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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뒷골목 고양이 교정소(3)

 

 

부엉 부엉

멀리서 들려오는 밤 부엉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달은 머리 꼭대기에 걸려 있고 가로등 하나만 덩그라니 주위를 밝힐 뿐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뭉퉁하고 둥근 앞발을 보며 아직 내가 고양이 임을 다시 확인 하였다. 나는 아직 흰 털을 가진 네발달린 짐승이었다. 이런 상황이 기쁜지 슬픈지 생각하지 전에 배가 고파왔다. 오전엔 설사를 해댄 대다가 점심엔 약이든 우유한 잔 밖에 먹지 못해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애꾸눈이가 누웠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 녀석이 있었던 자리는 냄새와 온기를 남기고 비어있었다.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몸은 짐승이지만 영혼은 아직 사람인지라 한밤중에 미끄럼틀위에서 잠을 깼는데 배가 고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일단은 미끄럼틀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행동해 보기로 한 것이다. 배가 고프니 뭔가 주워 먹든 훔쳐 먹든 움직이는 것이 짐승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고양이는 어디서 무얼 먹을까?’

나는 놀이터를 한 바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먹다 흘린 과자라도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어디선가 달달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달달한 걸 먹어야 돼

나는 냄새가 나는 곳 즈음에 발길을 멈추었다. 벤치 아래에 뭔가가 보였다. 운 좋게도 그곳에 아이들이 먹다 남긴 빵조각이 있었다. 나는 벌써 입안에 침이 고였다.

빵이 놓여 진 벤치를 향해 걸어가는데 그 뒤의 키 작은 편백나무뒤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순간 머리와 어깨를 낮춰서 본능적으로 경계를 했다. 그리고는

꺼져!”

하고 갑자기 터져 나온 거친 목소리에 놀라 털을 고추 세웠다. 그 빵을 나 말고도 누군가가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냐옹

나는 배는 고팠지만 빵 한 조각 때문에 목숨은 걸고 싶지 않아 한껏 조심하며 촉각을 세웠다. 벤치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렸다. 그러고는 초록색으로 빛나는 야생동물의 눈이 나타났다.

푸하하. 누구냐고?”

초록색 눈을 하고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 것은 너구리였다.

떠돌아다니는 놈인 것 같은데 여긴 이 너구리 푸코의 영역이란다 애송이. 그러니 좋은 말 할 때 꺼져

하며 그는 날카로운 이빨까지 드러내 놓았다. 나는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았고 그 도깨비같은 눈빛을 보자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 놈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보이고는 빵을 물고 유유히 돌아서 가려고 하였다.

어디든 이놈의 짐승들은 너도나도 영역 타령이었다.

사람이었다면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너구리에게 먹을 걸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고양이라는 걸 잊지 말자며 순순히 돌아서야만 했다. 젠장 배는 고프지만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잠깐!”

돌아서 가던 푸코란 놈이 갑자기 돌아서며 나를 불러 세웠다. 하여간 힘 좀 있는 것들은 불러 세우는 게 취미인 것 같다.

너 콜필드의 냄새가 난다

나는 그를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너구리는 가는 발걸음을 돌리더니 다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너구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덩치가 더 컸고, 도깨비불같이 눈은 더 이글이글 타올랐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콜필드란 놈 이 너구리에게 잘못 보인 게 분명하다. 도망 칠 기운도 싸울 기운도 없는데 이대로 고양이 죽음을 죽어야 하나.

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 너구리는 내 발밑에 물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는

그 녀석의 냄새가 나는군. 그래 콜필드는 잘 있나?” 하고 묻는 것이다.

그게 낮에 본 바로는 자...잘 있는 것 같다옹하고 그의 눈치를 보며 나는 대답했다. 그는 앞발로 그 빵을 내게 밀어 주었다.

먹어라 콜필드는 내 친구다.” 그러고는 그는 내 앞에 얌전한 강아지 마냥 앞다리를 모으고 앉는 것이다.

콜필드와 나는 3년 전에 여기서 크게 영역 싸움을 했지. 나는 그를 이길 수가 없어서 새끼들과 쫓겨 가게 생겼는데 그가 우리를 여기서 살게 해 줬다. 게다가 그는 내 새끼들을 굶지 않게 돌봐 줬지. 내가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었었거든. 고양이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자기보다 약한 놈은 건들지 않는 법이지. 그래서 그 녀석과 나는 친구가 된 것이고 콜필드의 친구는 곧 내 친구다. 사양 말고 먹어라.”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몸에서 나는 콜필드의 냄새를 다시 맡아 보았다. 콜필드란 놈이 내 어깨를 누를 때의 그 힘이 다시 느껴졌다.

나도 먼저 힘을 길러야겠군하고 생각을 했다.

푸코는 내가 빵을 먹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서려고 일어섰다.

그런데 너! 고양이 치고는 무척 겁이 많군. 아무리 이 푸코님이지만 자기가 먼저 발견한 먹이를 손도 데지 않고 그냥 내 준다니 말이야. 발톱이라고 한번 내보여 싸울 수 있는 상대인지 가늠 정도는 해봐야 할 것 아니야. 상처가 두려우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 여기선 굶어 죽는다는 뜻이야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러고 돌아서는 푸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박군 일어났군요냥

애꾸눈이는 푸코가 사라지고난 잠시 후에 나타났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있는 내 앞에 두 마리의 쥐를 내려놓았다.

~~냥냥죽은 쥐의 꼬리가 앞다리를 치자 소름이 쫙 끼쳐 와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일어나면 배고프실까봐 제가 잡아 왔어요냥하고는 애꾸눈이는 그중 한 마리를 덥석 물고는 머리부터 잘근 잘근 씹는 것이다.

저리 치워 냥. 우웩

나는 금방 삼킨 빵이 넘어올 것만 같았다.

, 박군은 아직 이런 거 못 먹나 보네요. 어쩌죠?” 하며 애꾸눈이는 쥐 한 마리를 대충 씹어 꿀꺽 삼키면서 이야기 했다.

..난 괜찮아. 금방 빵 먹었다고. 그러니까 그것 좀 저리 치워

나는 네다리를 뻗고 누운 나머지 쥐를 곁눈으로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애꾸눈이는 나머지 한 마리도 덥석 물더니 꿀꺽 삼켜버렸다. 사라져 가는 쥐꼬리를 보자 왠지 조금은 아쉬운 감이 들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은 했지만 입에 침까지 고여 버렸다.

빵이요?”

꼬리까지 입으로 밀어 넣고는 애꾸눈이는 앞발에 침을 발라 수염을 정리했다.

. 여기서 빵을 주워 먹었어. 푸코란 놈에게 뺏길 뻔 했지만 콜필드의 냄새가 난다며 순순히 다시 돌려주더라고

, 푸코 너구리 말이죠? 벌써 푸코를 만나셨군요. 그나저나 이런 걸 못 먹어서 어떻게 하죠냥?”

걱정마 앞으로 내가 먹을 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나는 아까 들은 푸코라는 너구리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굶지 않기 위해 나는 노력해 보기로 했다.

나와 애꾸눈이는 벤치로 올라가 앉았다.

이제 우리는 뭘 하면 되는 거지 애꾸눈이?“ 나는 조금은 조바심을 내는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조금 있으면 고양이 치우 노인이 나타날테니.”

노인? 늙은 고양이가 나타난단 말이지?”

. 치우 영감이 오셀로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거예요

나는 애꾸눈이가 두리번거리는 쪽을 함께 쳐다보았다. 깊어가는 여름 밤, 주위는 조용하고 적막하였다. 바람에 실려 오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술 취한 행인의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 졌다가 멀어졌다. 이런 소리들 가운데 짐승들의 소리가 구별되어 들렸다. 공원 잔디를 바스락거리며 지나가는 네발의 짐승소리에 귀가 움직였고, 나무를 타는 다람쥐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주파수의 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여름밤의 정취를 만들어 내었다. 귀뚜라미가 지르르 울었다. 참 낭만적인 밤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갖가지 소리들이 세상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밤이 되자 낮 보다 모든 신경이 더 예민해져 왔다. 냄새, 소리 뿐 아니라 보는 것까지 깊이가 있어지고 선명해졌다.

어렴풋이 멀리서 짐승들의 싸움소리가 나는 듯 했다. 잠깐이었지만 무척 격렬한 싸움 같았다.

..애꾸눈이내가 애꾸눈이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벌써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두 귀를 모으고 있었다.

누가 당한 것 같아요. 박군 우리 거길 가봐야겠어요

애꾸눈이는 뭔가 위급한 듯이 소리가 났던 곳으로 뛰어갔고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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