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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느새 엄마와 닮아 있는 나

어느새 엄마와 닮아 있는 나

 

-거북이-

 

4개월 전 나는 임신을 하였고 새로운 삶이라는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드디어 나도 엄마가 되는 건가? 항상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엄마라는 역할을 드디어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상상속의 나는 자상한 엄마, 사랑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런 엄마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나는 부지런히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도 하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부모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약점을 닮지 않은 아이가 나오길 바라게 되었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위기는 속이 부대끼고 아파오면서 눈앞으로 다가왔다. 입덧이 끝나면서 위염이 재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잘 먹지를 못하고 살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기운이 없어졌고 모든 것에 의욕마저 사라져 갔다.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러다 눈물을 뚝뚝 흘리기 까지 하였다. 병원을 갈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이라는 것이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자 마음마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릴 때가 생각이 났다. 학교에서 집에 들어서면 집안을 가득 매운 파스 냄새와 이름 모를 역한 약냄새들, 나는 그 냄새가 싫어서 아침부터 늦게 까지 도서관에 가 있곤 하였다.

밥 때가 지나도 밥 냄새가 나지 않던 부엌, 벽만 바라보고 등지고 누워 있는 엄마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고요한 밤이면 안방에서는 훌쩍 훌쩍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나는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닫아 버렸다. 이렇게 나의 대부분의 유년 시절과 사춘기 시절에 엄마는 우리에게 등과 눈물을 가장 많이 보여주셨던 것이다. 따뜻하거나 자상한 것은 바랄 수도 없었고 우리는 엄마에게 귀찮은 존재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그렇듯 자상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던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언제나 아프고 우울한 엄마를 보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었고, 결혼을 하면서 집에서 멀리 떠나와 엄마의 영향권을 벋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보란 듯이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도 하였고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내 모습에서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몸이 아프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행동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내속에 있었다. 배속의 아이를 생각하기보다 내 몸 아픈 것이 먼저여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는 엄마가 내 안에도 살아 있었다.

 

오늘 오전엔 급기야 우울증 증상까지 찾아와 도저히 불안을 이길 수 없게 되어 엄마에게 전화를 하였다.

엄마, 나 몸이 많이 안 좋은데 집에 내려가도 돼?”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의외로 엄마는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속으로는 무척 귀찮아 할 것이라고 지레 추측해 보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나는 눈물이 났다. 엄마 앞에서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다짐 한 것을 근 20년 만에 깨버린 것이다.엄마는 그렇게 안 좋으면 와야지 어쩌겠어. 잘 정리하고 조심해서 내려와.” 하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알았다고 이야기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엄마를 잘못만나 행복하지 못했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바보 같아 보였다. 엄마는 그때 정말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엄마는 어떠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불행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같은 사람이 있고, 그리고 다른 사람도 있고.... 그래도 모두 같은 엄마라는 것을 인정하고 무덤덤하게 받아 들였다면 나는 지금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조금은 이해되면서 마음속의 응어리도 조금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물도 멈추었고, 불안한 마음도 가셨다.

 

나도 이제 엄마가 된다.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는 꼭 엄마 같이 되어버린다는 것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조금은 눈물이 많은 엄마, 걱정이 많은 엄마, 몸이 약한 엄마, 하지만 아가들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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