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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만의 비밀이 있었다.(1)

[나만의 비밀이 있었다.(1)]

 

-거북이-

 

남편 몰래 그를 만나기 시작한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엄밀히 따지면 몰래 만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3개월 전에 여행 작가가 되기 위해 한 아카데미를 끊었고 거기에서 그를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직장을 그만 둔 뒤에 나는 여행 블로그를 운영해 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의 권유로 이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와의 만남은 단순한 사고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남편은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하였고, 나도 사실은 혼자만의 감정인지 아닌지 아직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30대 중반정도로 나보다 2~3살 정도는 어려 보이는 사람이었다. 비정상적으로 하얀 얼굴에 항상 환하게 웃었고, 여행 작가다운 냄새를 풍기는 빈티지한 옷차림새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듣는 수업의 강사이기도 했다.

강의를 등록한 후에 나는 그의 책을 예전에 도서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국내의 습지를 다니며 찍은 꿈속 같은 느낌의 사진이 실린 책이었는데 거기에 보태진 짤막한 여행 수기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어 줄만큼 인상 적이었다.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았던 그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나다고 생각하니 개강 첫날 무척 긴장되고 떨렸던 기억이 난다.

수업은 가까운 대학의 강의실이었다. 나 외에 10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 내 또래의 남자 몇과 20대 중반의 젊은 직장인 몇이 있었다.

첫 수업엔 돌아가며 자신에 대해서 소개를 했는데 모두들 자신의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며 책을 내고 싶어 했다. 모두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마지막으로 그의 소개가 있었다.

저는 이번 학기 수업을 맡게 된 김성재입니다. 사진과 여행은 떼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처럼 예술 작품을 찍어 보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분으로 사진을 대하시면 사진과 카메라를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된다면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멋진 곳에 가 있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고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학기에는 이런것에 중점을 두어서 수업을 해 봤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주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사진과 카메라를 사랑한다. 결혼 전 나는 오랜 직장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한 후 결혼 후에 직장을 그만 두어 버렸다. 사무실에선 하루의 절반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건강이 안 좋아져 있었던 터라 퇴직 후에 나는 운동 삼아 그 동안 서울에 살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관광지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한가롭게 경복궁을 거닐기도 하고 덕수궁 돌담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이나 하다가 돌아 왔는데 어느 날 부턴가 나도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고 남겨 놓고 싶어진 것이었다. 그날의 날씨와 그 장소의 소음과 냄새, 그리고 내 기분까지도 그렇게 좋은 곳에서 보낸 나의 기억을 가슴이 아닌 잊혀 지지 않는 어느 장소에 저장해 놓고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하니 남편은 저렴하게 구입했다며 어느 날 DSLR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찍게 된 내 사진이 무척 좋았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누군가가 좋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면 돈을 벌지 못해도 뿌듯한 무언가가 생겨서 더 열심이곤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내 여행블로그가 남편에겐 좋아 보였는지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를 지원해 주었고 나는 그렇게 소박하게나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사진과 카메라는 무엇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 되었다.

찰칵이는 카메라셔터의 소리가 마치 내 심장 박동 소리처럼 여겨 질 정도였다.

 

수업은 3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번 씩 있었다. 하루 2시간의 강의였지만 그는 노련한 강사였고 그의 수업은 내게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두 번째 강의 땐가 그가 내 블로그를 방문해 보았는지 수업 전에 내 사진과 글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곧 무심하게 프로젝트를 켜고 그날의 수업을 시작하였는데 나는 갑자기 뭔가가 머릿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아서 멍하니 교재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시간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가끔 들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가슴에 스미는 글, 시선을 끄는 사진을 위하여'란 제목이 머리 속에 가득 찼고 그러고 나서야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에 내 성격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이런 일에 긴장씩이나 하다니 말이야 하고는 결혼 후 늘 혼자였던 내가 인식이 되는 것이다.

결혼 한 지 5년이 지나는 동안 아이가 없었던 터라 나는 늘 혼자였다. 게다가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면 더 혼자가 좋았고 편했다. 시간이 날 때도 혼자 카페에서 책을 보는 게 고작 이었다. 남편이 오기 전까진 커피를 주문할 때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나는 장외의 인간이 되어 버렸고, 누군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는 앞자리에 앉은 미옥이라는 28살의 아가씨와 함께 교정을 나왔다.

"언니 김성재 강사님 정말 멋져요. 그렇지 않으세요? 어쩜 내 이상형이지 뭐예요."

나도 멋진 사람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니 나 두근거려서 수업도 못 듣겠어요."

그녀는 젊은 사람답게 활기차고 솔직했다.

"그분 솔로이실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저번 학기에 수업 들었던 언니한테 들은 이야긴데요 그 선생님 자기 일에 빠져서는 여자한테 관심도 없다고 하네요. 제 생각엔 그냥 마음에 들었던 여자가 없었다는 거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겠어요? 안 그래요?"

나는 수업 중에 프로젝트 불빛에 깊이가 더해진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다다랐고 다른 수강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봄의 따스한 햇살에 막 고개를 내민 새싹들이 반짝이는 그런 오후였다. 이런 날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며 수업 중에 남은 그에 대한 잔상을 애써 지워 보려 하였다.

 

집에 와서는 남편에게 수업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 진정성을 담아 글을 써야 사람들이 좋아해준대. 그리고 그러려면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댔어. , 나 있잖아 강사한테서 칭찬 받았다."

나는 오늘 일이 문득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무슨 칭찬?”

그는 밥을 씹다말고 꿀꺽 삼키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와이셔츠의 단추 구멍이 터질 듯이 벌어져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그냥 느낌이 좋다고.”

"거봐 내가 자기가 소질이 있다고 했잖아. 열심히 해보라구."

남편의 회사와 집이 멀어서 퇴근시간이 항상 늦었지만 그는 돌아와 꼭 저녁을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점점 허리와 엉덩이의 경계가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불편한 감정도 뒤범벅이 되어 올라온다.

"그래 당신 블로글에서 뭐가 좋데?"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남편의 터질듯이 벌어진 단추 구멍에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이다.

"?? 어 그래. 사진에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고 그러더라고, 그리고 글도 간결하고. 뭐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고.."

"카메라 사준 보람이 있네."

남편은 무척 뿌듯한 것 같았다. 자신이 사람 보는 눈은 있다는 듯이, 그리고 내가 뭔가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자 잠시나마 김선생에게 호감을 가졌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남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낫선 감정들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다음날 과제를 위해서 죽전의 카페 거리로 나갔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사진 찍고 서술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이곳에 카페거리가 조성된 이후로 가끔 컴퓨터, 카메라, 그리고 책을 들고 나와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중에 유독 자주 가는 곳인 카페 라운지어스에서 오늘 나는 짐을 풀고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나서는 어떤 사진을 찍을지 잠시 고민해 보았다. 내가 이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의 선곡 때문이었다. 미셜파이버의 오래됐지만 감미로운 재즈를 들을 수도 있었고 제이슨 므라즈의 베스트음반을 전곡 다 듣는 날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엔 Paris Match 의 보사노바가 울렸다. 아무튼 나는 다 좋았다. 음악도 분위기도 좋아 그곳에 앉아있는 시간은 주부가 된 이후로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있는 시간보다 더 충만하고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과제로 낼 사진으로 카페에 앉아서 책에 집중해 있는 누군가를 찍어보기로 했다.

나는 카페 안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침 일찍 부터 와서는 몇 가지 책들을 늘어놓고는 공부를 하는 학생도 보였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나왔는지 젊은 엄마 두 명이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 공간이지만 그들만의 세계가 만들어 져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보이지 않아 나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가지고 나온 책을 펴들고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잠시 후 제이슨 므라즈의 Lucky 라는 곡이 나왔을 때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몇 번의 문 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다시 실내를 돌아보는데 내 자리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며 손을 들고 인사해 보였고 나도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지만 잠깐 동안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자세히 그를 보았을 때 그제야 그가 김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리가 얼마큼 아는 체를 해야 하는 사이인지 생각하느라 잠시 자리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근처에 사시나봐요?"

그는 다정하게 웃으며 나의 맞은 자리로 와서 앉았고 나를 바라보며 내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 근처 사는데 여기 자주 오는 곳이라서요. 과제 때문에 나왔어요. 그런데 선생님도 근처 사시나요?" 그의 얼굴이 내 시선을 가득 채우자 나는 살짝 긴장이 되었지만 사회와의 단절로 인해 생긴 불안 장애려니 생각 되었다.

"저도 여기 자주 오는 곳이에요. 현영씨는 저를 처음 보시나 봐요. 저는 여기서 자주 현영씨를 봤는데..."

이렇게 말하고는 그는 가져온 그의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노래의 제목처럼 오늘은 럭키한 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를 전부터 알고 있었다니.

"그렇담 진작 알고 지냈다면 좋았을걸요."

"그러게요. 우연히 알게 된 분이 내 수업도 듣고 또 유명한 블로거라니 참 우연이네요."

"숙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누군가 카페에 앉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거든요. 이 도시에서 내게 가장 행복한 공간은 여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매번 현영씨를 여기서 볼 때마다 제대로 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하는 말은 봄바람처럼 마음의 얼어버린 감정들을 살살 녹일 것 만 같았다. 해처럼 밝게 빛나는 얼굴도 그랬고 따뜻한 그의 미소도 그랬다. 결정적으로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더욱 그랬다. 내가 그동안 이 사람을 모르고 지냈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페 밖에도 봄바람이 부는지 가로수의 잔가지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도 내 가슴에도 부는 봄바람 때문인지 나는 편곡된 Alone again 맞추어 상체를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다시 한모금의 음료를 더 마시고는 일어서려고 의자를 뒤로 빼었다.

"그럼, 다음 수업시간에 봐요. 그리고 있다가 메일로 사진 한 장 보내 줄게요. 확인해 봐요."

".. 그럼.."

나도 잠깐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가 다시 앉았다.

그는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잠시 책을 보는 척 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더 들어오지는 않았다. 흘끗 그를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는 카페주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둘은 아주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나는 책을 덮고 컴퓨터를 켜서는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았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혹시 어디를 갔다 왔을지 갑자기 궁금해 졌기 때문이다.

잠시 여기저기 웹 서핑을 하는 사이 그는 카페를 나간 모양이었다. 다시 사진을 찍어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가 앉았다 사라진 자리엔 다른 아가씨가 앉아 있었고 그가 했던 것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씩 들이켜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쪽으로 돌아가 그 뒷모습을 찍었다. 역광이었지만 실내도 충분히 밝았기 때문에 그녀는 커피를 마시는 하나의 그림자와 같은 모습으로 처리가 되었다. 두 팔꿈치를 탁자에 올려놓고 조금은 더운 듯 신발을 살짝 벗은 그 모습이 개울가에서 물을 마시며 쉬는 한 마리 사슴 같았다.

나는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집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나는 김선생이 뭔가 보내준다는 그 메일을 확인하였다. 그가 보내준 메일에는 사진이 한 장 첨부 되어있었는데 바로 내가 라운지어스에 앉아 책을 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오늘 내가 찍은 사진과 그가 나를 찍은 모습이 너무도 비슷해서 나도 이렇게 목이 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제발 외롭고 가련한 한 마리 짐승이라고는 생가하지 말아 줬으면 했다. 내가 정말은 그럴지언정 그렇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사진에는 카페 유리에 비친 그의 모습도 찍혀있었다. 늘 그렇게 앉아있었던 사람처럼...

 

며칠 뒤 일기 예보대로 봄비가 내렸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비 꽃이 떨어지자마자 가방을 싸들고 그 카페로 갔다. 창가에 앉아서 잠시 동안 봄비가 초록에 물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떨어지는 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랜만에 버지니아 울프를 읽었다. 빨려들어 갈듯 집중하는 중에 누군가가 내 옆에 앉는 것을 느꼈고 나는 잠시 가방을 치워주고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김선생이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서 내가 그랬듯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

내가 어색하게 아는 체를 하자 그는 그때처럼 손을 들어 보였다.

"기분 좋은 날씨죠?"

그의 물음에 나는 그냥 웃어보였다.

"저도 책이나 볼까 하구요."

그러고는 그는 하루키의 신간을 흔들어 보였다.

"..하루키군요."

가벼운 차림의 하늘색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을 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사이의 책갈피를 꺼내고 곧 독서를 시작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또 다른 Lucky였다. 잘생기고 젊은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책을 보는 행운은 버지니아 울프와 하루키가 만나는 일처럼 내게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미동도 않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묘한 기분을 누르고 조금은 담대해지기로 마음먹고는 집중해서 책을 읽으려 노력했고 Maroon5sunday morning에 맞추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 그가 나를 보며 웃었다.

왜요?‘ 하는 표정으로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웃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늘 이 음악에서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시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봤는데..하하 웃어서 죄송해요.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버릇이라서. 그건 그렇고 저를 정말 잘 아시는 것 같네요."

그는 책을 덮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여기 올 때마다 보였고, 그래서 저와 바이오리듬이 비슷하신 분인가 생각했었죠. 그러다가 책도 많이 읽고 노트북에 글도 쓰시는 것 같아서 작가인가 생각하기도 했고요."

"아하,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어서 조금 실망하셨겠어요."

"아뇨. 절대로. 그날 현영씨의 블로그를 방문하고는 감동 받았어요. 진심으로요. 보이는 것처럼 차분하고 진심이 담긴 글과 사진을 보고는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맞구나 생각했죠."

"그 정도 까진 아닌데."

"앞으로 여행 작가를 전문적으로 하셔도 잘 되실 것 같아요. 소질이 있다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끄러운지 창밖을 내다보았다.

거리에는 우산을 쓴 사람들이 오갔고 그들은 흘끗흘끗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어반자카파의 Just the two about us 가 실내를 끈적한 재즈풍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오를 달리는 태양이 무색하게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는 잠깐 동안 내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서로가 통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정서가 내게 와 닿는 기분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내가 알지 못했던 때의 그의 삶을 그려 보게 만들었다. 한적한 오솔길을 카메라를 메고 걷고 있던 그가 보였고, 그때의 그의 기분과 분위기가 나를 감싸고도는 듯했다.

나는 잠깐 그와 좋은 소울메이트라 부르는 그런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보는 내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는 그는 소울메이트이기에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런 그와 오랜 친구가 되기엔 내 방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그는 약속이 있다며 카페를 나섰다. 나는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고나니 어색함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 했다.

 

"오늘 카페에 갔는데 거기서 김선생님 만났어. 왜 나 수업 듣는 데 있잖아"

남편은 그날도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무래도 이러다간 그의 건강을 해칠 것만 같았다.

", 그랬어? 무슨 이야기 했는데?"

나는 그의 앞자리에서 턱을 괴고 앉아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고 있었다.

"..책이야기"

"참 그 사람도 책 냈다고 그랬지?"

남편은 우리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듯했다.

"응 꽤 많이 팔렸을 걸."

"히야. 당신도 잘 되면 좋겠다."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잠깐 베란다에 나가 바람을 쐬었다. 비가 내린 후라 바람은 깨끗하고 상쾌했다.

오랜만에 서울의 밤하늘에 별이 보였다. 별들은 손으로 문질러 보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게 반짝였다.

정신 차려 너.’

멀리 보이는 초승달을 보며 나를 자책하였다.

그리고 더는 설레지 않기.’

나는 멀리 떠있는 달에다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시늉도 해 보았다. 아직 밤공기가 찬 그 시간의 달은 아주 서늘하고 차가워 손가락이 베일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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