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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는 달밤에 태어났다(1)

[나는 달밤에 태어났다]

 

 

 

달이 휘영청 밝은 7월의 밤에, 도암댁은 건너 마을 아들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는 천천히 재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반주로 한잔한 막걸리의 기운 때문에 오랜만에 배실 배실 웃음이 난다


도암댁의 머리위로 가까이 내려앉은 달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녀의 길을 밝혀 주었다


이 길을 지나다닌 지 오래지만 그녀는 꼭 이 재를 넘어갈 때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서 한번은 숨을 고르고 서야하는 것이다. 오늘따라 기분도 좋고 달이 밝아 자꾸만 눈이 하늘을 향했다


그녀는 하늘에 터질 듯이 부푼 달을 보고 있자니 불연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부푼 달은 처음이구먼. 내가 진구 뱄을 때 내 배도 저만큼 빵빵했것제


하문, 진구 걸마를 낳기 전에 배가 터져 죽지 않을까 매일 노심초사 했구먼.”


도암댁은 발그레해진 얼굴을 뒤로 젖히고는 재넘이가 불기 시작하는 언덕배기에 서서 잠시 달을 바라보았다


처음 아이를 가지고 열 달을 초초하게 기다리던 열여덟의 어린신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녀는 달 표면의 무늬가 마치 자신의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어린 생명인듯한 느낌이 들어 눈으로 달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달은 모성을 자극 시키는 어린 생명의 기운을 밤공기에 가득 메워 주는 듯 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참 요상한 밤이네.”


이제야 술기운이 조금 가시는지 한기가 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살랑 부는 바람에 개망초가 다리에 엉기기 시작했다.


진구 아부지, 말이지요, 진구 동생이라도 좀 만들어 주고 가지 그랬어요.

뭐가 급해서 그리 일찍 갔노 말이지요. 갸랑 둘이만 남아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는감요?”


그녀는 진구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먼저 하늘로 가버린 남편이 앞에 있기나 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잠깐 눈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눌러 닦아버리고 길섶에다 코를 팽하고 풀었다


혼자 아들을 키워내고, 노점에서 삶은 옥수수를 팔아 입에 풀칠하며 살던 때가 아직도 눈앞에 선했기 때문이다.


눈에 고인 눈물 덕에 밤하늘은 더욱 깨끗하고 투명해 보였다. 달은 껍질이 얇은 계란처럼 속의 것을 다 비춰내고 있었다.


우리 진구가 내일 새장가를 드니 앞으로 잘 살 일만 남은 거여. 암 그렇고말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손으로 코를 훔치고는 바위에다 슥 하고 문질렀다.


밝은 탓에 풀잎에 붙은 귀뚜라미가 뛰는 모습까지 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하며 자리를 잡고 막 울기 시작하는 귀뚜라미를 쫒아내 버린다.


진구가 착해 빠져서 그런 거지. 고년이 우리 진구 가슴에 못을 밖고 내뺀거여. 배워먹질 못한 나도 한눈 한번 안 팔고 이적지 혼자 살았는데 지 서방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어디서 서방질을 하고 내빼. ~~ .”


도암댁은 결혼한 지 이년이 못 되서 혼자가 된 아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아들은 도시에서 공장을 다녔고 같은 직장의 여공과 오년 전에 결혼을 했지만 공장이 부도가나서 일 년을 고향을 내려와 살았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며느리는 아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짐을 싸서 동네 건달인 달수 놈과 서울로 떠나버린 것이다


아들이 몇 달을 술에 절어 살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도 도암댁은 이 길을 걸어 아들네를 다녀왔었다


이 일이 있고는 벌써 3년이 지났다. 매일 밤 혼자 있는 아들에게 저녁을 지어주고 집으로 돌아가던 일이 힘에 부칠 때 마다 달을 보며 아들을 가졌을 때의 흥분과 기쁨을 기억해 내곤 했다.


어떻게 내가 낳아 논 아인데, , 진구는 이제 잘 살 일만 남은 거여.”


이 말을 하며 도암댁은 환하게 웃었다. 새 며느리는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아직 우리말을 하나도 못하는 필리핀 여자지만 먼 타지에서 절대 도망 갈 염려 없다고 생각하자 기쁘기 그지없었다.


내가 잘 가르치면 되야. 필리핀 며느리들이 그렇게 아를 잘 낳는다잖여. 저 만삭의 달처럼 말이지.”


그녀는 풍만해진 달이 곧 아이라도 낳을 듯한 며느리의 배처럼 보였다.


에구구. 오줌이나 싸고 싸게 들어가야 쓰겠다.”


그녀는 주위를 돌아볼 생각도 않고 몸빼 바지를 쑥 내리고는 바위 옆 풀숲에 엉덩이를 박고 오줌을 누었다


시원치 않게 흘러내리는 오줌소리가 고요한 산중에 잠자는 들짐승을 깨우는 것 같았다


푸드덕 거리며 부엉이가 날아갔고 찍찍 거리며 들쥐가 멀리 달아났다


올려다본 달 주위로 진통을 하는 듯 달무리가 끼기 시작했다. 달무리가 달을 감싸며 조았다 풀기를 반복하는 하는 것이다.


그녀는 오줌을 누다 쪼그려 앉은 채로 깜빡 잠이 들었다.


졸졸 거리는 오줌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다가 응애응애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녀는 졸다가 주저앉기 직전에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두어 번 엉덩이를 털고는 바지를 추켜올리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가려는 듯 바짓가랑이에 들러붙은 도둑풀을 털어내었다.


응애 응애~”


잠결인지 바람결인지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도암댁은 무심하게 두 손으로 뺨을 친 다음 걸음을 옮기려는데 아기의 울음소리는 계속 들리는 듯했다.


어디서 아가 우나?”


걸어온 길을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었고 어느새 주위는 달이 구름에 가려 어두워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구름 뒤의 달이 한줄기 빛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그 빛이 자신이 오줌을 누었던 그곳을 비추는 것을 알았다.


그 곳에서 미세하게 아기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흔들거리는 개망초를 젖혀 보았고 거기에는 겨우 숨이 붙어있는 아기가 아직 탯줄이 붙은 채로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뭔가 이상한 기운에 선뜻 아기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엄미 요상한 것, ..탯줄이 하늘로 섰네. 이것이 사람의 아여?”


그녀는 아직 핏기가 있는 아기를 조심스레 바위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탯줄은 달을 향해 뻗어있었다. 그녀는 달과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금방 해산한 여인 같이 달은 시들어 있었다.


배부른 여자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저 달이 아를 낳은 거여?”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금방 낳아놓은 사람의 아이였다.


사람의 아든, 달의 아든 모르것다. 그냥 있다간 아가 죽것네.”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달려갔고 빨리 탯줄을 자르고 소독 한 덕에 아이는 다행히 숨을 고르게 쉬면 잠이 들었다.

 

여기까지 내가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나의 출생애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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