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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평범한 김양의 왕자 사냥법

 

 

 

 

 

 

[사랑에 대한 의심]

 

나는 나의 20대에 첫사랑에 실패한 이후로 내 사랑의 실패의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해 보았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사랑이 실패하고 난 뒤 남은 것은 추억과 상처뿐이었기 때문이다. 함께한 시간들이 그가 떠난 뒤 송두리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아픈 가슴을 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서관을 찾아간 것이다. 일단은 상처 난 마음에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일 전화벨이 울리는 환청과 나도 모르게 뚝뚝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땐 꼭 죽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릴적 사랑은 철없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었다. 내가 다시 살아야 하고 다시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기를 바라며 열심히 책을 읽었다.

 

나는 왜 첫사랑에 실패했는가?

 

나의 첫사랑 그는 그 당시 내가 생각하기에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뭐가 대단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대단히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머리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평범했는데 말이다. 나의 자존감 문제였다.

그가 얼마나 대단하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가치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사랑을 할 때는 대통령 아들이 온다 해도 "그게 뭐 어떻다고요?" "뭐가 대단해서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가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의 끝까지 치달아 사랑했던 것이다. 이런 사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첫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이렇게 하면 금방 지쳐 버린다는 것을.... 나보다 무언가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얼마나 집착하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집착이 의심을 낳았다. 나는 항상 '그가 나 같은 사람을 정말 좋아할까?' '그는 나 말고 더 예쁜 애를 만나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친구를 더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날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젠간 떠나겠지?' 하는 생각들이 내 뇌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 집착하게 되고 전화가 뜸해지거나 연락이 안 될 때엔 초조해 하게 되었고 뭐했는지 정말인지 자꾸 물어보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그것까지도 잘 참아주었다.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내 입으로 "좋은 사람 있으면 가도 돼" 라고 말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울고 있고. 그때 나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와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자존감은 밑바닥을 기고 있었다. 나는 그가 없으면 안 되는데 그는 내가 없어도 되겠지? 흑흑흑. 40년대 신파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인데..그땐 정말 진지했었다.

그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내가 멀리 취직하면서 부터였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의심이 더 커져갔고 급기야 내가 놔주면 더 좋은 사람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였다. 이런 걸 착한여자 컴플렉스라고 하더라.

 

어쨋든 그와 그렇게 헤어지고 진지하게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 정리도 해보았다.

 

1. 자신감을 가져라

그것이 안된다면 아예 편한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2. 자신의 사랑스런 모습을 한번이라도 의심하지 마라.

당신은 무조건 아름다운 여자다.

 

3. , 학벌, 집안 등에 꿀리지 마라.

그도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자말자.

(학벌 집안 얼굴에 기죽지 말고, 욕심을 버리라는 뜻)

 

4. 나니까 당신을 받아주는 것이라고 상대를 세뇌하라.

혹은 나 같은 사람 다시 못 만날 거라고도 자주 말하라

그리고 절대 상대는 바람을 피울 능력이 안 됨을 스스로에게 주입시켜라.

(너무 칭찬하지 말라는 뜻, 혹은 바람피울까 의심하지 말라는 뜻도됨.)

 

5. 그가 한눈 팔 땐 쿨 하라. 상관없다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라.

바람피는 내가 더 손해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혹은 당신이 세다고 생각한다.

 

6. 상대를 의지하려 하지마라.

그러면 상대가 그대를 의지하게 된다. 그렇게까지 되지 않더라도 서로 자유로워진다.

 

위의 정리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 것이다. 나는 저 방법으로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해서 지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정말 이성적인 사랑이었다. 마음에 든다.

처음 그가 먼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조금 뚱뚱하긴 했지만... 처음 그를 봤을 땐 습관처럼 내가 초라해 보였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를 나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뭘 봐서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내가 그를 만나는데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가령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텐데..'하는 독이 되는 생각 말이다..

 

나는 오히려 내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거의 세뇌수준으로 나에게 반복 교육을 시켰다. 그러다 보니 가끔 "나 같은 여자 어디서 못 만나" "나니까 너랑 만나는 거야"는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불쑥불쑥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가라면 가라지..자기만 손해지 뭐" 하면서 나의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그도 그렇게 생각하지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처럼 그렇게 많이 전화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 시간에 나에게 집중했다. 내가 할일하고, "응 바빴어" 라고 먼저 말하는 통쾌함이란..

'나 너 생각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라는 느낌이 얼마나 나를 능력 있게 보이는지 모른다. 남자들도 다 같은 동물인지라 그런 능력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예전처럼 남자를 너무 많이 의지 하지 않기로 했다. 가령 '이것 좀 해줘' 라고 쉽게 말하던 버릇을 고치고 '내가 할께' 라고 먼저 말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습관이 되니 오히려 남자가 귀찮아지기까지 했다.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란 자유를 의미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약간 억지 우월감을 가지고 시작한 사랑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 독립적이고 동등한 인간의 사랑으로 바뀌어갔다. 사랑이 이렇게 편하고 부드러운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20대의 미숙한 생각이 있을 때의 거친 사랑도 좋다. 인생의 경험을 쌓게 해준다. 하지만 진정 오래가고 함께 갈 수 있는 사랑이란 자신을 더 사랑하고 높은 자존감위에서 얻어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도 상대도 절대로 의심하지 마라 의심은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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