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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진통제

[진통제]

 

-거북이-

끙끙 앓는 아버지의 소리에 그녀는 잠에서 깼다. 새벽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지만 그녀는 신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30여분이 지났을까 아버지는 진통제를 드시고 다시 잠이 드셨는지 서서히 밤의 정적 속에 모든 것이 묻혀만 가고 그녀도 스르륵 잠이 들었다.

찢어지는 알람소리에 그녀가 다시 눈을 뜬 것이 아침 6시였다. 무엇에 쫒긴 듯 후다닥 일어난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눈을 비벼 잠을 쫓았다. 그녀는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 이제는 밥도 먹지 못하고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아버지의 방문을 지나칠 때면 그녀는 무섭기만 했다. 어제 밤의 신음소리로 아버지가 살아는 계시겠지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한번쯤은 아버지의 방문을 열어 잘 계시는지 확인 할만도 하지만 그녀와 아버지의 관계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이유로 쉽게 마음이 가질 않았다.

아버지는 그녀가 12살 때 집을 나갔다가 10년을 어디서 뭘 했는지 모르고 살다 1년 전 다 죽은 얼굴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엄마도 집을 나갔고, 혼자였던 그녀에게 느닷없는 아버지의 등장은 마음에 균열을 가져왔다. 일찍부터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돌아오자마자 등져 누운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되지못해 피를 토하고 쓰러지셨다. 퇴근하고 돌아와 쓰러진 아버지를 본 그녀는 집밖으로 도망쳐 나와 버렸다. 그리고 멀찍이서 119에 신고를 하고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폐암 말기셨고 수술도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길어야 3개월이라고 했다. 그녀와 아버지는 가방 한가득 처방받은 진통제를 쑤셔 넣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선 매일 밤, 어쩌면 하루 종일, 아버지는 수시로 진통제를 드시고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그녀는 자신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떠나고 혼자였던 많은 밤 동안 그녀는 벌레같이 기어오르는 외로움과 슬픔을 참기 위해 신음하고 잠 못 이루었다. 그녀 역시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을 앓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참아야 했을 뿐이었다. 그 통증의 한가운데 아버지가 있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그때는 지금의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지옥이었다.

 

공장에서 그녀는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일은 그녀를 마취시킨다. 아무생각도 없이 그저 몸만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어 가면 그녀는 다시 초조해 진다.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열었을 때 집안을 가득 메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야 하는 일은 힘든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소멸했다 다시 차오르는 달이 머리 위를 따라왔다. 이제 바람에는 보드라운 기운이 감돌아 하루 종일 긴장했던 어깨가 저절로 풀어지는 듯 했다. 사는 동안 그녀를 따뜻하게 해준 건 이런 것들이었다.

 

집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아침에 끓여 놓은 죽이 쉬었는지 냄새가 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방문 앞에 섰다. 정적이 감돌았다. 차마 문을 열 용기가 생기지 않아 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저 아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새벽에 그녀는 다시 잠이 깨었다. 항상 그녀를 깨웠던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정적이 그녀를 더욱 누르는 느낌에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문손잡이를 잡고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처음 왔을 때처럼 등을 보이고 누워 있었다. 깡말라 갈비뼈가 드러난 상체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머리위엔 뜯겨져 나간 약봉지가 흩어져 있고 차마 삼키지 못한 약들도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등짝에 손을 대어 보았다. 호흡이 멎어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119를 불렀고 그렇게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모든 절차를 간소화하여 장례를 치렀다. 아버지는 한줌도 되지 않는 먼지가 되어 산에 뿌려졌다.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있었던 방을 치우며 그녀는 남겨진 모든 것을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았다. 그가 살다간 세상에 그의 흔적이라곤 그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 먹지 못한 한 달분의 아버지의 약을 버리려다 그녀는 그것을 서랍 속에 다시 넣어 두었다. 이제 다시 혼자가 되어 견딜 일만 남은 그녀에게 어쩌면 아버지가 남긴 유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남은 모든 것은 빨간 쓰레기봉투에 담겨 집 앞 전봇대 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한 밤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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