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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는 달밤에 태어났다(2)




엄마도 아빠도 없던 내게 할머니는 너는 달이 낳았지.’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다


사실 학교들어가기 전까지 친구도 없었던 나는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엄마라고 불러보기도 하고 달이 대답 없이 반짝이기만 하더라도 나는 좋았다


하지만 학교를 가고, 아기는 그렇게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이 이야기기가 지어낸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달은 지구를 맴도는 위성. 물도 공기도 없는 별. 암스트롱이 찍은 발자국이 있는 곳. 아무도 살지 않는 무척 추운 곳. 이것이 내가 학교에서 배운 달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할머니가 탯줄이 섰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까지 어떻게 지어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필리핀 외숙모가 집을 나가고 삼촌이 농약을 먹고 죽은 후로 할머니도 정신이 오락가락 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의문마저 묻어 두었다


그래서 어렴풋이 내가 바람고개에서 주워온 아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할머니는 정신을 놓을 때는 베개를 업고 진구 삼촌을 재우고 달래는 시늉을 하였다


잠시라도 정신이 들면 불쌍한 내 새끼라며 나를 안고 울곤 하였다.


그 당시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서울로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필리핀 외숙모처럼 나도 떠나야겠다고


할머니가 가끔 아무도 없는 삼촌네 집에 갔다가 한밤에 집에 들어와도 나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바람고개에서 넘어져 몸져누웠어도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 짐을 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저것 가방에 쑤셔 넣었고 지우고 싶은 기억은 찢고 버렸다. 하나 둘 모든 것을 정리해 나갔다


할머니는 이제 아기처럼 잠만 잤고 가끔씩 깨었다


여러 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녀의 몸은 해골같이 말라있었다


어느 날 밤늦게 나는 방문을 열고 습관처럼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이야기 해준 나를 낳았다는 만삭의 달이 뜬 날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그저 하늘에 떠있는 차가운 돌덩이일 뿐이지 내가 나온 구멍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미옥아. 내 새끼 이 할미가 미안했다.”

언제 할머니가 깼는지 뒤에서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날이었지. 니 엄마가 짐을 싸서 도망가고 진구 혼자서 너를 키웠단다


그러다가 필리핀 외숙모하고 다시 결혼을 하게 된거야.


그래서 진구와 의논해서 너를 내가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뭐에 쓰였는지 그날 밤 너를 데려오다 도망간 늬 엄마처럼 웃는 너를 보고는 바람고개에다 너를 내버리고 내려 온 거야


아직 말도 못하는 너를 말이지. 내가 뭣에 쓰였지. 집에 와서 찬물에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내가 죽일 년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고는 바로 다시 너를 데리러 갔단다. 하지만 거기에는 니가 없었단다


어디로 기어 가버린 건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 아이고 미옥아 하고 아무리 불러도 들짐승이 물어갔는지 흔적도 없더라


나는 그 자리서 펑펑 울었다. 아이고 달님 우리 미옥이 좀 찾아주시오 하고 말이지


내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날 달이 그렇게 가깝게 내려앉더라


그리고는 주위가 환해지는데 어디서 엄마 엄마 하는 소리가 들렸어


니가 기다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던 걸 달님이 찾아 준거야. 피투성이가 된 너는 울지도 않고 나무를 붙들고 서서는 큰 달을 보고 손을 뻗어 엄마 엄마라고 말을 한거야


한 번도 가르쳐 준 말이 아닌데 너는 달을 보고 엄마라고 했다.


미옥아 진작 다 말해주지 못해서 할미가 미안했다. 하지만 이 할미가 죽어서 옆에 아무도 없어도 항상 달님이 니를 지켜준다는 걸 생각혀


이건 참말이지. 암 그렇고말고.”


할머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는 숨을 거두었다


나는 눈물 한 방울을 손끝으로 찍어 지우고는 할머니의 얼굴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할머니는 진구 삼촌, 아니 아빠 옆에 묻어주었다. 그리고는 나는 삼촌의 집도 팔고 할머니의 집도 팔아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때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모두들 떠나버린 시골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다 나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그 낡은 사진 속의 엄마는 달처럼 동글동글한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나를 안고 밝게 웃고 있었고 사진속의 나도 꼭 닮은 모습으로 밝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지갑 속에 구겨 넣었다.


대전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두어 시간이 지났고 출발한지는 거의 7시간 지나간다


이제 서야 동서울 톨게이트가 보이고 길게 늘어서서 서울로 들어가려는 차들 뒤에 버스가 멈추어 섰다


7시가 되자 순식간에 해가 기울고 언제 떴는지 달이 떠있다


도암에서부터 나를 좆아 온 것이라 생각되었다. 정말로 달이 나를 지켜줄까 하고 생각했다


비록 할머니가 지어낸 이야기일지라도 나는 정말로 그날 밤 달의 딸로 다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차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고 드디어 동서울 톨게이트를 통과 하였다


그 속도에 맞추어 따스한 빛을 내며 달은 천천히 버스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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