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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등어

[고등어]

 

밤사이 매섭게 몰아친 태풍이 새벽녘에야 잠잠해 졌다.

부두에 묶어둔 배 때문인지 뜬눈으로 밤을 보내신 아버지 탓에 영민이도 잠을 설쳐버렸다. 새벽에야 바람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아버지가 밖에 나가시는 기척에 잠깐 잠이 깼던 영민이는 차가운 바다 바람을 안고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누운 아버지의 품에 비집고 든 후에야 다시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세상을 삼킬 것 같았던 밤이 물러나고 아침 하늘은 그야말로 깨끗한 에메랄드 블루의 본연의 낮 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파제를 때리고 밀려가는 파도 소리가 멀리서 부터 다가와 영민의 귓가를 간질인다. 그리고 아이는 몇 번 뒤척이다 부스스 일어났다. 영민이가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벌써 부두에 나가시고 안계셨다. 아직 학교를 다니지 않는 영민이는 아무도 없어 조용한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담벼락 밑에서 부러진 낚싯대를 주워들곤 질질 끌며 부두가로 나가보았다.

동네 도둑고양이가 밤사이 무사했는지 숙희누나네 담벼락에 엎어져 수염을 다듬고 있었고, 민규형네 집의 쵸코는 별일 없었다는 듯 영민이의 발소리를 듣고 껑껑거리며 짖기 시작했다.

 

영민이은 만물슈퍼를 지나서 곧장 아버지의 배가 묶여있는 부두로 향했다. 평소에 아버지는 새벽에 바다에 나가셔서 고등어나 가자미를 잡아 아침에 들어오신다. 그리고 영민이는 아침마다 부두에 나와 갓 잡은 물고기를 내리는 것을 구경한다. 영민이은 살아서 펄떡거리는 고등어를 볼 때면 자신의 손끝이 쩌릿해 옴을 느낀다. 푸른 바다 한 조각이 펄떡일 때 차디찬 바다에 손을 담갔을 때처럼 그렇게 손끝이 쩌릿해 오는 것이다.

태풍 때문에 오늘은 조업을 가지 않은 아버지는 밤새 배가 상하지 않았는지 여기저기를 손보고 계셨다. 9시가 지나고 벌써 뜨거워져 가는 햇살에 젊은 아버지의 까무잡잡한 피부는 고등어의 등어리만큼 생기 있게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아부지"

영민이는 배의 갑판을 대걸레로 닦고 있는 아버지를 멀찌감치서 불러보았다.

"집에 안 있고 왜 또 나왔노?"

"오늘 바다에 안 나가요?"

"우리 영민이 아침 차려주고 인제 나갔다 와야재"

영민이는 바닥만 쳐다보며 대답하는 아버지의 입에서 우리 영민이라는 말을 듣고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침 묵고 나가면 뭐가 잡힌대요?"

"우리 영민이처럼 아부지 말 안 듣고 싸돌아 댕기는 고등어나 있으면 잡아 와야재."

"~~"

바람에 날아온 라면 봉지가 뱃머리에 엉겨붙어있었고 마루호라고 쓰인 글씨에는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덕지덕지 말라 붙어있었다.

대강 정리가 끝났는지 아버지는 선실에 있는 동일이 삼촌에게 밥 먹고 다시 온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훌쩍 갑판에서 뛰어 내려왔다.

 

"요놈 요놈.

배에서 내려온 아버지는 갈매기를 잡으러 다니는 아들의 뒤를 쫓아 뛰었고 영민이는 깔깔거리며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버지가 차려놓은 아침은 단출했다. 멸치를 우려낸 물에 삶은 국수를 말고 김치 몇 조각과 김 가루를 뿌린 국수를 아침부터 차려 놓은 것이다.

"아무지 시방 더운데 나가실 거예요?"

"그저께 그물 쳐 놓은 거 태풍에 상했는지 보러 나가야 돼. 그러고 나선 금방 들어 올꺼여"

"부두에서 기다릴까?"

"인석아 내년에 핵교 가야되는데 맹 놀 생각만 해서 쓰것냐? 가나다는 읽고 쓸 줄 알아야재"

후루룩 소리를 내며 바쁘게 국수를 입에 밀어 넣으면서 아버지는 아들을 타박해 보았다.

"숙희 누나가 학교 갔다 오면 갈쳐 준댔어요."

"그랴..집에 있다가 숙희 오면 같이 공부하고 있어. 아부지가 고등어회 쳐 올 테니까"

영민이는 입안에 국수발을 가득 문체로 눈꼬리와 입꼬리가 만날세라 방긋 웃어보였다.

5분도 안 되서 다 먹은 아침상을 물리고 아버지는 평상 끝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무시고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영민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 막대기로 마당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림자 속의 아버지도 담배를 무시고 바다를 바라보시다 영민을 물끄러미 쳐다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나가시고 난 뒤 영민이는 달력 뒤에 낙서를 하며 놀다 꼬박꼬박 졸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잠을 설친 덕에 결국 아예 엎어져 자버리고 말았다. 영민이은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오랜만에 엄마를 봐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자꾸만 웃음이 나와서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잡고 흘낏거리기만 했다. 엄마의 부드러운 손이 영민이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영민의 얼굴을 살살 간질이는 것 같아서 베시시 웃음이 났다. 흰 환자복을 입은 엄마는 그렇게 한참을 뺨을 어루만지다 영민이을 보며 진달래꽃 같은 웃음을 웃으시고는 큰 문 뒤로 들어가 버리셨다.

 

"아부지 이제 엄마 못 봐요?"

""

"?"

"엄마는 ........ 이제 하늘나라에 살러갔어."

"좋은 데야?"

아버지는 아들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참으며 대답했다.

"거기서는 아프지도 않고 매일 춤추고 노래하고 그라재"

"우와~~우리도 가자, ?"

"그래 나중에 100년 살고 나서 우리도 가자"

영민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엄마와 닮은 그 웃음을 웃어주었다.

 

"영민아..야야..인나봐라"

영민이는 누군가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밖은 벌써 어둑해져 있었고 하늘은 붉은 기운마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동일 삼촌"

영민이를 깨운 것은 동일 삼촌이었고 그의 옆에 숙희 누나도 있었고 왠일로 만물상회 아줌마까지 와 있었다.

"아가..오늘 삼촌 집에서 자자."

금방 잠에서 깬 대다가 모두들 그를 빤히 쳐다보는 통에 영민은 어쩐 일인지 어리둥절했지만 동일삼촌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뭔가 불안한 기색은 느낄 수 있었다.

"아부지는요?"

"............."

"삼촌 아부지는 안와요?"

"아이고 불쌍한 것..아이고.." 만물상회 아줌마는 엄마가 죽었을 때처럼 그렇게 울먹이셨다.

영민이는 순간 눈앞이 까매져 옴을 느꼈다.

"영민아 지금 경찰들이 아부지 찾고 있으니께 금방 들어 오실꺼여. 그때까지 삼촌 집에서 밥 묵고 한밤만 자자. ?"

영민이는 왜 눈물이 나려는지 모르겠지만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부지 내일 와요?"

"그래, 그래. 내일 올꺼여"

 

동일 삼촌네 집에서 문풍지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영민은 눈을 감고 있었다. 얼른 해가 뜨면 부두로 나가볼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고래만한 고등어를 잡아서 오시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마루호에 고기가 넘치고 뱃머리선 아버지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 상상도 해보았다.

"배는 찾았는데 사람은 아직 이여"

"아이고 이 사람아 어디 간겨.."

"시간이 많이 지나서 해경들도 철수하고 내일 찾으려나봐...."

"흑흑, 그 사람이 태풍에 배 밑이 갈라진 줄도 몰랐는가베.."

다행이 파도가 모든 소리를 삼켜주어서 영민은 즐거운 상상을 계속 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영민은 부두로 나갔다.

배의 후미가 날아간 마루호가 보였다. 그는 배 앞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배는 죽은 생선마냥 숨도 쉬지 않고 뒤집어져 드러누워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 영민은 배주위로 둥둥 떠다니는 죽은 고등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영민이는 어제 놀다 던져버린 부러진 낚시대로 고등어를 건져 올렸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눈이 말간 고등어는 힘든 삶을 살다 간 것처럼 입이 벌어져 있었다. 그는 고등어를 두 손에 받쳐 들고는 집으로 왔다. 그리고 평상위에 올려놓고는 어제 그려 놓은 아버지의 그림자 모양 안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손으로 파다, 돌로 꼬챙이로 파다, 적당한 크기의 구덩이를 만들어 고등어를 묻고는 꼭꼭 발로 밟고 나서 평상위에 올라앉았다.

 

벌써 아침 해가 따가워 지는 시간이었다. 평상위에 앉은 영민이는 푸르고 반짝이는 피부를 가진 아버지가 고등어처럼 바다를 가르며 헤엄치고 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엄마가 있다는 하늘과 맞닿은 바다 어디쯤 아버지가 계시리라 생각을 하며 영민은 해아래 눈을 감았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귀를 통해 마음으로 흘러 들어와 슬픈 생각을 쓸어가 주는 것 같았다

영민의 감은 눈속엔 젊음 부모가 다시 만나 사랑하고 있을 먼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한없이 반짝이는 바다 속에선 싱싱한 고등어가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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