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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비상구는 없었다

[비상구는 없었다]

 

 

-거북이-

 

내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삶을 소중히 하고 살아 왔지만 교과서에 없는 많은 변수들이 길 곳곳에 지뢰처럼 박혀 있는 줄 알지 못했다. 얼마나 조심히 살아 왔던 상관없이 나는 10대의 끝에, 20대의 끝에, 30대의 끝에서 막다른 골목과 항상 마주해 있었다.

골목 끝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때 나를 유혹했던 비상구들이 있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내게 열렸던 그 비상구들은 얄팍한 함정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10대의 골목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항상 시한폭탄과 같았던 그들은 입시를 앞둔 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각자의 길로 떠나버리셨다. 아버지의 보호아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갑자기 꺾여 버린 여린 가지 같았다. 혼자 뿌리를 내리기에 역부족이었고 가지에 붙어있는 살아있는 이파리들은 목마른 중에도 커가고자 했기 때문에 무언가에 항상 굶주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넣어주신 대학 입학금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과 영영 이별을 결심하였다. 이 선택은 목마르고 숨 막혔던 내게 숨 쉬고 살아 갈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먼 도외지로 떠나온 나는 다른 것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일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작은 기쁨조차도 사치라고 생각하며 나는 진지하게 삶을 대하고 있었다. 나는 최초의 비상구를 통과하기 위해 인생의 기쁨이라는 것을 그 대가로 지불하였던 것이다.

여러 번의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나는 마침내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그럭저럭 작은 회사에 취직도 하게 되어 그전 보다는 숨통을 트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에게 20대의 중반을 넘기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벽이 떡하고 버티고 서 있었다. 어렵게 시작하였던 사랑이 내게 큰 상처를 주었다. 유년 시절 짊어지고 살았던 가정불화의 그림자가 굶주린 늑대처럼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 서야 알게 되었다. 완벽한 사랑을 꿈꿨고 배신하지 않을 사랑을 꿈꿔왔지만 어떤 남자도 그런 속박을 원하지 않았다. 희생을 해서라도 사랑을 유지하려는 나를 지겨워하거나 이용하기 일쑤였다. 3번의 사랑이 실패하고 나는 상처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 두었다. 설상가상으로 다니던 회사 까지 어려운 상황이 되어 큰 비중이 없었던 내 자리는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이 때 다시 벽을 보았다. 나를 가로 막고 있던 더 높고 견고한 벽 앞에 나는 망연자실해 있었다. 수 십군데 이력서를 내고 기다렸지만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질 않았다. 통장의 잔고가 점점 줄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몸속의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벽을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나는 다시 이 자리를 벋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솟았다. 여기에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크게 자리 잡았다. 나는 다시 비상구를 바라보았다. 야광으로 반짝이는 비상구, 친절히 여기로 나가라고 손짓하는 비상구를 보았다. 그것은 이 상황을 벋어날 가장 쉬운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같은 회사에 다니던 노총각 김 대리에게 연락을 하였다. 이 상황에서 나와 다른 여직원에게 능글맞게 집적이던 그가 떠올랐던 것이다. 결혼에 굶주려 누구하고나 결혼하고 말겠다는 결심에 그는 집요하게 여직원들을 집적였다. 내가 연락하자 그는 금방 나와 주었다. 그는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도 금방 눈치 챈 듯 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그를 이용하려 연락하였다는 것도 금방 알아채었다. 나는 그와 몇 번의 데이트를 하였다. 그는 나의 속셈을 알았지만 내가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나는 그의 징그럽고 능글맞은 웃음소리에 소름이 돋았지만 견딜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3개월 뒤에 결혼하게 되었다. 나는 빈손으로 그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처음에 살아갈 방도가 생겼다는 안도감에 모든 것이 정리된 듯했다. 하지만 안전하게 넘어왔다고 생각한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김 대리만큼이나 인정 없는 시어른들은 가족이 없는 나를 하녀 다루듯 했고, 얼마 되지 않아 김 대리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다시 외로운 섬이 되어버렸다. 배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이겨내려고 했고, 자신의 부모같이 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늪에 빠져 버린 것처럼 점점 숨이 막혀왔다. 나는 그제야 이번 비상구 또한 함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어떤 상황도 대가 없이는 넘어설 수 없었다. 나는 이번엔 사랑이라는 것을 비상구의 사용료로 지불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상황을 피해보고자 치렀던 대가가 생각보다 너무나 컸다. 나는 예쁜 딸을 낳았고 그녀만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듯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하듯 그녀만을 의지하며 살아갔다. 그렇게 나는 30대를 견디며 살아가기로 결심하였다.

 

30대는 늦가을처럼 지나갔다. 쓸쓸하고 외롭고 앞으로 닥칠 겨울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버텼다. 하지만 김 대리의 외도가 잦아지고 시어른들의 폭언이 심해지자 나는 다시 벽을 보고야 말았다. 그것은 한 발짝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침내는 사방이 꽉 막힌 질식할 감옥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그들도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들만의 비상구를 열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쉽게 열렸던 비상구만을 좆아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생각했다. 나 자신은 누구보다 부모를 닮아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산다. 하지만 나와 다른 이들이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그들은 벽과 마주 할 때 쉬이 열리는 길의 유혹을 이겨냈다는 것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벽을 타고 기어올라 인생의 한 단계를 성장하며 살아갔다. 인생에는 어려움을 쉽게 해결해 주는 비상구라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이는 김 대리에게 뺏겨버렸지만 언젠가 다시 데려올 수 있게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천천히 진짜 생활이라는 것을, 진짜 인생이라는 것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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