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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생은 스트리트 파이터 처럼



[인생은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어린 시절 우리 집엔 백수 삼촌이 있었다


단벌의 줄무늬 체육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는 경찰 시험 준비를 위해 동네 도서관을 오가던 삼촌이었다


삼촌은 24살이었고 군대 제대 후 복학을 하지 않고 우리 집에 기숙하는 처지였다


집안의 막내였던 삼촌은 아빠의 말에 의하면 오냐오냐 키워져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삼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인생의 멘토라고 이야기 하고 싶을 정도로 그는 멋있고 훌륭했다.

 

삼촌과 내가 각별했던 이유는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때문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와 친구들은 의례처럼 동네의 오락실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항상 삼촌을 만났던 것이다


어렸던 나는 그런 삼촌이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쪼르르 달려가 삼촌에게 알은체를 했다


삼촌은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오락에 심취해 있었다


당시 학교에서나 골목에서나 남자아이들은 아도 겐을 외칠 정도로 이 오락은 상당히 유명했었다


이유 없이 공주를 구할 필요도 없었고 점수를 얻어서 레벨을 올리는 게임이 아닌 오로지 1:1로 상대방을 멋지게 때려눕히고 승리의 세레모니를 취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의 힘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삼촌은 그야 말로 무림의 고수였다. 물론 오락실에는 코를 빠는 초등학생이 많기도 했지만 나이가 엇비슷한 사람과 붙어도 삼촌은 지는 일이 없었다


삼촌이 조종하는 류는 누구보다 발놀림이 가벼웠고 언제나 적시에 필살기를 날려 한번에 상대를 k.o 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어느 청기와위에서든, 뉴욕의 뒷골목에서든 삼촌의 류는 적을 만나면 두려움 없이 그와 멋지게 대결하였다.


우리는 동전이 다 떨어질 때쯤에 집으로 같이 돌아왔다


멋지게 승리를 하고 유유히 돌아가는 삼촌을 바라보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내가 애먼 동네 강아지에게 파동권을 날리거나 아도겐을 쓸 때면 삼촌은 자신과 싸워 견줄만한 것과 싸워라하며 도망가는 강아지를 좆는 나를 말리곤 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틈틈이 삼촌에게서 남자의 인생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삼촌이 경찰시험에서 계속 떨어지는 데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삼촌은 여전히 도서관을 다니며 시험을 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은 이만 저만 한 게 아니었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계시던 부모님은 삼촌까지 거둬 먹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두해가 넘어가자 아버지는 복학을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삼촌은 묵묵무답이었다. 그러나 그런 날엔 나는 삼촌이 복잡한 얼굴을 하고는 옥상에서 샌드백을 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느 날 그런 삼촌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을 때 운동을 끝내고 멀리 석양을 바라보며

한번 뿐인 인생 파이터처럼 살고 싶구나하고 삼촌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어떻게?” 나는 호기심에 찬 눈을 하고 그에게 물었다.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거지. 무림의 고수들을 찾아서 한명씩 만나는 거야. 거기서 나는 진정한 인생에 대해 배우고 오는 거지.”


경찰은? 삼촌이 경찰이 되면 되게 멋있을 건데...”


삼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 이야기 했다.


파이터는 자고로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법. 내가 죽을 곳은 이탈리아의 베니스란다

태국에서 최강 보스와 마지막 대결하고 살아남는다면 나는 이탈리아로 떠날 거야.”


삼촌이...죽을...곳이 이탈리아 베니스라니...너무나 멋진 말이었다. 자신이 죽을 곳을 정해 둔다는 것이 얼마나 사나이다운 이야기인가.


그날 이후 삼촌은 금방이라도 훌쩍 떠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면 나도 따라갈 요량으로 삼촌의 동선 안에 항상 함께 있었다


그때서야 안 일이지만 삼촌은 도서관을 가는 체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떠나려면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삼촌은 중국집의 배달 일을 했는데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모습은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나도 중학생이 되면서 조금은 바빠졌지만 삼촌과 함께 떠나기 위해서 다른 과목은 제쳐두고 영어만은 열심히 공부 하였다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삼촌이 떠날 때만을 기다렸다.


삼촌은 그 이후 2번의 시험에 더 떨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시험에서 떨어지고는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스쿠터를 한 대 장만 하였다


물론 스쿠터를 끌고 집에 들어온 날 삼촌은 아버지께 죽어라 맞고 스쿠터와 함께 집에서 쫒겨 났지만 말이다.


삼촌은 그렇게 집을 나가서는 아니 쫒겨 나서는 며칠을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삼촌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처음에는 걱정하지 않던 아버지도 중국집 사장님이 집에 왔다가고는 하루도 잠을 자지 못하고 삼촌을 기다렸다.


망할 놈의 새끼...갈거면 혼자 곱게 갈것이지...”


삼촌이 중국집 둘째딸을 데리고 같이 도망을 간 것이었다. 나는 충격이었다


삼촌이 선택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중국집 둘째딸이라니..... 내가 그동안 한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혹시 중국집 둘째딸이 춘리(스트리트 파이터에 나오는 중국 여자 무도인)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식구들이 외식을 하러 중국집에 들렀을 때 치파오를 입고 서빙하는 그녀를 본 것이 생각났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역시 삼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춘리와 함께 떠난 류를 생각했다. 게임 속에선 절대로 둘이 한편이 될 수 없는 사이였지만 삼촌은 현실 속에서 춘리를 동지로 얻은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혼자 가슴에 묻고 조용히 삼촌과 춘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내 기다림이 간절했는지 두 달이 못 되서 그들은 돌아왔다


삼촌은 스쿠터를 타고 돈이 떨어질 때까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춘리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돌아왔다고...


나는 직감적으로 삼촌의 파이터 인생은 끝이났다는 것을 알았다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식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것이다.


생각한 대로 삼촌은 춘리와 약혼을 하고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춘리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는 삼촌은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연필을 굴리는 것이다


이제는 오락실에서도 삼촌을 볼 수가 없었고 옥상위의 샌드백은 주인을 잃은 듯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나 역시 삶의 방향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롤 모델이었던 삼촌이 파이터의 길을 포기하고 처자식이나 생각하는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을 보니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삼촌은 조카가 태어나기 전에 시험에 합격하였고 혼인 신고만 하고 건너 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이제 집에 있던 주인 잃은 샌드백은 내차지가 되었다. 나는 중3이 되었지만 마냥 예민하기만 하고 아무것에도 의욕이 없는 중학생이 되었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날 땐 나도 옥상에 올라가 애먼 샌드백만 두들기는 것이었다


그러다 가끔 앞집 옥상에서 어깨에 어린 조카를 올리고 석양이 지는 곳을 한없이 바라보는 삼촌을 보기도 했다. 그의 뒷모습에서 풍진에 묻힌 고독한 고수의 냄새가 났다.

 

그렇게 이럭저럭 시간이 가고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어울려 골목에서 쭈그려 담배를 피고 있을 때 저쪽 너머에서 우당탕탕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가보자!!”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잽싸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갔다.


거기에는 제복을 입은 삼촌과 칼을 든 한 남자가 대치중이었다.


사촌은 날렵하게 남자의 가슴을 파고들어 손에든 칼을 날려버리고는 굉장한 파워 주먹으로 그 놈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물론 그 남자는 한방에 K.O 되고 말았다. 그것을 보는 나는 손에 서 땀이 샘물같이 솟아다


삼촌은 쓰러진 남자의 팔에 수갑을 채우고는 구경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는 주먹을 번쩍 들어 승리의 세레모니를 하는 것이었다.


~~”

최고예요!!”


친구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나는 돌아온 무림의 고수를 본 듯한 기분에 가슴이 세차게 뛰어왔다


삼촌은 멍하니 보고 있던 나의 어깨를 툭 치고는 고수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비록 여기가 맨하탄 거리는 아니지만 류가 우리 집 뒷골목에서 살아있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등장,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고수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열심히 도서관에도 다니고 예전처럼 영어공부에 열을 올렸다


언젠가는 꼭 이탈리아의 베니스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서히 나의 방황도 끝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느 날 늦게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세탁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세탁소엔 불이 켜져 있었고 일이 많으신지 아버지는 아직도 누군가의 양복을 다리고 계셨다


아버지와 함께 집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려는 찰라 아버지는 자신이 잘 다려놓은 양복을 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고는 오른손을 위로 쭉 뻗어 승리의 세레모니를 하신다.


내가 그동안 눈치 채지 못한 무림의 고수가 여기에도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역시 조용히 범부의 행세를 하던 진정한 무림의 고수였던 것이다


여지껏 흔들림 없이 가족을 지켜주던 절대강자인 나의 아버지. 그리고 그 순간 삼촌이 그랬듯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스트리트 파이터!!! 아버지들이여! 아도겐~~~

 

 

** : 스트리트 파이터의 주인공,

춘리 : 스트리트 파이터에 나오는 여자 무도인,

아도겐 : 류의 필살기 ,

치파오: 중국전통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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