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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운명

[운명]

 

-거북이-

 

오전의 태양이 배어 들어오는 반 투병 유리로 된 문을 등지고 누운 지 18시간정도가 지난 것 같다


반지하방의 네모난 창으로 등교를 하는 아이들의 운동화가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방은 애당초 싸늘하게 식어있었고 지난 3일을 병원에서 보낸 탓에 집에는 사람의 기운이 가시고 없었다.


어제 저녁 집에 돌아와서는 옷도 벋지 않고 누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찢어진 누런 벽지, 장마철이면 벽에서 물이 스며들어 퉁퉁 불어 있다가 가을이 되고서 바싹 말라가며 터진 것이다.


그 사이를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갈 것인지 들어갈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더듬이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오늘부터 학교를 가야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났고 오늘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담임은 장례식장을 다녀갔다.


어차피 3일 동안 줄곧 입고 있었던 교복 그대로 일어서 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확인하고부터는 조금씩 쪼그라들고 작아지고 있어서 이렇게 점점 작아지다 티끌이 될 것 같아 움직이는 것이 겁났다.


집에는 나 외에 사람은 없다. 어머니니 아버지니 하는 것도 애초부터 나에게 없었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며 어머니는 나를 낳고 열흘을 함께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를 키워준 건 할머니였고 그 할머니가 몇 일전 이 방보다 더 차갑고 시린 곳으로 영영 가 버린 것이다.

 

운명, 지독한 운명이다. 어느새 휩쓸려 여기까지 와 버렸고 나는 잠식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운명은 결정 되어 있던 것일까


나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게 뒤엉켜있던 어떤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밀려왔다는 것을 안다


부모가 없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내 어두운 성격과 조부모와 함께 삶으로 느꼈던 불안함


딱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가난으로 인해 상실한 희망. 그것이 이미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저 바퀴벌레였다면.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아도 살아 갈수 있고 아무런 의미 따윈 가지고 있지 않는 저 벌레의 삶이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내 운명은 어디로 흘러갈까? 내게만 지랄 맞은 운명이라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와 외롭다고 죽기엔 나는 늘 외로웠고, 삶이 힘들다고 하기엔 나는 더 겪어야 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방만큼이나 내 운명은 지독히 어둡고 습하다는 것을 오늘 기어이 확인하고서야 나는 저항하기를 포기할까 생각 할 뿐이다.

 

교과서만한 창으로 든 아침햇살이 벌써 시들고 있었다


나를 비웃고 돌아가는 운명의 마지막 위로 같았다. 나는 점점 옅어지는 햇살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누워 있어봤자 더 이상 땅으로도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나를 건들지 않았다. 그래 분명히 아무도 나를 인식하지 않았다


내가 소리치고 버둥거리지 않는 이상 창밖의 아이들이 제 갈 길을 가듯이 운명도 나를 내버려 두는 듯 했다.


나는 한없이 고요한 가운데 지랄 맞는 것은 이 상황일 뿐 운명은 차라리 고요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상황이란 나와 상관없이 변하는것이고 운명은 형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죽은 듯 누워있을 때 나와 상관없이 변하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내 부모든 할머니든 그런 흐름을 따라 가버린 것이지 내게만 따로 주어진 특별한 운명과 고통은 없어보였다


내가 이대로 가만히 누워만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내가 본 것이 인생의 비밀일까 생각했다. 내가 나를 내버려 둘 때 운명이란 거친 놈 또한 더 이상 나를 쥐고 흔들려하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빼면 아침이 오고 배가 고프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명확한 상황으로만 판단하기로 했다. 어차피 외로움이나 슬픔 따위는 내가 만드는 것이니까.

 

나의 움직임에 놀란 바퀴벌레가 후다닥 벽지사이를 헤집고 숨는다


내가 움직임으로 다른 움직임이 유발 되었다. 이것은 명확한 사실 상황이다. 할머니가 남겨준 시골의 집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건 조건이다. 약간의 사망보험금이 통장에 들어와 있다는 또 다른 조건도 있었다. 나는 2년 뒤에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땐 또 다른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기지개를 하고 구겨진 교복을 대충 펴고는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밤새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기 때문일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어른이라는 것은 피곤하도록 인생의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에 대해 충분히 고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온갖 것을 책임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과는 반대로 걸어갔다.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나도 물론 그랬다. 설마 아는 사람을 만날까 하는 생각 따위도 하지 않았다


무작정 걷고 또 걸어 어느 한적한 공원에 이르러서 나는 빈 벤치에 드러누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은 맑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았다. 이렇게 방치된 상태를 잠깐이라도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30분이 채 가시기 전에 학교보안관이라는 완장을 찬 할머니 두 분에 의해서 여유가 깨지고 말았다.

 

나는 배가 아파서 누웠다고 대충 둘러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돌아서 10보를 채 걷기 전에 두 할머니 중 한분이 누구네 손자가 아니냐며 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분은 이미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분은 담담한 표정으로 밥은 먹었는지 상을 잘 마쳤는지 물어보고는 아침 안 먹었으면 자기 집으로 가자며 내 팔을 끌었다. 나는 두어 걸음 끌려가다 학교에 가봐야 한다고 거절하였다.


그 분은 우리 할머니만큼 다정한 눈을 가지고 계셔서 하마터면 울컥 눈물을 쏟을 뻔 했다


할머니는 내손을 두드리며 학교는 빼먹지 말라는 말을 하고는 내가 돌아설 때까지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2년만 더 견디기로 했다. 아무리 혼자이더라도 별안간 얽혀있는 인간관계를 끊고 달아날 수 없음을 알았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법칙이다.

 

학교를 빼먹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바로 학교로 갔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업은 시작 되었고 그래서 빈 운동장을 지나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난 학기동안 방과 후 청소를 했던 곳이라 발길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했던 것이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책을 정리하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수업시간인걸 확인했지만 그녀는 나를 내치지 않았다


물론 다른 날이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녀도 내 사정을 아는 듯 했다


그녀는 중학생 아이를 둔 40대 후반의 주부였다. 엄마가 살아있다면 그 나이일 것 같아서 가끔 그녀가 엄마라면 어떨까 상상해 보곤 했었다


조금은 피곤한 듯한 눈을 뜨고 나를 다독여 밥을 먹여 학교를 보내고 부산하게 준비해 그녀가 출근을 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곤 했다


그렇게 조금은 부족함이 있는 사람이 엄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그녀는 지혜로운 어머니처럼 내가 왜 그 시간에 거길 들어왔는지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나에게 웃으며 음료수를 하나 건내 주었다. 이럴 때 현명한 엄마라면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그녀 역시 내가 음료수를 받아 쥐는 것을 보고는 하던 일로 눈을 돌렸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지난번 읽다 꽂아 둔 책이 있는 곳으로 갔다


지난 학기 여기를 청소하는 동안 나 외의 두 명의 친구는 자주 땡땡이를 쳤지만 다행이 나는 도서관 청소에 취미가 붙어 버렸다.


반납된 책을 제자리에 꽂아 넣고 반듯하게 줄을 세우고, 제자리에 있지 않는 책을 찾아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서 선생님은 나를 특별히 도서위원에 넣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각 반을 돌면 신청도서용지를 게시판에 붙이고 걷어오는 일을 하였다.


처음 도서관에 청소를 하러 간 날 나는 이 묘한 장소의 신성함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언어로만 채워진 이곳에선 외롭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은이와 살면서 익힌 인생의 허무를 벋고 젊은 책의 기운을 받기 시작한 곳이 여기였던 것이다.


그녀는 혼자 있는 것처럼 묵묵히 일했고 덕분에 나도 고요한 가운데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충만한 고독이었다.


나는 읽던 책을 제자리에 놓고 손으로 책꽂이의 책들을 손으로 더듬어 나갔다


내가 운명을 피해 숨는 거라면 나는 여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 수업 종이 울렸고 하는 변성기가 갓 지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친근한 소음에 삼일 만에 피식 웃음이 났고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는 이제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교복을 추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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