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순경 이거 3부 카피 부탁해"
고소사건을 정리중인 나에게 청에서 내려온 팩스를 던진 작자는 역시 김형사였다.
"저 경리 아니거든요"
나는 종이를 옆 테이블에 밀어버리고 하던일을 계속했다.
"아 어디 해주면 손 부러져!! 하여튼 여자 경찰은 여자도 아녀..어디 싹싹한 맛이 있어야지!!"
'흥..싹싹해서 누구 좋으라고..'
나는 한번 흘끗 눈만 흘겨주며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그리고 ....이제 등장 할 때도 됐는데 어디 갔나?
하며 두리번거리던 찰라
"저..저...저가 해올 ...께요"
하며 내가 밀쳐버린 팩스를 들고 이형사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럼 그렇지..
구석자리에 있는 이형사는 팩스를 들고 나가며 의자마다 걸려있는 옷들을 죄다 떨어뜨려 놓았다.
"니가 ..그걸 왜 해" 하며 김형사는 이야기 했지만 자기가 하겠다는 이야긴 하지도 않았다.
휴게실로 나와서 커피를 한잔하고 있자니 복사 3부하는데 뻘뻘 진땀 빼고 있는 이형사가
보였다.
저 상태로 어째 형사가 됐을까...싶었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이형사보다야 더 빠릿빠릿하고 실적도 좋은데 같이 들어온 이형사
만 형사고 나는 아직 경사다.
게다가 경사된지 1년이나 지났지만 다들 나를 아직 순경취급이고, 특히 김형사...대놓고 순경이란다..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이바닥에서 여자가 대접받기가 어렵단 것인가..분하고..가슴이 답답했다.
꼭 형사가 되고 말거야..대한민국 강력계 여형사...!!!
종이컵을 찌그려트려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나오는데 기자 같은 차림새의 남자가 안내데스크의
장양이랑 이야기 하고 있는게 보였다.
'요즘은 큰사건도 없는데 웬일이지?'
생각하며 가볼까 하다 그냥 들어왔다.
복사된 공문이 포스트잇이 붙여진채 내 책상에 놓여 있었다.
[ 민수경씨가 가져다 드리면 좋아할거예요 ^^ -- 이형사 ]
'뭐야!! 내가 이걸 왜 갇다줘!!'
나는 그냥 모자를 쓰고 순찰이나 하러 나와 버렸다.
시키는 김형사나 어리버리 이형사나 모두 짜증났다.
바람을 쐬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내년 승진시험 치기전에 큰건 하나하자는 일념으로 꼼꼼히 한바퀴돌고 점심 먹으러
다시 서에 들어왔다.
구내식당엔 마침 장양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오전에 그 기자가 왜 왔는지 궁금해서(기자들이 사실 경찰들보다 정보가 더 많을때가 많아서 기자들
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여순경틈에서 밥먹고 있는 장양옆에 앉았다.
"아 민경사님..오전에 장기자란 사람이 혹시 우리서에 마금동 총리 자제분이 없냐고 묻잖아요"
기자가 왜 왔었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마..마금동 국무총리?? 우리서에 마씨가 있었나??"
"없죠~~기자가 성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며 억지부리잖아요~"
어이없어하는 장양과 내친김에 기자들 욕이나 실컷해주고 사무실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 미안해요... --이형사 ]
'지가 왜 미안해....' 라고 생각하며 쪽지를 찟어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찰나
이형사가 혹시...하는 의심이 들었다.
실적없이 날 제치고 초고속 승진한놈...네놈이 그놈이냐?
집에 와서도 그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리바리 이형사가 아직 경찰서에 붙어있는것도 그렇고, 나보다 빠른 승진이며..
이상한점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인터넷에 찾은 마금동 총리의 얼굴과도 묘하게 닮아 보이기도 하고..
맞다와 아니다가 계속 싸워대는 통에 제대로 잠도 못잤다.
맞으면 뭐하고 아니면 뭐할래!!!
아니면 그만 이지만 맞다면 ..그동안 든든한 백으로 승진한 이형사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또 그동안
어리바리하다고 업신여겼던 것이 괜히 좀 걸리기도 했다.
그래..그래도 혹시 모르니..지켜보면서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했다.
"민순경~ 나 손님 왔는데 커피2잔만 부탁해~"
가뜩이나 잠도 못잤는데 아침부터 김형사가 날 건든다.
"저 지금 나가봐야 합니다."
하며 바쁜척 일어서던 찰나
"제..제가..커피..타..타..오겠습니다" 하며 이형사가 일어서는게 아닌가.
아..귀하신 몸이..하는 생각과 말이 동시에 나왔다.
"아닙니다. 제가 하고 나가겠습니다."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 졌다.
내가 흥얼거리며 커피 타는 소리외에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민순경 그게.."
하며 내가 주는 커피를 얼떨결에 두손으로 받는 김형사의 얼굴이 벌개졌다.
뭐지 이분위기..
죄지은듯 다소곳 앉아있는 이형사를 보니 마음이 뿌듯해져 왔다.
그래 일단 잘해주고 보자..
몇일뒤 그 기자가 또 찾아왔다.
문앞에서 그와 마주친 나는 그를 얼른 휴게실로 데리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니.. 뭐 별일은 아니고..그냥 지나가던 차에 들렀습니다. 장미순씨는 자리에 없나보네요"
"장양은 아까 잠시 외출했어요.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실수 있으세요?."
나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얼른 사무실로 가서 이형사를 끌고 나왔다.
정기자란 자는 우리둘을 보며 어깨를 들어올렸다. 어쩌라고...
"기자님 우리 사진좀 찍어주세요"
"아...저....민..민...경사님 왜..왜...그러시는지"
"아..이형사님이랑 사진한번 같이 찍어보고싶어서요...자 어서요 기자님"
"아..예..정 그러시면.."
정기자는 떨떠름한 얼굴로 사진을 찍고 다담주에나 올수 있을거 같다며 그때 사진 빼주겠다며 나갔다.
나는 일단 사진을 정기자란자가 자세히본다면 이형사가 마금동 국무총리와 닮았다는걸 알
수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밝힐것은 밝혀야 직성이 풀리니..혹시 정말 인사상 외부압력이라도 있었다면 밝혀내고 싶었다.
그래..사무실의 공직비리는 내가 밝힌다..착한 이형사님께는 미안하지만.
나는 뭐든 알아내 보려고 부지런히 이형사를 따라다녔다.
뭐 비리가 밝혀지지 않더라고 친해져서 손해는 없으니...
그러면서 물론 김형사나 다른 상관들의 잔심부름도 솔선수범 할수 밖에 없어졌다.
내가 않하면 이형사가 하니까...
"민순경 요즘 왜그렇게 열심이야? 않하던 커피심부름까지 하고.."
회식때 김형사가 물었다.
"하하..철 들어서 그렇겠죠.."
남의 속도모르고 하는 칭찬이지만 듣기는 좋아서 기분이다...김형사에게 한잔 따라줬다.
"허허...이거 ...살다가 이런날도 있네..허허..민순경..아니 민경사 신경쓰지말고 많이 먹어"
민경사..드디어 저 입에서 경사라는 말이 나왔다.
김형사도 이형사가 총리 아들이라는걸 알고 있는건가..그래서 내가 부쩍 이형사랑 친해지니 긴장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짭실한놈..누가 짭새 아니랄까봐..눈치는 빨라가지고..
어쨋튼 나는 특히 이형사를 챙기면서 고기가 떨어지면 잽싸게 고기도 리필하면서 회식이 끝날때까지
앉아 있있기로 했다.
"민...민..경사님..너무 늦으신건 아니세요?..제...제가 데..려다 ..드릴테니 가세요."
"호호호..이형사님도..제가 그래도 경찰인데..밤길 무섭겠어요. 걱정마시고 드세요."
"아...예...그래도...많..많이..드시진 마세요..술..."
술이 알딸딸 취해왔다.
생각해보니..경찰 되고나선 이렇게 늦게 까지 회식자리에 남아 있긴 처음인것 같았다.
사내놈들이 득실대니 술주정에 담배냄새에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있다 화장실 가는척하고 나와 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그렇네...잠복할때도..사내놈들 틈에 끼기싫어서 항상 피해왔던거 같다.
"우리 민경사가 이제 철들고 우리랑 한팀이 되려나보네 "
항상 도끼눈으로 날 보던 김형사가 취했는지 웃으며 한잔 따라준다...
눈물이 핑돈다...
이런적이 없었던거 같다..김형사도 다늦게 철이 드나 부다.
12시쯤되서야 모두 일어나고 모두 택시타시는거 본뒤에 나도 택시를 탔다.
"잠..잠깐..만요.."하며.. 이형사가 옆에 타는것이었다.
"집이 근처시라면서요"
"예..그..근데...수경씨...위험..해서..술도 많..많이 드신거 같고.."
나는 피식 웃었다.
경찰서서 나를 유일하게 여자로 봐주는 사람인가?
그래...이참에 좀더 친해져 보지..뭐..
"저..이형사님..아버지 뭐하세요?"
"우..우리 아버진 왜요?"
"호구조사"
"아..아버지도 공직에 계세요.."
공직...구체적으로 총리 라는거지..하고 생각하는 찰나
"어..어..잠깐 세워요 빨리.."
나는 놀라서 이형사가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어떤 시커먼 남자가 편의점에서 나와 뛰어나가고 점원은 가게안에 쓰러져 있는듯 했다.
"여기 있어요 민경사"
어느새 이형사는 택시에서 내려 뛰어가고 있었다.
"같이가요!!!"
나도 같이 이형사와 뛰었다. 달리기라면 자신있었는데 도저히 이형사를 따라 가지 못했다.
숨이차서 섰는데 뛰던놈이 옆의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거기..라면 내가 잘 알지..
나는 시커먼놈이 들어간 골목을 빨리 따라잡을수 있는 지름길로 들어갔다.
어느정도 뛰었는데 그 골목에 들어섰고..마침 그곳으로 두 사내가 뛰어오고 있었다.
"독안에 든 쥐다.."
시커먼놈이 나를 발견하고 주춤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아..실제상황이다.
나는 경험이 없었다. 항상 위험한 사건은 피해서 사기나 고소같은 사건만 다루었으니..
그 놈은 내가 움찔한걸 본 모양이다. 그냥 냅다 찌르려고 달려온다.
"민경사!! 조심해"
시커먼놈이 내눈앞 1미터 앞에서 이형사에게 덜미를 잡혔다.
두 사내는 뒹굴었다.
이형사는 그놈 손에서 칼을 쳐내고 어퍼컷과 훅으로 그놈을 기절시켰다.
이형사가..이런 사람이었나..
어리버리하고 말더듬고..기죽은듯 다니는 그사람이..추격하는 내내 한번도 쉬지 않았고,
말도 더듬지 않았고..그리고..한주먹으로 제압해버리는 솜씨..
나는 그제사 왼팔에 통증을 느꼈다. 눈앞에서 휘두르던 칼에 팔이 긁혔나보다.
"민...민..경사..괜찮....아요?"
이형사의 다시 더듬는 말에 웃음이 났다.
이형사가 내 팔을 봐주는 사이 이형사 뒤에서 뭔가 시커먼것이 다가왔다.
아..그놈이 일어난 것이다.
'이분은 귀하신 몸이란 말이야, 저리 가라!!!'
나는 그놈에게 등을 보이고 서있던 이형사를 옆으로 밀고 날라차기로 그놈의 대갈을 날려 버렸다.
여태 배운걸 이제야 써먹네....
그놈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관할서에 연락했다.
끝난건가?
나는 뒤돌아보며 이형사를 구한 기쁨에, 승진이 눈앞에 온 기쁨에 코끝이 찡해졌다.
"어..이형사님!!!."
이형사는 내가 너무 세게 밀었는지 술취한 사람마냥 벽에 꼬구라져 있었다.
살아는 있는지..끙끙거렸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이형사가 있는 병원에 들렀다가 머리에 5발 꿰멘걸 눈으로 보고..출근했다.
말을 더 더듬는건 아니겠지 걱정스러웠다.
이형사는 팀장님께 시커먼 놈때문에 다친거라 보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범인을 내가 잡았다고도 해주었다.
'착한 이형사님....죄송해요..지켜드리지도 못하고..'
나는 착찹한 마음에 서에 들어서는데 웬 10명이 넘는 기자들이 장양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버님이 마금동 국무총리시라는데 사실입니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어질했다..
"민경사 들었어? 장양..아니 장미순이 마미순이래. 그 국무총리 따님."
김형사가 멍하니 서있는 날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버지 도움없이 살고 싶어서 그랬대..대단해..요즘사람 같지않게"
나는 왜 그동안 총리의 자녀가 남자라고만 생각했지..의사나 경찰이라고 하면 남자부터 떠올리는 사람과
뭐가 달라..이러고도 내가 남녀평등 남녀평등했으니..
"참 민경사..어제 조동철 잡았다며"
"예?"
"마포지구에서 연락왔어. 이형사랑 같이 잡았다며. 그사람 연쇄살인범 조동철이란다."
"아..."
팀장님의 말에 소름이 오싹했다..
연쇄살인범에게 겁도없이 내가 날라차기를 했단 말인가..
"민경사..사람이 달라졌어..무슨일이야? 연애해?"
김형사는 정말 놀란표정으로 날보며 이야기했다...
"김형사님도..참..내가 뭐 어쨌다고..아..커피 드실래요?"
"아..아니..커피 이제 내가 타 마신다..연쇄살인범 잡은 귀한분이 어디 커피를..하하.."
"민경사 담에 나랑도 같이 현장나가자..그 날라차기 한번 보고싶네.하하.."
나랑 말도 한번 해본적없는 박형사까지 거들었다..
다음날은 김형사님이 귀찮다고 한번도 데려가지 않는 정보조사에 나를 데려가겠단다.
"근데 김형사님..이형사님..현장에선 말 않더듬으시더라구요"
"어..그사람 그래..사무실에선 어눌해보여도 현장에선 않그래. 어릴때 폐쇄 공포증이 있었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사무실 같은 실내에 있으면 좀 긴장되고 그래서 말도 조금 더듬고
그러나봐....말 나온김에 이형사나 보러 가보까?"
"예.!!"
이형사님을 생각하니 진짜 형사란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승진때문에 공부하느라고 찌드는것 보다..실적..실적하며..눈치보는것보다..
동료를 생각해주고..현장에서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것..
이게 진짜 경찰이구나 생각했다.
이형사님은 머리에 붕데를 칭칭 감은체 퇴원한다고 짐을 싸고 있었다.
이제 습관이 되었는지 귀하신몸을 받드는 자세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좀더 누워 있으세요."
"아...그..그게..할일이 ...많아서.."
"제가 알아서 다 할께요."
이러는 우리를 본 김형사가 처녀 총각이 그림좋다는 한마디를 하며 슬그머니 병실을 나가는 것이었다.
"그..그..게아니고.." 내가 왜 이렇게 말을 더듬는거지..
"민..민..경장님....이거" 이형사가 자기의 손을 가리켰다.
나는 이형사님의 가방싸는 걸 말리느라 여태 이형사님의 손을 잡고 있었던것었다.
병실이 갑자기 더워졌다..한여름에도 히터를 트는지..
이형사님은 끝내 같이 서로 돌아오셨다..얼굴이 벌개진 채로...
이형사님을 다시 봤다. 그리고 나에게 공을돌려주신 이형사님을 위해 열심히 잔심부름도 하고 현장경험도
쌓아나갔다.
며칠뒤엔 휴게실에서 찍은 우리사진이 연쇄살인마를 잡은 형사들 이란 제목으로 인터넷 신문에 떴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 열심인 나에게 이형사님은
"민..민경사님..위험하니..조..조..심하세요" 라고 하신다.
그럴때마다
'호호호...걱정마세요...전 멋진 여형사가 될몸입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