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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호두나무와 꿈

[호두나무와 꿈]

 

 

 

우리가 욕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지금 나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뒤늦게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우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은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작은 이랬다. 남편의 사업부가 돈을 벌지 못하면서 부서가 없어져야만 했다. 눈치가 빠른 그이는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로써 할 수 있는 준비가 뭐가 있겠는가? 가끔 로또를 사거나, 때론 주식시장을 기웃 거리며 한숨 밖에 더 짓겠는가. 결혼 10년 만에 겨우 장만한 집 한 채의 대출이 아직 남아있었고, 애 키우느라 바빴던 나는 다시 사회에 나갈 엄두가 생기지 않았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를 생각한다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겠지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남편이 밤에 잠을 편하게 자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매주 한자리의 숫자도 맞지 않는 로또를 버리며, 그리고 밑천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주식도 포기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더 먼 미래를 준비하는 듯했다.

 

발단은 여기서 부터이다. 어느 날 웬일로 남편이 늘 울상이던 얼굴을 펴고 집안에 들어섰다. 나는 술을 한잔 했거니 생각하며 안쓰러운 생각에 그의 가방을 받아 주었다.

여보, 여보, 내 말 좀 들어봐.”

남편은 신발도 채 벋지 않고는 서서 다급하게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술을 마셨으면 곱게 들어와 자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기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늘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그는 양말을 한 짝만 벋어 손에 들고는 내가 관심을 가지기를 기다렸다.

호두나무 말이야. 그걸 키우면 돈이 된다네. 국산 호두가 없잖아. 그게 키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러는데, 요즘 개량종이 나와서 4년만 키우면 호두를 수확할 수가 있데. 800그루 심으면 일 년에 1억은 벌수 있단다. 어때?”

나는 뜬금없는 그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내 어깨를 붙잡고는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러니까 귀농하자고. 오천만원 안팎의 싼 임야를 구해서 호두나무를 심는 거야. 4년은 기다려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어떡해서든 회사에 버텨볼게. 그리고 호두가 열리기 시작하면 다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가는 거지.”

그러고는 그는 내 반응을 기다렸다. 나는 천천히 머리를 정리해 보았다.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누구한테 그런 이야기는 들었어요?”

나는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솔직히 일억이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나도 모르게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어떤 사람이 호두나무 밭을 판다고 하잖아. 그래서 알아봤더니..그게 가능성 있는 사업이더라고. 나무를 누가 뽑아가지 않는 이상 기다리기만 하면 열매는 열릴 거야. 그리고 관리만 잘하면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수확할 수 있고. 근사하지?”

남편은 이제야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뭔가 단단히 결심한 얼굴이었다.

귀농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말이다. 도시에서 자라 줄곧 도시에서 생활했고 시골은 tv에서나 구경하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귀농이라니... 그리고 임야니 뭐니 하는 말조차도 생소했다.

땅은 어디서 구해?” 나는 호두나무가 심겨진 대지를 생각하며 물었다. 사실 호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호두가 달린 어떤 나무를 생각한 것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버즘나무같이 잎이 큰 나무에 딱딱한 호두가 포도송이처럼 달린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요즘 인터넷에서 직거래로 구할 수가 있어. 임야로 만평정도 사면된다고 그래.”

그럼 호두나무는?”

개량품종으로 하면 한그루 만 오천 원이면 된데. 천 사백만원 정도면 800그루 구입할 수 있을 거야.”

미리 모든 것을 다 계산해 본 듯 남편은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하긴 뭔가를 하면 철저하게 하는 스타일 이니까. 그래서 남편은 벌써 모든 것이 다 계획되어 있는 듯했다. 나의 동의 없이도 일을 진행시킬 얼굴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가 필요한거야?”

남편은 그제야 약간 굳은 표정을 하고 한 박자 쉬며 대답했다.

대략 7000만 원정도.”

그제야 나는 긴장했던 어깨를 내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7000만원은 우리가 5년 이상을 안 쓰고 모아야 되는 돈이었다. 거기다 현재 우리 통장의 잔고에 3000만원의 대출금도 있고. 앞뒤 계산할 것도 없이 그냥 안 되는 일이었다. 대출을 하지 않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이었다.

여보, 이건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거야. 내가 앞으로 몇 년을 더 회사 생활 하겠어. 2? 3? 그러고 나서는 이 나이에 내가 다시 취업하기가 쉬운 줄 알아?”

맞는 말이었다. 현재 우리에게 미래는 없었다. 공중을 떠다니는 먼지처럼 꿈, 이상, 미래는 여기 저기 부유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어디든 내려앉기만 해도 삶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언젠가부터 인생의 꿈 따위는 오늘을 사는 데 메여있었다.

여기 아파트 가격이 앞으로 더 떨어질 거야. 그전에 여길 팔자. 그리고 우리 내려가자. 도시 빈민으로 여기 이러고 살지 말고, 시골에 가서 즐겁게 살자. ? 그리고 아이들도 마음껏 뛰어 놀고 정서에도 좋을 거야.”

 

도시에서 나고 자랐고 이렇게 새끼까지 기르고 있지만 나에겐 이 도시는 항상 냉정하기만 하였다. 쓰고 싶은 만큼 벌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질이 떨어지는 식품을 먹어야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유기농으로 식단을 바꾸고 싶었지만 통장의 대출금에 월급은 저당 잡혀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남편이 던지고 간 말이 나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조용한 시골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땅에서 그리고 내 집에서 조용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금방 수확한 농산물을 아침, 저녁으로 먹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호두나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남편의 말대로 개량한 품종을 기르면 4년 만에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고 의외로 병충해도 없어서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단 물이 잘 빠지는 장소가 되어야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인터넷에서 호두나무 사진을 보았다. 얌전하게 생긴 이파리에 파란 자두만한 열매가 달려 있었다.

엄마 뭐해요?”

넋 놓고 사진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가 물었다.

, 예슬아 이게 바로 호두나무란다. 호두나무 처음보지?”

아이도 처음 보는 호두나무가 신기한지 의자위에 올라서 컴퓨터에 몸을 바짝 갖다 대었다.

, 신기해요 엄마. 이게 딱딱한 호두가 되는 거예요?”

그런가봐. 엄마도 처음 봐서 잘은 몰라. 예슬아. 우리 호두나무 키워볼래?”

와 정말요? 좋아요. 베란다에서 클까요?”

나는 아이의 베란다라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파트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베란다 뿐이니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큰 대지를 생각하고 있던 차라 순간 웃음이 났다.

그렇게 서서히 마음이 움직였다.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남편은 발 빠르게 지방의 임야를 구입했다. 우리는 아파트를 담보로 더 대출을 했고 그 돈으로 나무까지 구입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남편은 800그루의 호두나무를 인부를 고용해 이틀을 두고 심었다. 집에서 3시간이 걸리는 곳이었지만 주말에 어딘가로 놀러가는 대신에 내 땅에 나무를 심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호두나무는 아주 작은 묘목이었다. 이것이 언제 자라서 열매를 맺을까 생각을 하니 아득하긴 했지만 남편이 그때까지만 잘 버텨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만평의 산에 우리는 우리의 꿈과 미래인 호두나무를 심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이것이 이년 전 일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우리는 빚더미에 깔려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유인즉, 우리가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남편은 호두나무를 키우는 꿈에 부풀어 회사 일을 건성건성 하게 되었다. 아직 아이 키 만 한 호두나무가 당장 내일이라도 열매를 맺어 수확이 될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사업부는 결국 없어졌고 몇 명의 동료들은 다른 부서에 배정 되었지만 남편은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어 버렸다. 앞으로 갚아야 하는 대출금이 일억이 넘게 있는데다가 호두가 열릴려면 2년이 넘게 남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행이 호두만은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나무의 굵기도 굵어 졌고 잎도 한해가 다르게 풍성해졌다. 하지만 남편의 실직으로 빠듯해진 살림살이에 자주 내려가 보지 못하게 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남편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다니는 중이었고, 나도 가까운 슈퍼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주말이 바빴다. 그러던 해 가을 유난히 가을 가뭄이 심했었고 바쁜 중에 마음속으로 한번은 내려가 봐야 한다고 생각하던 찰라 일이 터진 것이다.

우리는 화재 소식을 듣고 한밤중에 호두나무가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바싹 말라있던 낙엽은 굉장한 기세로 타 들어갔고, 화재가 진화되는데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우리의 호두나무는 새까맣게 그을려 형체도 남아있지 않았다. 불구경하던 이웃들이 가을엔 화재방지를 위해 낙엽을 다 긁어내 줘야하고 물도 뿌려야 한다고 잿더미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보며 이야기 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호두 밭을 걸으며 살아남은 나무라도 있을까 살펴보았다.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웠다. 잿더미 속을 헤치고 다니느라 얼굴이 까매져있었다. 화염은 호두 밭을 깨끗이 씹어 삼켰다. 한그루의 나무도 살아있지 않았다. 나는 훌훌 옷을 털고 남편이 있는 차안으로 다가 갔다. 남편이 울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울 수도 없었다. 나는 그를 달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아 그냥 옆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갔고 우리는 새까매진 얼굴을 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작은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트로 출근한다. 빚이 빚을 낳고 있었다. 이자를 물 돈이 끊어지지 않게 우리는 죽어라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간간히 다시 호두나무를 사서 밭에다 심었다. 우리는 한동안 부쩍 말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편도 나도 반성하고, 각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냥 그런 채로 살아갔다. 꿈을 꾸기는 쉬웠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패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은 실패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기에 아직 끝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불이 활활 타오르던 그 때에도 내 마음속에 자리한 호두나무는 상하지 않고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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