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고싶은날 쓰는 일기

내 별명에 대해

킹콩과 빙그레

 

저는 키 163에 몸무게 흠..흠...표준인 보통 여자 입니다. 5cm 정도 높은 구두를 신으면 키가 굉장히 커 보이기도 하고, 플랫 슈즈를 신으면 땅꼬마로 보이기도 하는 아주 평범한 여자 입니다. 또 그리 덩치도 큰 편이 아니어서 몸에 붙는 옷을 입으면 좀 외소해 보여서 박시한 스타일의 옷을 즐깁니다. 이런 제가 어릴적 별명이 킹콩, 바야바(몸에 털이 많이난 반인반수, 어릴적 오후 6시에 하던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라고 한다면 다들 의아해 합니다.

 

"왜요?"

그날도 아는 동생을 만나 별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나의 별명을 듣고 놀라며 궁금해 합니다. 간단하게 별명에 대한 이야기만 했었는데요,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그 별명을 지어준 '빙그레'라는 남자아이가 불연듯 생각이 나네요. 내 별명에 관한 이야기에 이 아이가 빠지면 단무지 없는 자장면, 피클 없는 피자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 별명이 처음 저에게 붙은 때는 초등학교 5학년시절이었습니다. 5학년때의 다른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나의 별명 때문에 놀리던 남학생들과 많이 싸우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네요. 저는 아버지가 경찰이신지라 전학을 많이 다녀야 했습니다. 1학년은 양산 초등학교 , 2.3학년음 물금초등학교, 4학년은  좌천 초등학교, 5학년땐 합성초등학교....그래서 그렇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때 저는 조금 말수가 적고 소심한 편인 여학생이었습니다.

 

내가 킹콩으로 다시 태어난 곳은 합성초등학교 시절이었는데 5학년 시작되고 한달 뒤에 전학을 갔기 때문에 정말 어색하고 친구 사귀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가 키가 148cm 정도로 다른 여자아이들에 비해서는 조금 큰편이었습니다.  학교 육상선수였던 제 짝인 163cm여자애를 빼면 저 정도 키가 되는 여자아이가 3~4명 정도 있었고 별일이 없다면 크게 눈에 띄진 않고 학기를 마칠수 있었는데 문제의 근원은 제가 그 반에서 제일 장난을 심하게 치는 그 '빙그레'의 뒷자리에 앉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빙그레는 (이름이 생각이 않나네요) 아버지가 빙그레 과자공장에서 일하셨고, 때문에 야구단 빙그레의 열혈 팬이어서 매일 주황색 세로줄무늬 빙그레 야구복을 입고 학교에 왔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습니다. 뚱뚱한 몸 때문에 팽창된 세로줄무늬, 게다가 야광색에 가까운 주황색이 하루종일 앞에서 어른거리면 멀미가 날 정도였습니다. 어쨋튼 이렇게 우리는 만났고....전쟁이 시작되던 것이었습니다.

 

전학와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앞자리의 빙그레와 그 짝인 오징어는 나를 쳐다보며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고, 나는 내 짝이 육상대회로 자리를 비운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알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전학을 가면 쉬는 시간에 몇명의 여자아이들이 와서는 이것 저것 물어보고 친하게 지내자는 둥 그런 인사를 하는데 거기는 그동안 전학다녔던 학교보다 도시학교고, 큰 학교라서 그런지 전학생에게 큰 반응이 없었습니다.. 앞에 그 두 녀석만 빼고 말이죠..

게다가 그 두 아이는 말보다 행동으로...맨 뒷자리에 앉은 나의 의자를 뺌으로서 인사를 대신 하였습니다. 전학간 첫날 테러를 당한 기분이란....

 

물론 이때는 왕따라는 말도 그런 분위기도 없던 때라 왕따는 아니었지만, 은근히 무시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아마도 2~3일 뒤에 의자를 빼고 또 도망가는 빙그레와 오징어를 붙잡아 상당히 두드려 팼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맞고만 있을 애들이 아니어서 저도 많이 맞았지만... 11년 인생중에 가장 격했던 싸움이었을것입니다. 그후로 저는 킹콩과 바야바 라는 두개의 별명을 번갈아 들어야만 했습니다.

 

 육상대회를 마치고 일주일 뒤에 돌아온 짝에게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상종하지 말라고 말이죠... 걔네들은 키가 160이 넘는 제 짝은 건들지도 않았습니다..오로지 만만한 저... 지나가면서 일부러 툭, 수업시간에 일어서서 책읽고 나서 앉을 때면 몰래 뒤에 와서 의자를 빼놓거나 의자에 연필을 꽂아 놓는 위험한 장난을 치고 가기가 일쑤였고 밥먹는데 옆에서 트럼을 하고 방귀를 뀌고 초등학생 인간이 할수있는 온갖 더러운 짓을 다하며 희열을 느끼는 이상한 아이였습니다.

 

그럴때면 참다 참다가 주먹으로 몇대 쥐어박는데 그러면 또 빙그레는 죽자고 덤벼들어서 큰싸움이 되고 맙니다. 그때 대견하게도 저는 그 무시무시한 주먹에 어깨며 등짝을 얻어 맞고도 울지 않았네요...온몸이 멍 투성이었는데도 말이지요 기특하게도..울지 않았답니다.

 

아무튼 나의 5학년은 악몽이었고 학교가기가 싫을 정도였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자리를 바꾸지만 둘다 키가 엇비슷해서 늘 반경 1m내에서 그녀석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킹콩이라는 별명을 자주 들어서인지 저는 점점 거칠어져 갔었습니다.

그 별명 덕분에 반에서 인지도가 조금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별명에 빙의되어서 가슴을 치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누군가가 킹콩이라고 부르면 거칠게 숨을 쉬며 싸움에 뛰어들기도 했었습니다.. 불쌍하게도 그때 저는 여성성을 잃어가고 있었다고 해야할까....

 

같은 반 여자아이들은 예쁘게 나비리본을 머리에 하고 레이스달린 치마를 입고 등교했는데... 빙그레가 조금만 놀리기라도 하면 대번 울어버리고 선생님께 고자질을 해서 힘 않들이고 복수하곤 했는데... 그때 나는 왜 그랬는지 그렇게 약한척 하는게 싫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그 빙그레의 킹콩 저주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 됩니다만..증명할 길이 없네요.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었을때 우연히 그녀석이 내 옆분단 같은 라인에 앉았었고 옆에서 그녀석을 눈여겨 볼 기회가 생겼었습니다. 그녀석이 또 어떤 장난을 칠까 늘 긴장도 했었고 그 녀석의 약점을 잡아보고자 그를 면밀히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녀석이 뭘 하고있나 보려고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그녀석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가끔씩 자습시간에 낮잠자는척 하면서 나를 보고 있는것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날 놀릴려고 항상 틈을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두손 두발 다 들정도로 소름끼쳤었는데 어느날 내가 "왜 쳐다보는데?" 하고 기습적으로 물어봤을때

당황하며 "니...니.. 얼굴보니까 문제가 더 잘 풀려서 그란다 와" 하고 대답하는걸 보고 아.....걔가 날 좋아하는 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돋았던 소름이란....

 

저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게 내가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어떤 식으로든 엮여서는 않된다. 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의 괴롭힘을 참기로 했었습니다. 그녀석을 자극해서 더 좋아하게 만들면 않된다고 애답지 않은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그가 나를 좋아해서 괴롭힌다고 생각하니 참을만했고 좋아하는 감정을 그런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그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죠. 사실 그때쯤해서는 그녀석의 장난도 많이 누그러졌었고, 사춘기였을지는 모르지만 빙그레 야구복도 이제 입지 않았었습니다. 어쨋든 이렇게 나의 5학년 생활은 끝이 났고..그 해방감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다행이 그 녀석과는 같은 반이 안되었고 오징어란 아이와는 같은반이 되었는데 오징어는 빙그레에 비하면 점잖다고 해도 될정도였기 때문에 나의 초등학교 생활에 드디어 꽃이 필거라 예상을 하며 새학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휴~ 긴 이야기였는데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과는 달리 6학년이되고도 한동안은 그녀석의 괴롭힘을 당했었습니다.그녀석은 남의 반까지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고 가는 아주 악질이 되어가나 생각했습니다.

겨울방학동안 찌워 놨던 살이 한달새 쫙 빠져버렸고 되도록이면 그녀석의 반 앞은 지나가지 않으려고 다른 층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쉬는시간에는 숨어다녔더랬습니다.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그의 장난은 한달정도 지나서 잠잠해 졌지요. 아마 자기반에 다른 여자아이를 괴롭히며 다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겠죠.

 

그가 드디어 내 인생에서 깨끗히 사라진뒤 저는 착실하게 공부도 하기 시작했구요, 그 킹콩이라는 이미지도 벋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간의 그 수난사도 곧 잊어버리게 되었구요. 그 이후로 그를 쭈~~욱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어쩌면 저를 좋아한 남학생 1호였을지도 모르는 아이였는데 그렇게 냉정하게 잊어버렸다는것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왜 여학생을 그렇게 괴롭히고 때리면서 애정을 격하게 표현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스물 세 네살무렵 저는 도서관에서 취업준비로 공부하고 있었고, 그 당시 남자친구와 스트레스도 풀겸 대학교앞 오락실에 들렀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끝내고 나오려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덩치큰 남자가 자그만한 여자를 데리고 오락실로 들어왔고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을 나와 버렸습니다. 예..그는 바로 그녀석이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터벅머리와 장난기 어린 그 눈빛을 잊은줄 알았는데 1초만에 몸이 반응을 하는 것이었죠. 소름이 돋았습니다.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것이었습니다.

 

그도 저를 알아 보았는지 움찔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한짖이 있지 어찌 그가 아는척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예전과는 달리 그의 자그마한 여자친구에게는 아주 다장다감하게 대하는것 같았습니다. 어깨를 감싸고 어디 부디치기라도 할세라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니까요. 그 녀석 이제는 사랑이 뭔지 알았나 봅니다. 짜식..나한테 그 반의 반만했어도 그 날 반갑게 아는척이라도 했을텐테..저는 이렇게 된 우리 사이가 아쉬웠지만 이제는 서로 잘살길 빌었고 그가 여자친구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녀석이 덕에 제가 조금은 강해진 것 같습니다. 수줍고 말없던 나였었는데 5학년이후로 조금씩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와 어떻게 만나든 다 그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디에서 무엇을하든 잘살길 바란다 빙그레~~

 

 

 

[바야바의 자료를 찾다가...뜨악...나 초등학생때 정말 저러고 다닌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서....설마 아니겠죠??? ㅋㅋㅋ ]

 

 

 

 

 

 

'쓰고싶은날 쓰는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퀼트가방  (0) 2013.11.11
책은 소멸하지 않을까?  (0) 2013.11.04
잊혀진 것??  (0) 2013.10.01
바나나 보관법 - 바나나 걸이  (0) 2013.09.10
난소물혹 치유기(3)  (4) 2013.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