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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내 인생의 절친

[내 인생의 절친]

 

 

 

-거북이-

성심요양원 B405, 따스한 아침 햇살이 창을 뚫고 흰 시트위에 쏟아져있다. 늦게 까지 책을 읽다 잠든 김노인은 몇 번 뒤척이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아침잠이 없는 같은 방의 다른 환자들은 벌써 나가고 없어 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김노인은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곳에 들어 온지 한 달이 다 되 가지만 아침이면, 보이는 것이라곤 병원 앞 큰 도로 뿐인 이곳 풍경이 아직 낯설기만 하다. 방음벽 너머로 대형 덤프트럭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세다 얼굴근육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작년 뇌졸중으로 큰 수술을 받은 후 남은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이다. 미국에 사는 아들 내외가 조리를 더 해야 하는 그를 혼자 두는 것이 걱정이라며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만 그는 여기 온 이후 근육경련의 증세가 더 심해짐을 느꼈다. 그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읽다 만 책을 다시 집어 들어 간이침대를 꺼내 앉았다. 그는 젊은 날 이런 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한 책들을 병원으로 바리바리 책을 싸가지고 왔다. 돋보기를 끼면 시력은 아직 쓸 만했고 젊었을 적 시인이 꿈이었던 그가 마지막 수술을 받고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다. 책장을 몇 장 넘기고 나자 멀리서 밥 냄새가 솔솔 올라와 허기진 그의 배를 자극 시켰다. 이윽고 어디에 있다 들어오는지 흩어졌던 같은 방 환자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고 정확히 825분에 405호의 배식이 시작되었다.

 

405호에는 총 5명의 노인이 살았는데 병원에서 그나마 가장 상태가 양호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다리를 조금 전다든가 손쓰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다든지 하는 정도 일뿐 모두 스스로 밥도 먹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말짱한 정신과 몸으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서로 묻지도 않았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병원에 들어온 지 오래된 세 명의 노인은 식판을 들고 휴게실로 나갔다. 그들은 아침 뉴스를 보며 밥 먹는 것을 좋아했다. 병실에 남은 그와 옆자리 백노인은 여느 때처럼 조용히 병원 냄새가 밴 밥과 반찬을 꾸역꾸역 먹었다. 백노인은 김노인보다야 먼저 병원에 들어왔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치매 초기라 멀쩡 하다기도 갑자기 이상해지곤 하는데 최근 증세가 심해지고부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김노인은 가끔 백노인이 혼잣말 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을 때 잠꼬대를 하는 것 같이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아무도 없는 병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수근대는 그를 여러 번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그의 정신이 온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둘은 조용히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백노인이 먼저 병실을 나가 어디론가 가 버렸고 남은 김노인도 식판을 갔다두고 돌아와 씻을 준비를 했다.

 

김노인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씻고 돌아온 후 상의에 카디건을 걸치고 산책을 할 생각으로 밖을 나왔다. 햇살은 어린아이 같이 눈부시고 따사로웠다. 이런 날은 기분이 좋아지기는 해도 생각 또한 많아지기도 했다. 병원 잔디밭을 천천히 걸으며 그는 지난 세월을 뒤 돌아 보았다. 아들이 처음 학교 간 날, 진로를 고민하던 때, 아내를 처음 만난 날...... 끝없을 것만 같았던 그의 인생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의미 없이 소멸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시집을 꺼내 읽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30분을 집중하다 이상한 기운에 김노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 앞엔 언제 왔는지 백노인이 쪼그리고 앉아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고춧가루가 낀 흰 틀니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김노인은 그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백노인은 슬금슬금 기어 와서는 김노인이 들고 있는 책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책을 거꾸로 든 채로 중얼 중얼 무언가를 읊고 있었다.

지금 남의 책을 들고 뭐하슈?”

김노인은 그가 들고간 책을 다시 뺏으며 이렇게 말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지막이 이렇게 되뇌다 돌아 선다.”

김노인이 책을 뺏어 들었지만 백노인은 책을 든 모양새로 계속 시를 읽어 나갔다.

나는 내가 아니다. ...................”

이렇게 백노인이 한편의 시를 다 외어 읊는 것을 지켜 본 김노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백노인이 외고 있는 그 시는 금방 자신이 읽던 백치완 시인의 거울이라는 시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둘은 같은 백씨가 아닌가?

김노인은 그가 이 책의 저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책날개의 인물소개를 폈지만 사진이 나와 있지 않았다. 단지 현재 나이가 70세로 지금 백노인의 나이와 비슷하다는 것만 추정 할 수 있었다. 이 시인은 25살의 나이에 문예지에 당선되어 그 후 20년간 시를 짓다가 말년에 종적을 감춘 걸로 알고 있다. 그의 시는 신선했고 젊은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어 그를 일약 유명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해주었다.

당신이 이사람 이유?”

김노인이 물었지만 장난기 가득한 소년 같은 표정을 한 백노인의 얼굴에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하나 더 읽어 줘, ?”

백노인은 아이 같이 입술을 오므리고 혀 짧은 소리를 냈다. 그는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보채는 아이 같았다.

허허, 웬 이런

김노인은 어쩔까 생각하다 어차피 책을 읽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백노인을 자신의 옆자리에 가만히 앉히고는 천천히 시를 읽어 나갔다.

그가 다음 페이지의 시를 읽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백노인은 나지막이 그 시를 따라 외었다. 몇 편의 시를 외우고 나자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멀리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간다는 말도 없이 B동 병실 쪽으로 서둘러 걸어 들어갔다. 김노인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정신이 돌아 왔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김노인도 천천히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백노인은 자신의 침대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김노인은 그의 발아래 붙어 있는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백치완 70

그는 동명이인일지는 모르겠지만 김노인의 생각대로 백치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보슈. 백 선생님

백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김노인은 그를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 왔다. 배식 받은 세 명의 패거리들이 휴게실로 자리를 옮기자 마자 김노인은 자신의 식판을 들고 백노인의 침대로 갔다.

같이 먹읍시다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병실은 진공상태 같았다. 그곳에서 그와 백노인이 처음으로 눈을 마주하고 앉았다.

일 없수다.”

백노인은 이렇게 말했지만 눌러 앉는 김노인을 애써 내치지는 않았다.

김노인은 오전 일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았다. 단지 아들 내외가 미국에 산다는 이야기와 소싯적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김노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는 식사를 먼저 끝내고 식판을 들고 일어서 나갔다. 김노인도 얼른 남은 밥을 입에 털어 넣고는 그를 따랐다. 그는 식판을 반납대에 두고 개수대에 가서는 입을 헹구고는 병실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개인 사물함에서 담배를 꺼내서는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밥을 먹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의 희게 센 머리가 햇빛에 반짝거렸고 담배연기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그들의 머리위에서 흩어져 갔다. 백노인은 옥상의 구석에 앉아 해바라기 중이었다. 김노인이 옆에 자리 잡고 앉자 백노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찮게 왜 자꾸 따라다니우?”

처음으로 백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나도 형님 따라 해바라기나 하려고 나왔지요

김노인은 백노인을 스스럼없이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은 무슨, 염병. 귀찮으니 저리 가슈

백노인은 허공에서 눈은 떼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형님 나한테 시 한수 가르쳐 주시우.”

김노인은 담배연기를 손으로 걷으며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했다.

백노인은 그를 다시 잠시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어 갔다.

염병, 아직 청춘인줄 아나보군.”

입을 열고 나오는 백노인의 말은 무척이나 거칠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김노인이 이만한 일로 마음상할 인물은 아니었다.

형님, 나 죽기 전에 시하나만 쓰고 죽읍시다. 내 평생 세상에 낳아 놓은 거라고는 아들놈 하나뿐이라오. 내 죽으면 나를 기억할 사람이 하나분이란 말이지요. 형님은 얼마나 좋소. 자식 같은 시들을 세상에 많이도 낳아 놨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하겠냐 말입니다.”

백노인은 이제 대꾸도 않고 말없이 담배만 뻐끔 뻐끔 피워댔다.

 

이날이후 두 노인은 어디를 가나 붙어 다녔다. 백노인이 제정신이거나 말거나 김노인은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 함께였다. 백노인은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엔 어린 시인으로 돌아갔다. 그는 시를 낭독하기를 좋아했고 김노인을 마치 선생님처럼 따랐다.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백노인은 자괴감에 빠진 늙은이로 돌아와 담배만 피워대거나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기가 일쑤였다. 김노인은 가끔 그에게 자신의 습작을 보여주기도 했다. 백노인은 이렇다 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시를 읽고 또 읽어주는 모습에 기쁠 뿐이었다.

형님은 왜 이제는 시를 안 쓰시우?”

어느 날 김노인이 물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백노인의 타박을 예상했지만 백노인은 잠자코 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란 어려운 것이지. 영혼이 맑지 않으면 시를 쓸 수가 없어. 젊어 시 몇 편이 성공하고 유명해지면서 내가 변하기 시작했지. 어느 순간부터 내 시에는 애처로움이 사라지기 시작했어. 울림이 사라져 갔어. 그런 시는 쓰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지.”

그가 뱉어내는 말과 담배연기는 허공중에 길게 흩어져 갔다.

 

백노인의 치매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고 결국 그는 병동을 옮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노인은 매일 그를 찾아갔고, 어린 시인을 만났다. 김노인이 시를 쓰는 횟수는 줄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더 좋아져만 갔다. 백노인에게도 가족이 없었고 가족은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자신이, 지금은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날 밤 김노인은 여느 때처럼 늦게까지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잠결에 병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자신의 침대 맡에 누군가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순간 저승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왔나보다 생각하며 눈을 떠 어둠에 익숙해 질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서서히 형체가 뚜렷해지고 윤곽이 나타나자 그것은 저승사자가 아니고 백노인 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이구 형님 여길 어떻게 찾아오셨소?”

아우 보러왔지.”

정신이 좀 돌아 왔는 갑네요.”

백노인은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정성껏 접은 종이쪽지를 건네주고는 가만히 김노인을 바라봤다.

이게 뭐요?”

내일 아침에 읽어봐. 지금은 어두우니까. 그럼 난 이만 돌아가오.”

백노인은 할 말을 마쳤다는 듯이 손을 잠깐 들어주고는 그대로 돌아서 병실을 나갔다. 김노인은 뭣에 홀린 기분이 되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평소와는 다른 웅성거림이 병원을 가득 메웠다.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병원 복도에서 울렸고 긴장감이 떠돌았다. 다른 때와는 다른 분위기에 김노인은 복도를 내다보았고 이미 사태파악을 하고 돌아오는 같은 병실 환자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 쳐다보았다. 그들은

글쎄 어제 밤 백노인이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잖아. 요새 정신이 완전히 가버렸다고 그러더니 죽는 줄 모르고 거길 올라갔는가보우.”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감정도 싣지 않고 이야기를 하였다. 김노인은 어제밤일이 생각이 났다. 꿈인 줄 알았던 그 일이 이제야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이었다.

그는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들추고 쪽지를 찾았다. 쪽지는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는 백노인을 찾아다녔다. 백노인은 이미 인근병원 영안실에 안치 되었고, 가족이 없어 절차에 따라 화장된다고 했다. 김노인은 가족의 동의 없이 외출을 허락받지 못하는 규정에 의해, 그가 재가 될 는 날도 병원 잔디밭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죽고 다음날 지역 뉴스에 시인 백치완 선생 타계라는 보도가 떴다. 아주 잠깐 그의 시와 여생에 대해 소개 되었다. 김노인은 옥상으로 올라가 백노인이 적어준 마지막 메모를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수조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낡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마지막 시가 쓰여 있었다.

시에는 자신의 설자리가 없음을 나타내었다. 죽을 때 까지 평범하게 살지 못하고 시인으로 끝까지 죽으려 했던 백노인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김노인은 쪽지를 가만히 접어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느지막이 얻은 스승이자 친구였던 백노인이 떠난 자리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백노인의 한편의 시 같은 치열하고 어려운 인생을 가만히 음미해 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얼굴경련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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