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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뒷골목 고양이 교정소(2)

 

떠듬거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온 나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도시의 풍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고양이가 보는 세상은 모든 것이 어마어마하게 커져 있었다. 끝도 없이 하늘로 솟은 빌딩과 코끼리만 해 보이는 자동차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 같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사람들. 이런 세상에서 고양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 , 하수구 아래, 쓰레기 더미 속등 사람의 흔적이 없고 어두운 곳에 고양이들의 삶의 터전이 꾸려져 있었다.

고양이가 되어 코가 예민해 졌는지 아까부터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묘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가 그 냄새 때문에 자꾸 앞발로 코를 문지르자 앞서가던 애꾸눈이 고양이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냄새는 우리 구역이라는 냄새랍니다냥. 우리가 속한 구역에서는 우리는 안심하고 지낼 수 있지요. 그래서 일단 우리는 구역 대장에게 먼저 인사를 하러 갈겁니다냥."

'구역 대장이라고?'

나는 구역 대장이라는 말에 그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그런 녀석은 아니겠지? 얼굴에는 번들번들 기름기가 흐르고 잘 다듬어진 머리와 기분 따라 바뀌는 명품 가방, 신발, 시계로 반 아이들의 기를 죽이고선 그는 우리 반의 대장이 되었다. 그 녀석 생각이 떠오르자 차라리 이대로 고양이가 되어 그 녀석을 더 이상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거 어쩌면 고양이 보다 못한 하등한 존재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기 이전에 부모의 직업과 재산 같은 것으로 평가 되어버리니까. 고양이가 된다면 그런 것들로 기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대로 고양이나 되어버릴까보다냥~~.

 

이제 조금은 네발 걷기가 자연스러워 졌는지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앞발 두개와 뒷발 두개가 박자에 맞게 앞뒤로 움직여 주었다. 네발 걷기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이인삼각 경기를 하는 기분이랄까..항상 누군가와 동행하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애꾸눈이는 골목을 꺾어 들어가서는 2층으로 나있는 빌딩의 외부 비상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자코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그는 계단 끝의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는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어두운 곳에 들어섰을 때 내 눈은 전등이 켜진 것처럼 반짝하더니 그곳의 구석구석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신기해서 눈을 깜빡이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후다닥하고 뭔가가 내 등에 올라 어깨를 내리 누르는 것이었다. 나는 어떨결에 반사적으로 뛰어올랐지만 내리누르는 그 발의 힘이 만만하지 않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  젠장 고양이가 되어서도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다니..말랐던 눈물이 다시 쏟아질 것 같았다.

"누구냐옹~"

위에서 무겁고 착 갈아 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 콜필드 대장. 이 분은 박군,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애꾸눈이, 여긴 왠일이냐?"

그는 애꾸눈이를 확인하고도 앞발의 힘을 풀지 않았다.

"이 애꾸눈이가 보은을 하기위해 박군을 데려왔습니다. 고양이 교습소 손님이지요."

"..인간이란 말이지."

그는 그제서야 커다랗고 말랑말랑한 그의 앞발을 치우고는 자신의 자리인 듯 종이박스가 깔린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커다란 검은색 도둑 고양이였다. 그의 목과 등에는 길게 그어진 상처 자국이 있었고 뾰족 솟은 오른쪽 귀는 누구에게 물렸는지 두 갈래로 찢어져 있었다. 그는 근엄한 자세로 종이 박스위에 앉더니 애꾸눈이와 나를 바라보며 용건이 뭐냐는 듯 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아직도 놀라서 엎드린 채로 미동도 하지 못하였다.

뒤에서 갑작스럽게 덮쳐누르는 공격은 그 녀석에게 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강한 기술이었다. 그 녀석은 멀리서부터 겁을 주며 서서히 다가오는 스타일 이었으니까.

", 대장. 오늘 하루 박군이 고양이들과 함께 지냈으면 해서요. 괜찮으시면 허락을 해주셨으면 합니다냥."

"...네가 데려온 저 녀석 무척 겁이 많군. 하루를 버틸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냥."

나에게 겁쟁이라고 하는 소리에 머리를 감싸 쥐었던 두 앞다리를 얼른 치웠지만 아직 다리가 후들거려 바로 일어서지는 못했다. 일 년을 그렇게 맞고 지냈는데 아직 누군가에게 공격 받는 건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고 두려운 일이었다.

콜필드라는 대장 고양이는 잠시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몸을 수축했다 쭉 펴며 한번에 내 옆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러고는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나를 관찰하는 듯 했다.

"박군. 사람도 우리와 같은 짐승이다. 자신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강한 놈에게 잡아 먹히고말지냥. 그런 비루한 자세, 표정부터 박군에게 불리하다냥. 자세를 바로 하고 눈을 빛내라냥. 그리고 고양이는 단 한순간도 남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거지. 잘 명심해라냥."

이렇게 말을 끝내고 대장은 자신의 몸을 나에게 비비기 시작했다.

~ 이렇게 기분 좋은 순간이 있나. 나는 마치 엄마 품을 파고드는 아기가 된 듯 부드러운 털의 감촉에 취해서 가르릉 거리며 눈을 감고 기분에 취해 버렸다.

곧 콜필드는 스르르 나의 곁을 빠져나가 자기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자 나는 마취에서 풀리는 것처럼 스르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애꾸눈이. 이제 가도 좋다. 하지만 아직 고박사에게 협조하지 않는 고양이가 많은 걸 명심해라냥. 특히 네오를 조심하도록냥."

애꾸눈이는 대장에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뒤를 돌아 그 자리를 나왔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그 이후로 나에게서도 아까의 그 좋을 듯 말듯 한 묘한 냄새가 났다. 내가 그 콜필드라는 고양이의 소속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내가 소속을 가진 고양이가 되다니..학교나 집에서도 소속감이란 걸 가지기 어려웠었는데 그 검은 고양이는 나를 선듯 받아준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같은 냄새를 풍기며 고양이들의 세계에 소속되다보니 왠지 모를 편안함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안정감이라고 해야 맞을 듯했다. 사람이었을 때 겉돌았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박군. 이제 부터 슬슬 여행을 해볼 참입니다냥. "

"여행?" 나는 밖으로 나와 나도 모르게 어디 따뜻한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애꾸눈이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일종의 미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냥. 고양이 오셀로를 찾아내서 인정을 받으면 우리의 미션이 성공하는 것이죠냥."

나는 애꾸눈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해가 드는 골목의 후미진 곳에 털썩 배를 깔고 누웠다. 익숙지 않아서인지 네발로 걷는 것이 생각보다 허리에 무리가 오는 듯 했다.

따뜻한 정오의 햇살이 길게 드리운 곳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다른 고양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나른해져왔다.

"어떤 녀석이냐. ~"

나는 나른해져서 반쯤 감긴 눈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쪽에서는 어느 늙은 고양이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발톱을 세우고는 내 뺨을 찰싹 때리는 것이었다.

"~~~" 오늘 들어 벌써 두 번째로 고양이에게서 받은 공격이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고양이가 된다고 해서 찌질이 모습이 어디 가겠냐고.

".....그러시냐옹..." 나는 용수철처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났다.

그러자 그 늙은 고양이는 내가 누운 자리에 배를 깔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길게 드린 수염을 다듬기 시작했다.

"박군. 이러면 않된다냥. 고양이에겐 다 자기의 영역이 있다냥. 남의자리에 누웠다가는 공격받기 십상이다냥. 어디 앉기전에 냄새를 먼저 맏아야한다냥."

그러고 보니 내가 앉은 자리에선 콜필드의 냄새 외에 찌릿한 다른 냄새가 섞여있었다.

"진작 말해주지 애꾸눈이..이게 뭐야옹."

나는 얼얼해진 뺨을 앞발로 문지르며 내 얼굴을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참 이상한 고양이의 습성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영역은 늙은 것이나 젊은 것이나 확실히 지키고 그것만 아니라면 고양이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아픈 뺨을 어루만지면서 나는 또 수염을 다듬고 앞발을 핥으면서 나빴던 기분이 싹 사라지는 듯 했다. 고양이가 된 이후로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나는 몸을 깨끗이 닦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무척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스스로 내 존재에 대해서 이렇게 즐겁고 기분 좋았던 적은 없었는데 참 묘한 일이었다.

"박군, 나를 따라오라옹." 애꾸눈이는 나를 보며 재촉했다.

나는 툴툴 거리며 애꾸눈이의 흔들거리는 꼬리를 보며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애꾸눈이는 건물 옆의 하수구를 지나 8차선 도로의 지하도를 이용해 길을 건너서는 어느 아파트 단지의 한적한 놀이터로 나를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미끄럼틀의 제일 꼭대기로 올라가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박군, 여기가 좋겠어요. 오늘은 여기서 쉬어요냥"

애꾸눈이가 자리를 잡은 뒤에 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을 골라 자리에 누웠다.

하루가 정말 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잠깐. 애꾸눈이, ..근데 왜 오늘은 여기서 쉰다는 거지? ..내일이면 나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야?" 나는 스르르 잠이 들다 말고 고개를 바짝 들고 애꾸눈이를 쳐다보았다.

"....그게..박군...내일 미션을 완료하면 당연히 사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요. 하지만 만약 미션을 완료하지 못하면......"

"...완료하지 못하면 뭐?"

"그게 완료하지 못하면..영원이 고양이로 살수도 있어요...하지만 걱정 마세요냥. 제가 반드시 오셀로를 찾아서 사람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도와 드릴께요냥"

애꾸눈이는 미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양이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는 했지만 기분은 그렇게 우울하지는 않았다. 고양이란 슬픔을 모르는 동물인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고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 그깟 학교며 구질구질 살던 지하 월세방에 다시 가지 않아도 되는 지금 상황에 살짝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연히 이런 마음을 애꾸눈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옆으로 고개를 돌려 누워 버렸다. 나는 이제 부모로 부터 그리고 나를 괴롭히던 사회로부터 드디어 탈출하는 것이다.

독립만세!’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르르 잠이 들었다.

잠결이지만 살살 부는 바람소리와 놀이터에서 데이트를 하던 남녀의 속삭임, 경비원의 순찰하는 소리가 모두 들리는 듯 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이 멀리서 들리는 이제는 다른 세상의 소리들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한참을 기분 좋게 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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