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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아는정치

하나님도 안녕하시지 못한 나라.

 

 

 

전북 목정평 회장 이세우 목사는 기도회에서 "하나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했다. 이 목사는 "이 땅의 미래이고 소망인 청년 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하다고 신음하고 한탄하면서 절규하는 소리인 '안녕하십니까'가 전국에 메아리치고 있다"며........................
--2013년 12월 16일 경향신문 중--

 

 

이땅의 국민도 안녕하지 못하고, 이땅의 하늘도 안녕하지 못한 곳.

내가 안녕한 줄 알았던 지난 시간이 부끄러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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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범 1년 만에 말은 정의(正義)를 잃고 재정의(定義)되고 있습니다. 볼테르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당신의 용어부터 정의(定義)하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용어를 제대로 정의(定義)하지 못한 정권과 정의(正義)를 원하는 시민 사이에 말의 길이 열릴 리 없습니다. 정의(定義)에 실패한 정부는 정의(定義) 자체를 전복하고 정의(正義)의 내용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비판은 '종북'으로 재정의하고, 비판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재정의하며, 차이는 '위험'으로 재정의합니다. 대선 공약이던 경제민주화와 쌍용자동차 청문회가 거짓말로 들통나도 정의이고, '100% 국민행복시대'를 공언하며 국민 절반을 '국민 아닌 자들'로 솎아내도 정의라고 주장합니다. 국민대통합 약속은 대기권 밖으로 증발한 지 오래입니다. 말의 흐름이 통제된 세상에서 말의 권력만 남용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사촌 형부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5년 만에 국회에 나타나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냐"(12월10일)고 강변했습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저항세력 앞에서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 불통이라면 5년 내내 불통 소리를 듣겠다"(12월18일)고 했습니다. 뜻이 다른 이들을 향해 말하는 것이 소통입니다. 지지자들과만 대화하겠다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다른 생각에 대한 '소탕'일 뿐입니다. 박 대통령이 '신뢰의 정치인'이란 정의(定義)를 독점하는 동안, 말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말하려는 이들은 삶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정의(正義)를 잃은 말의 장벽에 '안녕들'이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안녕에 동참한 사람들은 '이 미친 세상에 어디 있더라도 행복하라'(브로콜리너마저 < 졸업 > )는 말걸기의 방식에 반응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안녕할 때에야 정말 안녕합니다.

말은 허락받고 하는 것이 아니며, 안녕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안녕은 애써 물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고려대가 '안녕들'의 첫 번째 대자보를 박물관에 보존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상징적입니다.

침묵과 순응의 괴물의 시대, 정말 안녕한가요

저는 무력한 언론인으로서 안녕하지 못합니다. 말(言)을 논(論)함으로써 말(言)의 길(路)을 내는 것이 언론이며, 진실과 허위를 따져 기록(記)하는 자(者)가 기자입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대신해 말의 길을 틀어막는 언론에 맞서, 말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말의 길을 내는 현실이 부끄러워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변명과 반성 사이에서 방황하며 문장마다 길을 잃은 이 가난하고 앙상한 글은 더욱 부끄럽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말에서 배제된 자들은 말을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 '사건'이 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보지 않는 것을 보도록 삼성 최종범씨는 낡은 차에 번개탄을 피웠고, 듣지 않는 것을 듣도록 밀양 유한숙씨는 제초제를 마셨습니다. 두 사람의 안개 낀 하늘은 안녕한지요. 고공농성을 마치고 하늘에서 내려온 뒤 귀로 이명을 듣고 눈으로 가위를 보는 노동자들은 땅 생활에 문제없으신가요. 2013년 세밑의 시커먼 하늘에 매달려 사 쪽과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도 안녕하십니까. 침묵과 순응의 괴물이 지배하는 시대, 우리 모두는, 정말 안녕한 건가요.

글 이문영 기자moon0@hani.co.kr

--한겨례 2013년 12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