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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늘을 나는 꿈

[하늘을 나는 꿈]

 

 

어릴 적 나는 하늘을 나는 것을 동경했다. 6살인지 7살 때 슈퍼맨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며 어떤 사람은 날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을 가졌던 것이다. 그때는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나 보다 한두 살 어린 아이에서부터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아이 까지 정신 연령이 비슷한 아이들이 골목에 모이게 되면 마지막엔 꼭 어떻게 하면 날수 있을지 진지하게 토론을 하곤 하였다. 개중 조금 똑똑한 아이는 라이트 형제를 들먹이며 비행기 엔진을 달거나 비행기 날개를 달면 날수 있을 거라 했다. 조금 떨어지는 아이들은 큰 망토를 두르면 된다느니 높은 곳에서 빨리 날개 짓을 하면 날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했다. 나는 전자도 후자도 속하지 않는 들은 대로 해보는 성격으로 아이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보자기를 구해 어깨에 걸치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나름 굉장한 속도로 어깨를 파닥거려서 새처럼 날아보고자 해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열심인 나를 보며 이런 저런 주문을 하였다.

야 발을 뒤로 쭉 뻗어봐.”

바람이 세게 불 때 그때 뛰는 거야 알았지?”

더 높이 옥상에서 뛰어 보면........”

“...........”

이 말이 끝나고 아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나는 이미 옥상에 올라가 바람의 세기를 확인 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발을 뒤로 쭉 뻗는 연습도 하였다.

옥상 끝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렇게 말이 많던 아이들이 밑에서 침만 삼키며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내려와, 그러다 다친다.” 똑똑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그도 속으로는 정말 날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때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혹시 내가 날지 못하더라도 슈퍼맨이 날아와 나를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람의 세기도 적당했고 나는 열심히 날갯짓을 했지만 옥상에서 뛰어 내린 후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에 누워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났고 무슨 말을 할 새도 없이 엄마가 울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반성하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만약 울지 않고 무슨 일이 없었니?’하고 물어 봤다면 나는 내가 진짜 날았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나는 무모할지언정 허술하진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거의 바닥에 다 왔을 때 (1~2초도 안 되는 시간 이었지만) 나의 도전은 실패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내 몸이 최소한 1초는 공중에 떠있었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듯이 나는 잠깐 떠있었던 것이다. 슈퍼맨이 왔다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나 같은 무모한 꼬맹이를 구하러 올만큼 한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 덕분에 나는 많이 다치지 않고 퇴원을 하게 되었지만 그날 이후 엄마의 감시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에서 지내야만 했다. 방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책상에서 뛰어 내려도 보고 침대에서 뛰어보기도 했지만 그날과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소리 와 함께 방으로 뛰어온 엄마에게 혼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꾸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는 방법을 잘 몰라서 하늘에서 버둥거리기만 하다가 잠이 깼지만 점점 익숙해 져서 어디든 마음껏 날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꿈이라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날아가기도 하고 유유히 강을 따라서 날기도 하였다. 꿈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날아다니기도 하였으며 전쟁터에서 쏟아지는 총알을 가르며 날아다니기도 하였다. 어찌나 꿈이 생생하던지 항상 자고 일어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으며 발목은 힘을 많이 줘서인지 저려왔다.

잠에서 깨서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우리 수철이가 키가 많이 크려나 보네.”하고 웃으며 대답하셨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나는 드디어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거의 다 같은 학교로 배정받았고 우리는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면서 축구며 술래잡기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놀다 집에 들어오곤 하였다. 매일 매일 이렇게 지칠 때 까지 놀다 집에 들어가면 숙제할 정신도 없이 골아 떨어졌다. 그래서 인지 학교를 다니면서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런 꿈은 거의 꾸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과 학교에서 장난치는 꿈을 꾸거나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나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가 하늘을 날았을지도 모른다는 지난 일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늦게 들어 오셔선 자는 나를 깨우고 얼굴을 비비신다.

아이구 내 새끼, 그때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었으면 어쩔 뻔 했어. 다시는 그러지 마라.” 나는 선잠을 깨서는 ..알았어요 아빠. 나 졸리다. 그만해라고 눈도 뜨지 않고 말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맞어 그런 일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점점 아빠의 목소리는 멀어져 갔고 그리고는 아주 오랜만에 나는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꿈에서 나는 동네 곳곳을 날아 다녔다. 발 아래로 우리 집 옥상이 보였고 가로등을 따라 불이 켜있는 골목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구름 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는 차가 다니는 큰 도로를 따라 날았다. 밤바람은 시원했고 형광색 야경도 아름다웠다. 천천히 하늘을 날다 멀리 바다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에 속력을 내어서 날아보려는데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내 발목을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순간 겁이 나서 고개를 돌려 발을 보니 누군가의 손이 내 발목을 꽉 붙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몸부림을 치며 그 손을 떼어 버리려고 했지만 그 손은 더 꽉 죄어 왔다. 너무나 무서워서 소리라도 질러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나는 그날 옥상에서 뛰어 내릴 때처럼 정신을 더 차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그 손을 노려보았다. 점점 안개가 걷히듯이 그 손의 주인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실루엣 같던 그 사람은 먼저 눈이 드러나고 입이 들어나고 서서히 얼굴이 선명하게 들어났다.

그 사람은 여자였고 나의 엄마였다. 엄마의 눈과 내 눈이 마주 쳤을 때 나는 놀라 잠에서 깨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꿈속에 있던 엄마가 내방에서 놀란 얼굴을 하고 내 발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왜 엄마가 여기 있어? 그리고 뭐하는 거야? 왜 내 발을...”

“........”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나 꿈속에서 엄마를 봤는데...엄마가 내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어...근데 깨서 보니까 엄마가 지금 그러고 있잖아.”

엄마는 붙잡았던 내 다리를 슬그머니 놓으며 미안한 눈빛을 하며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옥상에서 뛰어내린 이후 어느 날 밤에 엄마가 내방에 들어왔다 잠결에 방을 날고 있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한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저러다 또 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까 싶어서 밤마다 내방에 와서는 공중을 떠다니는 내 다리를 붙들고는 내가 꿈에서 깰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점점 커가고 몸무게도 늘기 시작하면서 잘 날지는 못하더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부터는 그런 횟수도 줄었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나는 법을 잊겠지 싶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다칠까봐 그랬다고 했지만 점점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겁이 났다고 했다. 행여나 내가 슈퍼맨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 남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아이로 내가 곁에 있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땐 엄마의 이야기가 다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단지 내가 날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었구나 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날수 없을 거라는 엄마의 말에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어른의 눈에는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위축시켰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 않았다. 다시 옥상에서 뛰어내릴 용기도 없어졌다. 되돌릴 수 없이 나는 그저 평범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마저도 이제는 서서히 잊히고 있다.

나는 매일 학교를 가고 학원을 다니고 결국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엄마의 뜻대로 평범하게 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슈퍼맨은 나는 법을 잊어버린 채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돈을 벌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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