위로 가까이 내려앉은 달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녀의 길을 밝혀 주었다. 이 길을 지나다닌 지 오래지만 그녀는 꼭 이 재를 넘어갈 때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서 한번은 숨을 고르고 서야하는 것이다. 오늘따라 기분도 좋고 달이 밝아 자꾸만 눈이 하늘을 향했다. 그녀는 하늘에 터질 듯이 부푼 달을 보고 있자니 불연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부푼 달은 처음이구먼. 내가 진구 뱄을 때 내 배도 저만큼 빵빵했것제. 하문, 진구 걸마를 낳기 전에 배가 터져 죽지 않.. 더보기
운명 [운명] -거북이- 오전의 태양이 배어 들어오는 반 투병 유리로 된 문을 등지고 누운 지 18시간정도가 지난 것 같다. 반지하방의 네모난 창으로 등교를 하는 아이들의 운동화가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방은 애당초 싸늘하게 식어있었고 지난 3일을 병원에서 보낸 탓에 집에는 사람의 기운이 가시고 없었다. 어제 저녁 집에 돌아와서는 옷도 벋지 않고 누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찢어진 누런 벽지, 장마철이면 벽에서 물이 스며들어 퉁퉁 불어 있다가 가을이 되고서 바싹 말라가며 터진 것이다. 그 사이를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갈 것인지 들어갈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더듬이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오늘부터 학교를 가야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났고 오늘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더보기
낮달 그날 함께 밤을 지낸 여인은 가련한 여자였다. 깡마른 모습이 어느 순간 선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함께 있는 내내 묘한 긴장감 마저 들었던 여자. 몸 전체에서는 삶의 의미가 사라져 가는 듯 해 보였지만 가늘게 뜬 눈은 꺼질듯 꺼지지 않는 초승달의 그것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빛과 그림자의 흔적이었다. 어떤 뚜렷한 테두리를 가지지 않고 공간에 존재하는 잔상과도 같았다. 이상하게 이런 그녀의 모습이 한순간에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 세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흔적 같아서 무심히 바라보다 애처로워 진 것이다. 나는 이곳에 출장을 오면 항상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 바람에 날려온 씨앗이 습관처럼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잠깐 머루르다 갈 때라도 나는 이곳에 다시 찾.. 더보기
자두 한 알 자두 한 알 숲길을 걷는 중이었다. 울창한 숲속이었지만 나무 사이로 터져 들어오는 햇빛에 밝고 화사한 느낌이 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언제 부터인가 맨발이었고 따뜻한 융단 같은 풀잎을 밟으며 여기저기를 헤매는 중이었다. 한참을 길을 따라 걷다가 나는 주먹만 한 빨간 자두가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우연이었는데 나는 원래부터 이 것을 찾고 있었다는 듯이 무척 반갑고 기뻤다. 가까이 다가간 그 나무는 내 키만 한데다가 굵기도 꼭 내 허리만 했다. 자두나무는 처음이었지만 확실히 이것은 자두 나무였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알이 굵은 자두가 이런 인적 없는 곳에서 보석같이 빛나고 있을 줄이야. 나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그 열매에 살며시 손을 갖다 대었다.. 더보기
뒷골목 고양이 교정소(3) “부엉 부엉” 멀리서 들려오는 밤 부엉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달은 머리 꼭대기에 걸려 있고 가로등 하나만 덩그라니 주위를 밝힐 뿐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뭉퉁하고 둥근 앞발을 보며 아직 내가 고양이 임을 다시 확인 하였다. 나는 아직 흰 털을 가진 네발달린 짐승이었다. 이런 상황이 기쁜지 슬픈지 생각하지 전에 배가 고파왔다. 오전엔 설사를 해댄 대다가 점심엔 약이든 우유한 잔 밖에 먹지 못해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애꾸눈이가 누웠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 녀석이 있었던 자리는 냄새와 온기를 남기고 비어있었다.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몸은 짐승이지만 영혼은 아직 사람인지라 한밤중에 미끄럼틀위에서 잠을 깼는데 배가 고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을 할 수 없..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