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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류 그 마지막은

[인류 그 마지막은]

 

 

 

지금은 서기 3014. 인류는 2000년 이후 가파른 곡선으로 발전하고.. 발전하고..또 발전해서 세계적으로 거대한 물질문명을 이룩하였다. 신약의 개발로 스스로 생명을 연장 시켜나갔으며, 기계의 발달로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의 생산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류는 지구를 떠나 달 뿐 아니라 화성에까지 도시를 건설했고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중이다.

 

대리석의 100배의 강도를 가진 화성의 H16 암석으로 만들어진 강남 최고의 아파트, 거실의 스크린 모니터에서는 극한의 직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화성 안티노 계곡에서 H16을 캐고 있는 노동자들의 하루를 방영해주고 있었다. H16이 어떤 지진에도 비틀어지거나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고 나서 대기업들이 너나없이 우주채굴사업에 뛰어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로봇이 하지만 자기장이 센 깊은 계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말애씨는 오늘이 이곳으로의 마지막 출근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가있는 안티노 계곡을 보자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소파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던 올해로 120살이나 된 주인 할머니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한씨, 오늘이 마지막이지요?”

..예 사모님.”

우리가 오랜 정이 있어서 아쉽지만은 아들이 워낙 성화라서. 그 하우스로제인가 하는 게 그렇게 성능이 좋아졌다면서, 이번에는 꼭 써보라잖아.”

하우스로제는 이번에 SS전자에서 만든 가사도우미 로봇이다.

집안일 뿐 아니라 간단한 의료행위까지 해주는 이 로봇은 상상도 못할 만큼 굉장히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물건들 일색인 부잣집에서는 가사도우미에 의해 물건을 잃어버릴 염려를 없애주고, 행여 앙심을 품은 가사도우미에 의해 일어나는 사고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했다.

요전에 친구네 갔다가 봤는데 사람처럼 말도 하잖아. 꼭 사람 같더라고. 세상 참 좋아졌지..그렇지 않아?”

한말애씨는 사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시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610.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꼭 로젠가 뭔가를 보고 가라는 성화에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징하고 벨이 울렸다. 말애씨는 거실스크린에 큰 짐을 맨 배달원이 외각 게이트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보안 해제버튼을 눌러주었다. 그들이 외각의 게이트를 열고 들어와 이 단지까지 걸어오는 모습이 거실의 스크린에 소상히 다 비치었다.

한참 뒤 다시 한 번 더 벨이 울렸다. 그녀는 아래 현관문을 열어주고는 앞치마를 벋고 자신의 가방을 들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안으로 들어온 설치기사들은 뚝딱뚝딱 뭔가를 하더니 이내 그것을 동작 시켰다. 로제는 환하게 웃으며 주인을 인식하고는 90도 각도로 인사한다. 그리고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하였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 곳을 나왔다. 맨들 맨들한 H16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었다.

마당을 나선 그녀의 머리 위로 카메라가 따라 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방금 전 자신이 나온 그 거실에 상영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어깨를 펴고, 턱을 당겨 당당하게 걸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녀는 H16으로 둘러 쳐진 외각 벽을 따라 게이트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그녀는 출입증을 반납하고 손목의 칩을 인식한 후 무겁게 움직인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게이트 밖, 갑자기 엄습한 쾌쾌하고 음산한 기운에 그녀는 소름이 돋았다. 한 달에 한번일지라도 자주 드나들었던 바깥이지만 40년을 넘게 게이트 안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말애씨로서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광경이었다. 먼지가 날리는 거리, 문을 걸어 잠근 식당들... 어슬렁 거리는 감찰 견, 그리고 그녀는 게이트 외벽을 도는 경찰들을 뒤로하고 그녀의 진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다와 갈수록 더 황폐해지는 거리 풍경을 보며 그녀는 40년 전의 대규모 폭동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9살 이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좀 전에 나온 E유통의 사모님 댁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기로 되어있었다. 같이 졸업한 친구 중에 그나마 좋은 곳에 취직한 그녀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당시 사회전반에 로봇으로 인력 대체가 가속화 되면서, 더 이상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정치가가 사회의 판을 짜고 대기업들이 유통의 판을 짜고 시장을 장악하면서 구조 속에서 옴짝 달싹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남자들은 대체로 로봇을 관리하는 일을 했지만 사람이 많이 몰렸기 때문에 월급은 겨우 한 달 생활할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다행히 그때는 부자들의 아이를 돌봐주고 잡일을 하는 일이 로봇으로 대체 되지 못했던 때라 학교 성적이 좋은 여자아이들은 그런 곳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E유통의 하청 농작물 생산지에서 하루 생활도 빠듯한 일당을 받고 일해야 했다. 그렇게라도 먹고만 산다면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수입해 먹던 쌀값의 폭등으로 생계를 잇기 힘들어지자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기세 좋게 일어났지만 로봇군대와 로봇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하루이상 버티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위협을 느낀 정부는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벽을 쌓고 부촌과 빈촌을 나누어 버렸다. 빈촌의 사람들은 세금을 낼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국민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부촌의 사람들은 의료 혜택으로 100세 넘게 살지만 그렇지 못한 빈촌의 사람들은 70세를 넘기기가 어려웠고 그나마 고된 노동으로 50을 넘기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40년이 지나고 그녀가 살던 마을은 더욱더 황폐해져만 가고, 거리의 벤치에는 잘 먹지 못해 힘없고 활기 없는 아이들이 늘어만 갔다.

 

말 그대로 그녀가 사는 곳은 아비규환이었다.

그녀가 드디어 골목 끝의 집에 다다랐을 때 20살이 된 딸이 집에 있었다. 그녀는 엄마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20살이 된 그녀의 딸인 한나는 일자리가 없어 농장에라도 가야 할 판이었지만 말애씨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알기 때문에 차마 그녀를 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맏인 민수가 시급이 더 센 우주채굴장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한나는 집에서 동생을 돌보게 되었다. 말애씨도 다행히 사모님으로부터 다른 일을 소개 받았다. 집근처의 E유통 디테일 점에서 캐셔 기계를 관리하게 해주신 것이다. 그렇게라도 일을 할 수 있어 민수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별일 없었어? 민수한테서는 연락 없었어?”

, 별일 없겠죠.”

며칠째 연락이 않되니 걱정이네. 오늘 오전에 사모님댁에서 영상을 봤는데 그 일이 그렇게 힘들다더라. 다치는 것은 부지기수고 죽는 사람도 허다하데.”

어쩔수 없잖아...먹고 살려면...”

..그래. 민철이는?”

몰라.. 질 떨어지는 애들이랑 어울려 어디 나갔어.”

걔는 민수처럼 성실하기라도 해야 될텐데...”

그녀는 요즘들어 슬램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민철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이곳은 아이들이 마약을 하고 사람을 죽여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살아남기에 급급한 이곳에서 교육이 제대로 되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부촌의 아이들이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고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고 권력과 재력을 독점한 이후로 빈촌의 아이들에게는 기회라는 단어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그들은 늘 가난하고 늘 배고팠다. 그래서 말애씨는 민수보다 당장 내일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더 걱정이 되는 일이었다.

해가 뉘엇 뉘엇 저물어 갔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다. 점점 그림자가 길어져 가지만 집안의 어느 누구도 불을 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집에는 어떠한 전자 기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제일 흔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 로봇이며 기계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집에는 쇠붙이하나 발견하기 어려웠다. 모든 자원은 부촌으로 집중되어있는 것이다. 그녀는 빨래를 정리한 후 조리된 인스턴트 수프와 이스트가 가득 든 빵으로 딸과 식사를 했다. 막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으며 밖은 어두워져 왔다. 그녀의 집은 전기와 가스요금이 폭등한 이후로 아예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조리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커튼을 걷고 달빛에 시계를 비춰보며 민철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그녀는 근처 디테일로 출근을 하였다. 아침에 작은 녀석의 방에 민철이가 창백한 얼굴로 옷을 입은 채 쓰러져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집을 나섰다. 작년부터 정부에서는 밀론이라는 저가 신종 마약을 의료보조품으로 일반에게 허가 하면서 빈촌의 어른이고 아이 할 것 없이 약에 취해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들이 약에 손대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 커버린 아이를 통제할 길이 없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빈속으로 걸어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미래가 없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더욱 힘들었다.

매장에 도착한 그녀는 손목의 칩을 인식시키자 통행허가가 떨어졌다. 이미 위에서 조치가 취해진 모양이었다. 부촌의 대형 매장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전국을 독점하고 있는 E유통의 매장은 깨끗했다. 이미 청소로봇이 아침 준비를 마친 듯했다. 그녀는 계산대의 기계들의 전원을 켜고 자신은 반품대로 향했다. 매장이 오픈 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고 들어왔다. 70%이상 다운된 가격으로 판매되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들을 조금이라도 신선하게 구입하려고 아침 일찍 모두들 장을 보는 것이다. 유통이 독점되면서 식료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게다가 E유통은 생산까지 독점하면서 생산량을 조절했기 때문에 먹을거리는 사람 수에 턱없이 부족했다. 저가의 식료품을 대량 수입하던 시절 농가들이 파산한 틈을 타 E유통과 대기업들은 국내의 농지를 다 사들인 것이었다. 도시 임금 노동자로 전락한 그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았고 농지를 뺏긴 그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강원도 산간에 있던 배추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싼 중국산 배추가 밀고 들어오면서 파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농지를 판 밑천으로 도시 빈민촌에 나와 살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살던 고향은 이제 숲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부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는 산소공장이 되었다. 국가가 국내의 웬만한 산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으며 지정된 몇 개의 회사들이 허가를 맡고 공기를 팔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부촌에서 일하면서 그나마 좋았던 점은 어릴 적 고향에서 맡았던 공기냄새를 거기서는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점심도 거른 채 10시간을 꼬박 서있다 시급 1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 가기 전에 마트에서 내일 먹을 것을 사고 97천원을 지불했다. 교통비도 되지 않는 3000원을 지갑에 고이 접어 넣고는 인스턴트 국과 유통기한이 다된 냉동밥 1kg을 사서는 아픈 다리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나마 하루 밥벌이는 되는 직장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남은 돈...그녀는 화성에 가있는 민수가 보내준 돈과 함께 꼬박꼬박 저축해 두었는데 그녀의 마지막 희망 같은 거였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집이라 항상 반쯤 열린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녀는 집안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어두운 거실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는 그녀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 주저앉고 말았고 큰 손을 가진 남자는 그녀의 손목의 인식 칩 위에 묵직한 돌을 잽싸게 달아주었다. 그러고는 그 남자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머니 저예요. 민수.”

그녀는 2년 전에 집을 떠난 후 처음 보는 민수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어떻게 돌아온거니?”

그녀는 민수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아들의 눈을 손으로 더듬었다.

차차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어머니, 제가 채워드린 그 돌 손에서 절대 데시면 안돼요. 손목의 인식 칩에 목소리를 도청 기능이 있어요. 그 돌이 칩의 기능을 멈추게 해줘요.”

그녀는 놀라 손목에 묵인 돌을 바라보았다. 평생 본적이 없는 빨간색의 돌이었다.

그래...알았다..그런데 자세히 설명을 해다오. 어떻게 돌아온 것이며, 이것은 도대체 뭔지.”

..그럴게요. 근데 저 무척 배가 고파요. 어머니.”

민수는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재빨리 손에든 식품을 식탁에 펼치고는 위층에 있을 그녀의 딸을 불렀다.

한나는 오빠가 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무덤덤했고, 그녀의 손목에도 빨간 그 돌이 묶여있었다. 그녀는 거친 일로 많이 야위어있는 아들의 몸을 밥 먹는 내내 쓰다듬었다.

어머니, 이 빨간 돌 말인데요. 제가 화성채굴장에서 발견한 거예요. 하도 신기해서 손에 쥐고 있었는데 주위의 로봇들이 저를 인식하지 못하더라구요. 화성에서는 몇 명의 감독관 외에는 모두 로봇들이거든요. 그래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어요. ”

말애씨는 다시 손목의 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빨갛게 반짝이는 돌은 흡사 태양을 연상시켰다. 아들은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언젠가는 들통이 나겠지만 한동안은 저는 화성에 있는 걸로 돼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도 한나도 계속 집안에 있는 것으로 기록 될 거구요.”

신기하구나 얘야.”

오빠 그런데 이걸 어디다 써먹어? 팔수도 없고.”

그래서 나도 곰곰이 생각해 봤어.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화성에 있을 때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 중에서 이상한 아저씨가 있었거든. 돈을 모아서 씨를 사서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말이지. 통제구역만 잘 통과하면 강원도 영월에 큰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는 위로는 해가 들어오고 밑으로는 지하수가 흘러 농사 지으며 숨어 살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거야.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고 하나봐. 그런데 씨를 구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는 손목의 칩 때문에 감시당하는 입장이라 어떻게 하기가 어렵잖아. 그런데 내가 이 돌을 발견한거야. 이 돌을 그 아저씨께 보여줬어. 그리고 아저씨가 필요한 만큼 그리고 내가 필요한 만큼 나누어서 함께 돌아 왔지.”

말애씨와 한나는 서로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이미 밖이 어두워 서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달이 머리 꼭대기에 달린 고요한 밤이었다.

하지만 이 돌이 벗겨져 위치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끝장인거잖아.”

한나가 차분하게 이야기 했다.

그렇지. 하지만 이렇게 노예처럼 계속 살아가느니 한번은 도전해 볼만 하잖아. 우리에게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우리에게 자유조차도 없다는 것을...”

민수의 말이 끝나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 때 위층에서 이제 일어났는지 민철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그가 식탁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민철이의 손목에도 빨간 돌이 메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말애씨는 긴장을 풀었다.

민철아 형 왔다. 여기 와 앉아 봐.”

아직 약기운이 있는지 그는 살짝 비틀대며 걸어왔다. 그는 식탁에 앉으며 이야기했다.

나도 위에서 다 들었어. 난 찬성이야. 여기를 벋어나 살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

어떤 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민철이의 대답에 말애씨는 당황했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뭐지?”

말애씨는 민수에게 조심히 물었다.

며칠 뒤에 그분과 만나기로 했어요. 그분이 농사를 지을 씨를 구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바로 떠날 거예요. 당분간 어머니는 아무 일 없듯이 계속 출근하시고요. 떠나기 전날 사직서를 내시면 되는 겁니다.”

와우..형 멋져.”

어느새 모두들 들뜨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며칠을 출퇴근을 했고, 2,3일 뒤 그 아저씨라는 분이 12시가 지나고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 제가 말씀드린 김동국 아저씨예요.”

말애씨와 그녀의 가족은 다시 부엌의 식탁에 김씨와 함께 모여 앉았다. 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본 후에 조용히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끄집어내었다. 거기에는 한줌의 볍씨가 들어있었다.

씨앗을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모든 파종 가능한 씨앗은 종묘관리원에서 생산하고 유통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돈으로 사기에도 이정도면 우리가 평생 벌어도 안 될 일이지요.”

그럼 어떻게 이걸 구했죠?”

당돌하게 한나가 툭 내뱉었다.

묘종관리원에 몰래 들어가 훔쳤죠. 12시가 넘는 시간에는 모든 시스템이 로봇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집에 다른 종의 씨앗도 있고요.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많이는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우리가족은 이제 내일 떠날 겁니다. 민수씨네 가족도 같이 떠났으면 합니다만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그는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우리도 지랄 맞은 이곳을 당장 떠날거예요.”

민철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이야기 했다.

그래요. 우리도 내일 같이 떠납시다.”

말애씨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머지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동의를 구했다.

저기 엄마...”

그래 한나야. 무슨 의견이라도 있는 거니?”

나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만나던 인규 알지? 걔도 데리고 가면 안 될까? 부모님들 다 돌아가시고 혼자잖아. 혹시 남는 돌 없어? 같이 갈수 없을까 오빠?”

그 말에 민수는 난감해 했고, 그것을 본 김씨는 웃으며 이야기 했다.

제게 남는 돌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작년에 돌아가셨더라고요. 그럼 이쪽 식구 다섯 명과 우리 식구 여섯 이렇게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다른 누구에게도 말 해서는 안 되며 손목의 인식 칩이 녹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조심해주세요. 그리고 거리의 정찰견을 조심하세요. 우리를 인식할 순 없어도 실시간으로 거리의 영상을 통제센터에 전송하니 운이 없다면 들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주의사항을 듣고 헤어진 뒤 들뜬 마음으로 잠을 이루었다. 말애씨는 달콤한 공기냄새가 나는 산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마지막 출근을 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사직처리는 바로 되었다. 그리고 이제껏 모아둔 돈으로 가족 모두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가 꼭 필요한 짐을 꾸리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어두워지자 인규라는 아이가 왔다. 한나가 저녁식사에 초대한 걸로 생각한 그는 조용히 같이 밥을 먹었다. 말애씨는 오랜만에 본다며 인규에게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평소에도 가족처럼 지내던 그라 의심없이 그는 간단한 짐을 챙겨와 다시 돌아왔다.

모두 방으로 돌아가 잠깐 잠이 들 무렵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깨어있던 말애씨는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김씨 가족들이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그의 가족을 맞이했다. 그들은 조용히 눈인사를 하고 그녀는 아이들을 깨웠다. 모두 일어나 각자 손목에 질긴 붕대로 돌을 감쌌다. 민수, 민철, 한나 모두 다시는 풀어지지 않기를 빌며 손목을 질끈 동여매었다. 잠에서 덜 깬 인규의 손목에는 김씨가 붕대를 감아 주었다. 모두 준비를 마치고 자초지정을 들은 인규마저 비장한 얼굴을 하고 떠날 채비를 한 것을 보고 민수와 김씨가 앞장서서 대문은 나섰다.

하지만 대문을 연 그들은 놀라 숨을 멈추었다. 수많은 경찰들이 말애씨의 집을 에워싸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이 잘못 되었다. 김씨와 민수는 주먹을 불끈 쉬며 부르르 떨었다. 말애씨는 어깨 메고 있던 짐을 밑으로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나와 인규는 손을 꼭 붙잡고 움직이질 않았으며, 민철이는 고개를 떨구고 이미 울고 있었다.

너희들의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순순히 투항하라.”

경찰들은 서서히 그들을 조여왔다.

그들을 바라보는 말애씨는 정신을 차린 듯 희미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내가 정말로 대단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게로군...대단한 세상이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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