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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낮달

 

 

 

 

 그날 함께 밤을 지낸 여인은 가련한 여자였다.


 깡마른 모습이 어느 순간 선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함께 있는 내내 묘한 긴장감 마저 들었던 여자. 


몸 전체에서는 삶의 의미가 사라져 가는 듯 해 보였지만 가늘게 뜬 눈은 꺼질듯 꺼지지 않는 초승달의 그것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빛과 그림자의 흔적이었다. 어떤 뚜렷한 테두리를 가지지 않고 공간에 존재하는 잔상과도 같았다. 


이상하게 이런 그녀의 모습이 한순간에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 세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흔적 같아서 무심히 바라보다 애처로워 진 것이다.

 

 나는 이곳에 출장을 오면 항상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 


바람에 날려온 씨앗이 습관처럼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잠깐 머루르다 갈 때라도 나는 이곳에 다시 찾아들어야만 안심하고 쉴수가 있었다. 


지금의 회사를 다니며 출장을 다닌지 10여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같은 곳을 고집한다. 


변함없이 기다려 줄것들 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고 내 마음을 갉아 먹고 떠나버릴 것에는 마음을 주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먹고 자는 사소한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날도 춘천댐에 납품한 기계의 성능을 테스트하였다. 


어느정도 수위가 올랐을 때 제대로 경보가 울리는지 경고방송이 나가는지를 확인하고는 내일 마무리 할 요량으로 저녁시간에 맞추어 철수하였다.


사무실에 있는 두명의 직원이 시시한 농담을 하며 시계만 쳐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일을 진행 시킬수가 없었다. 


오래된 테스트용 노트북의 먼지를 떨어내고 전원을 껐다. 노트북과 마우스 그리고 컴퓨터 주변기기들을 가방에 섞이지 않게 챙겨 넣고나서 밖으로 나왔다. 


해가 아직 지지도 않았는데 달이 성급하게 떠있었다. 나 같은 이방인에게나 눈에 띌 낮달을 쳐다보며 아무 고민도 없이 나는 늘 가던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맥주가 유난히 맛이 있다든가 주인이 친절 하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10여년동안 그자리에 있었으며 주인 또한 내 존재의 무게를 재지 않는 사람이라 좋았다. 


단골이니 어쩌니하며 관계를 좁혀오지 않았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내 존재의 무게가 여기서는 늘 처음과 같았기에 나는 있는듯 없는듯 그 자체로 편안함을 느꼈다. 


또한 메뉴를 외우고 있어서 입구에 들어서며 주인에게 바로 주문을 할수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나는 맥주와 저녁을 대신한 안주를 모두 먹고 나올 때까지 조용히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거품을 머리에 인 500cc의 맥주와 얌전하게 생긴 닭꼬지 세개가 오늘 저녁의 전부였다. 


비우는것도 채우는 것도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이정도 양이면 된다고 생각하면 더이상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사무실에서 챙겨온 신문을 펴들고 뒤에서 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문자하나하나를 머리에 채워나가는 행위일 뿐이지 어떤 의미인지 까지는 알 필요가 없는 사건들 뿐이었다. 


맥주와 꼬지 3개를 모두 먹은 뒤에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실내는 한차례 사람들이 밀려왔다 빠져나간 뒤인듯이 이상한 정적이 내려 앉아있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나와 그녀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먼저는 그녀의 창백한 손이 눈에 들어왔고 그리고는 창백한 목덜미와 그녀의 얼굴까지, 옷을 걸치지 않았다면 형체를 분명히 파악할수 없을정도로 투명한 사람이었다. 


나 같은 이방인에게나 눈에 띄는 낮달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를 자세히 볼수 밖에 없었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다시 찾으려면 애를 먹어야 할것 같이 그녀는 가늘었다. 


내가 쳐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고 둘이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사라질것 같은 불안한 존재에게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도망간 엄마와 사라진 아빠 그리고 우정을 나누고 헤어진 뒤 연락이 두절되 버린 고아원의 친구들에게 마음이 다 뜯겨 나가고도 사랑할 여력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먼저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따라 나갔다. 그녀는 가게앞의 가로등 밑에 등을 기대고 서있었다. 


그리고 가게의 문여는 소리를 듣자 곧장 내쪽을 쳐다 보았다. 나는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가 나를 계속 쳐다보았기에 나는 그녀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길수록 그녀는 더욱 애처로워 보였고 어찌할수 없을정도로 여위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상하게 자꾸만 끌리게 되는 것이다.


마주 선 그녀의 눈빛이 빛났다. 울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 어디로 가세요? " 그녀는 숨소리 같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 로즈모텔로 갑니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얼음 호수 같은 차가운 내 눈에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그녀는 그곳을 아는지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 나는 그녀와 한걸음 정도 떨어져 걸으며 그녀에 대한 상상을 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 춘천호에 몸을 날릴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나와 함께 밤을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뭔지 나는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모텔앞에서는 내가 앞장을 섰고 그녀를 방으로 안내했다. 낮동안 정리가 된 방안은 내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녀를 작은 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 당신이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세요. 


저는 사랑이니 우정이니 그런 마음대로 변해 버리는 것들을 믿지 않습니다. 


부모도 친구들도 모두 내 가슴을 파먹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슴이 없는채로 어른이 되었지요. 내 눈을 보세요. 저는 지금도 차가워요.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게 당신에게 어떤 마음이 생겨 버렸는데 내일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지금은 당신이 좋아요."


나는 잠잠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가는 입술을 바라 보았다. 


여윈 모습과 다르게 붉고 건강한 입술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 다시 꽉 다물었다. 


그리고는 가디건 주머니 속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나에게 건내주었다. 


사진속에는 그녀와 어떤 건장한 남자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주 따뜻한 날의 사진이었다.


"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었는데 작년 이맘때 죽어 버렸어요. 그사람에 대한 마음을 끊고 살아보려고 했지만 끊어지지 않았어요. 


당신은 마음이 다 빼앗겨 비어버렸다지만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이 비워지지 않아 이렇게 산답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더이상 짜낼 눈물도 없어보일만큼 황폐해 보였다.


오후에 보았던 희미한 낮달은 이제 제모습을 보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도 어느새 현실감있게 드러나 있었다.


"당신이 죽지않고 살아있었으면 좋겠어요. 끊어내지 못하는 그 마음 모두 제가 가져가 드릴께요." 나는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 삶이 그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잡스러운것으로 마음을 채우지 않고 비워둔 것은 분명히 오늘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명이 다된 전구처럼 깜빡이고 있는 그녀를 다시 빛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손에 쥔 사진을 뒤집에 테이블어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샤워를 했다. 


나는 쏟아지는 물소리에 그녀가 흔적없이 씯겨내리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화장실에서 맨몸으로 나오는 그녀를 이불로 감싸 침대에 뉘였다. 어쩌면 나도 오늘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사라진다면 나도 온전히 그 마음을 도려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내마음이 전해졌는지 그녀는 불에 덴듯이 놀라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희미하게만 존재하던 그녀를 분명히 느낄때 알수없는 벅찬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 왔다. 


내 가슴을 도려내고 가버렸던 사람들이 웃는 낮으로 돌아와 내게서 가져가버린 마음을 돌려놓아주는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 왔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내 가슴속에서 잠이 드는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다 나도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땐 그녀는 없었다. 테이블위의 사진도 없었으며 그녀가 벋어놓은 옷들도 모두 없었다. 베개에 붙은 그녀의 머리카락 몇올과 체온만 남아있을뿐이었다.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것 같았다. 또다시 마음이 산산히 부서지고 녹아 내릴것만 같았다. 


나는 제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서려는 차에 주머니에 있는 쪽지를 발견하였다.


[이주현입니다. 저 살아있을께요.인연이 된다면 또 만날수 있겠죠.]


나는 뛰어나가 기차역쪽으로 차를 몰았다. 춘천호주위에는 안개가 낮게 깔려있었다.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안개속에 있더라도 나는 그녀를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무심히 그렇게 보았을 때 낮에 뜬달을 볼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발견되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춘천호가 끝나갈 무렵 안개속에 가느다란 선이 흔들거리는것이 보였다. 


나는 대번에 그녀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도 차에서 내리는 내 기척을 알아 챘는지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가로등 밑에서와는 다른 엺은 미소가 투명한 얼굴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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