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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만의 비밀이 있었다(2) 나는 한동안 수업을 듣는 날 외에는 바깥출입을 삼갔다. 그러고는 인터넷으로 아담한 향나무 책상과 의자를 주문하고 그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된 시디들의 먼지를 정성스럽게 닦아내었다. 전원이 뽑혀있던 플래이어에 시디를 넣고 다시 전원을 공급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윙하고 소리를 내며 동작해 주었다. 나는 김선생이 찍어주었던 내 사진을 인화해 오는 길에 봉오리가 맺힌 분홍색과 흰색의 베고니아를 사들고 들어왔다. 곧 꽃이 필 것 같았다. 봄 그 자체처럼 여리고 아름다운 봉오리였다. 나는 오랜만에 그것들의 사진을 찍어 포스팅을 하기위해 컴퓨터를 켰다. 3주 만에 들어와 본 나만의 공간에 몇몇의 사람이 글을 남겨 놓은 것을 보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이 때로는 짜.. 더보기
나만의 비밀이 있었다.(1) [나만의 비밀이 있었다.(1)] -거북이- 남편 몰래 그를 만나기 시작한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엄밀히 따지면 몰래 만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3개월 전에 여행 작가가 되기 위해 한 아카데미를 끊었고 거기에서 그를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직장을 그만 둔 뒤에 나는 여행 블로그를 운영해 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의 권유로 이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와의 만남은 단순한 사고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남편은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하였고, 나도 사실은 혼자만의 감정인지 아닌지 아직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30대 중반정도로 나보다 2~3살 정도는 어려 보이는 사람이었다. 비정상적으로 하얀 얼굴에 항상 환하게 웃었고, 여행 작가다운 냄새를 풍기는 빈티지한 옷차림새가 너.. 더보기
뒷골목 고양이 교정소(2) 떠듬거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온 나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도시의 풍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고양이가 보는 세상은 모든 것이 어마어마하게 커져 있었다. 끝도 없이 하늘로 솟은 빌딩과 코끼리만 해 보이는 자동차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 같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사람들. 이런 세상에서 고양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 , 하수구 아래, 쓰레기 더미 속등 사람의 흔적이 없고 어두운 곳에 고양이들의 삶의 터전이 꾸려져 있었다. 고양이가 되어 코가 예민해 졌는지 아까부터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묘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가 그 냄새 때문에 자꾸 앞발로 코를 문지르자 앞서가던 애꾸눈이 고양이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냄새는 우리 구역이라는 냄새랍니다냥. .. 더보기
묻지 않아도 알수 있는 것들(1/7) [ 묻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게 ]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다. 어제까지 춥고 눈이 오더니 다행이 오늘은 한결 포근해졌다. 나는 집 앞의 커피숍에서 오전부터 앉아 책을 보고 있다. 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30분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구석진 어두운 곳에 자리를 잡은 탓에 눈이 아프기도 했고 혹시나 그 사람이 올까 하는 기대감에 조그만한 소리에도 고개를 들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고개를 들 때마다 매장안의 테이블은 조금씩 채워져 가고 있었다. 모두들 커플인 듯 했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서로 손을 마주잡고 그윽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은은한 카페의 조명과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젊은 연인들의 모습을 더 .. 더보기
고등어 [고등어] 밤사이 매섭게 몰아친 태풍이 새벽녘에야 잠잠해 졌다. 부두에 묶어둔 배 때문인지 뜬눈으로 밤을 보내신 아버지 탓에 영민이도 잠을 설쳐버렸다. 새벽에야 바람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아버지가 밖에 나가시는 기척에 잠깐 잠이 깼던 영민이는 차가운 바다 바람을 안고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누운 아버지의 품에 비집고 든 후에야 다시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세상을 삼킬 것 같았던 밤이 물러나고 아침 하늘은 그야말로 깨끗한 에메랄드 블루의 본연의 낮 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파제를 때리고 밀려가는 파도 소리가 멀리서 부터 다가와 영민의 귓가를 간질인다. 그리고 아이는 몇 번 뒤척이다 부스스 일어났다. 영민이가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벌써 부두에 나가시고 안계셨다. 아직 학교를 다니지 않는 영민이는 아무도 없어 조용.. 더보기
뒷골목 고양이 교정소(1) [뒷골목 고양이 교정소] "학교폭력피해, 왕따고민을 해결해드립니다. 무료상담. 찾아오는 길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우암빌딩뒤 전능 오피스텔 지하1층 TEL: 02 -7555-7676 ,고양이교정소 " 엄지손톱만한 노란바탕의 이 광고스티커를 본 것이 이번이 두 번째다. 이것을 처음 본 건 학교근처의 뒷골목에서 그놈들에게 맞고 있을 때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들어간 첫 등교일 날 그 놈의 앞자리에 앉았었고 내가 입고 있던 낡은 교복이 문제가 되어 시작된 괴롭힘이었다. 엄마가 구제시장에서 한 벌 삼 만원에 사오셨던 내 교복 윗도리에 그 녀석 형의 이니셜이 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재수가 옴팡지게 없었을 뿐이었다. 그 녀석은 강남의 60평이 넘는 무슨 캐슬에 살고 있는 놈이었고 돈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더보기
머나먼 과거의 유물 그는 머나먼 과거의 유물이었다. 만지면 부서질 듯한 그의 갈라진 피부는 섬세한 유물 복원가가 나서도 원형을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부식이 된 듯하다. 하얗게 샌 머리는 수많은 계절을 이기고 견뎌 비로소 빛을 발하는 은빛 실타래 같았고 구부정한 그의 허리는 자연의 순리와 이치 그 자체를 보여준다. 자신만큼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보고 있는 그는 언 듯 보기에도 세월과 시간이 그의 곁을 휘감아 도는 듯했다. 그 노교수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이러했다. 나는 문예지에 송 교수의 특집기사를 위해 그를 만나는 날 그제야 간략하게 요약된 그의 프로필을 읽어보았다. "S대 철학과 교수,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석 박사학위, 모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100여권의 철학서적 출판. 1세대 한국 .. 더보기
손님 2010년 10월 우리가 살던 집이 경매에 들어갔다. 전세로 2년을 계약하고 살던 아파트였는데 주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은행에서 차압에 들어간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늦은 법원 통지서로 알게 되었고, 날벼락같은 소식에 엄마와 아버지는 그자리에 주저 앉으시고 말았다. 아버지는 건설현장의 일용직으로 평생을 일하셨고 한푼두푼 모아서 우리식구는 겨우 20평남짓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든것이 물거품이 되는것을 눈을 뜨고 볼수 밖에 없었다. 경기도의 구석진 동네의 새로지은 아파트, 모 대기업의 브랜드를 달고 위풍당당히 서있던 그 아파트는 2008년에 가격의 꼭지점을 찍고는 서서히 꼬리를 내리며 하강하고 있었고 주인은 최고점에서 무리한 대출로 분양받은 아파트를 우리에게 세를 주었던 것이다. 우리.. 더보기
당신은 물속에 있다. 눈을 떠보니 내가 물속에 있었다. 분명 아침이면 내 방 침대에서 알람소리에 깨거나 엄마의 밥하는 소리에 부스럭거리며 깨야 하는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여기는 물속이다. 이것은 꿈도 아니고 SF영화도 아닌 내겐 정말 실제처럼 느껴진다. 나는 한 줄기 해초처럼 바닥에 붙어 물결이 움직이는 대로 너울거리고 있다. 물위는 화창한 가을 날씨인 것 같다. 눈부신 가을 햇살이 내게도 비친다. 나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죽은 것일까 산 것일까. 죽었다면 이렇게 의식이 분명할 리가 없고 살았다면 의지대로 몸이 안 움직일 리가 없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내가 물고기나 수초가 아닌 아직 사람이라면 나는 여기를 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무엇에 꽁꽁 묶였는지 나는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뿐이었다. 일렁이는 물결 때문에 .. 더보기
평범한 김양의 왕자 사냥법 [사랑에 대한 의심] 나는 나의 20대에 첫사랑에 실패한 이후로 내 사랑의 실패의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해 보았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사랑이 실패하고 난 뒤 남은 것은 추억과 상처뿐이었기 때문이다. 함께한 시간들이 그가 떠난 뒤 송두리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아픈 가슴을 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서관을 찾아간 것이다. 일단은 상처 난 마음에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일 전화벨이 울리는 환청과 나도 모르게 뚝뚝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땐 꼭 죽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릴적 사랑은 철없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었다. 내가 다시 살아야 하고 다시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기를 바라며 열심히 책을 읽었다. 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