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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화푸세요 은정씨

[화푸세요 은정씨]

 

 

 

그녀는 뻐근한 어깨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제 평소보다 조금 많은 손님을 받은 탓일 것이다. 그녀는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 아파트 앞에 조그맣게 미장원을 차렸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보고자 한동안 접었던 일을 다시 시작 한 것이다. 큰돈은 되지 않았지만 일은 그녀에게 잠깐이나마 복잡한 일들을 잊게 해주었다.

일찍 일어난 그녀는 어머니의 방으로 갔다. 간밤에 대로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더니 엄마는 주무시지 못했는지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눈치다.

엄마 잘 주무셨어?”

얘야. 나 한잠도 못 잤다. 우리 조용한 데로 이사 가야겠다. 이러다 죽겠어.”

좀만 참아 봐요. 진오 대학가면 그때 상철이도 내 보내고 우리끼리 조용한데 가서 삽시다.

나 밥 차릴게, 좀 있다 나와요.”

그녀의 말에 엄마는 입을 삐죽거리며 궁싯거리지만 그녀는 모른 체하며 방을 나와 버렸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엄마의 투정을 다 받아주기에 지쳐버려 모르게 무시해 버렸다.

엄마는 둘 있는 남동생들 집에서 전전긍긍하다 갈 곳이 없어 그녀의 집에 오게 되었지만 아직 돈을 쥐고 있는 엄마는 동생들이 두 손 두 발 다 든 뒤라도 언제나 오만 방자하고 사람을 무시 했다. 만만한 딸이라고 그녀에게 더하면 더했지 안하무인인 엄마를 집에 데려온 지 3년이 되어간다. 엄마의 대단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노인네의 성격이 한 풀 꺾였지만 돈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모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번도 따뜻하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하기만 하다. 그런 엄마가 파킨슨 증세가 악화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엄살과 투정이 심해지고 있다. 그녀가 돈을 벌만큼 형편이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집을 나서야만 하는 이유였다.

 

있는 반찬으로 대충 아침을 차리고 남편과 진오를 깨워 밥을 먹였다.

진오는 어제 저녁에 늦게까지 게임을 했는지 눈을 반쯤 감고 밥을 먹고 있다.

진오 너, 어제도 늦게 까지 게임했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아녀요. 엄마. 헤헤

너 시험이 얼마 안 남았잖아. 오늘도 피곤해서 학원 뺀다고 했다가는 나한테 혼날 줄 알아.”

.”

진오는 늘상 있는 일인 것처럼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듯 대답했다.

빨랑 밥 먹고, 나갈 때 너희 아빠 깨우고 나가. 알았지?”

..”

부지런히 숟가락을 움직이던 그녀의 남편은 진오를 한심하게 바라보다 먼저 일어났다.

진오는 그녀의 동생인 상철이의 아들이다. 동생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이혼을 했고 동생이 재혼할 때까지 봐준다는 게 벌써 진오가 16살이 되었다. 작년까지는 동생도 진오도 근처 아파트에 살면서 가끔 챙겨주기만 했었는데 진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를 이유로 한집에 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부모노릇을 한 덕에 진오는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며 잘 따랐지만 사춘기가 되면서는 거짓말도 자주 하고 게임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축 처진 어깨로 집을 나가는 진오의 등을 바라보니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왔다.

진오, 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곧 고2데 공부를 저렇게 안하고서야..서울권 대학에 가기나 하겠어? ”

남편이 진오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는 방문을 빠끔히 열고는 한소리를 했다.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해도 그녀는 진오를 친 자식같이 16년을 키워준 그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문득 군대에 가 있는 그녀의 아들이 생각이 났다. 내 자식은 잘 있는지...

 

엄마에게 아침을 먹이고 그녀도 출근을 했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반찬 투정을 하는 엄마에게 밥을 대충 먹이고 나서서 마음이 쓰였지만 예약 손님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한때 강남에서 유명한 헤어숍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 비록 작은 동네 미장원이지만 단골이 몇이나 되었다. 3평 안 되는 곳이었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가족이 없는 그곳은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님이 찾아왔다.

지금 문여셨나봐요.”

어서 오세요, 민찬 엄마. 오늘 엄마가 반찬 투정을 해서 신경 쓰느라 늦었어요.”

어휴, 노친네 입맛도 까다로운가 보네요.”

있다 아줌마 오시면 맛있는 거 해드리라고 말해둬서 괜찮아요. 내가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힘들어서 반찬이고 뭐고 할 기운이 있어야지요.”

그녀는 단골손님의 스타일을 아는지 눈짓으로도 어떻게 손님의 머리를 만질지 알 수 있었다.

원장님 대단하세요. 저 같으면, 원장님처럼 못살아요.”

그녀는 손님의 말에 뿌듯함을 느끼지만 사실은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잘하는 건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하도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아서 민찬 엄마한테 집안일들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말 들으면 부담스러워요. 나도 지금 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올라온다니까요.”

그녀는 지난 주 엄마와 남편이 싸운 것을 생각했다.

그녀의 엄마는 결혼 할 때부터 사위를 우습게 봐왔지만 자신이 아파 병든 처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는 나아지질 않았다. 마치 사위를 처가살이하는 못난 남자처럼 이야기 하는가 하면, 그날은 자신이 1억을 줄 테니 더 잘 모시라는 주문까지 했다. 착한 남편은 듣다듣다 폭발해서는 그깟 돈이 뭐냐고 화를 내고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 돈 들고 잘난 아들네 집에 가라고 한 것이다.

비록 엄마가 잘못했지만 남편이 엄마에게 그렇게 말한 것 또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엄마에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터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엄마, 평생 사위가 당신에게 어떻게 한지 다 잊었어? 죽 사오라면 퇴근해서 죽 사오고. 통장 정리해 오라고 시키질 않나. 주말에 쉬지도 못하게 불러내서는 동생들 집안일까지 다 거들게 했잖아. 그런 사위한테 지금 얹혀살면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잖아. 우리가 돈 때문에 엄마 모시는 줄 알아요? 그 돈 상철이 다 줘도 돼. 근데 자꾸 박서방 힘들게 하면 가만 안 있을 거야.”

마음 약한 그녀도 처음으로 그렇게 엄마에게 대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뭐 돈 주겠다는데 그러네.” 라며 아랑곳 하질 않았다.

이날 이후로 그녀는 명치끝이 콕콕 쑤셨고, 머리가 띵하니 아파왔다.

둘째동생네는 엄마 안모시고 뭐한데요?”

우리 올케가 좀 당돌하잖아요. 돈 필요할 땐 어머니, 어머니, 하더니 엄마 병나시니까 자기는 못 모시겠다고 요양원 보내라고 하잖아요.”

저런, 요즘 애들 자기밖에 모른다니까. 나는 내 자식이 그럴 까봐 겁나요.”

그녀와 동갑인 민찬 엄마는 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다.

근데 원장님, 원장님도 대단하지만 남편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친정 식구들을 다 거둬주기 힘든데 말이죠. 요즘 세상에 누가 그래요? 근데 남편이 상황정리를 잘 해 주면 원장님이 덜 힘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녀는 거의 정리가 다 된 손님의 머리를 거울에 비춰보며 웃었다.

우리 엄마가 나 결혼 할 때 데려오는 남자마다 다 반대하더니, 자기 좋자고 이 사람을 허락 해 줬나 봐요. 착하고 순해 빠졌어요. ”

자신의 힘든 처지도 그렇지만 집안일들을 자신의 일 마냥 챙겨준 남편이 고마웠다. 하지만 민찬엄마의 말대로 자신보다 냉정해서 상황을 정리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왜 우리는 둘다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걸까...

 

점심시간이 지나고 밥을 먹고 있는 중에 진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피곤해서 오늘 학원 빠질게요.”

그녀는 뒤통수가 뻐근해 왔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지하는 후회가 밀려들어 온다.

너 엄마가 또 학원 빼먹으면 어쩐다고 했어? 학교에서 성적이 들쑥날쑥 이라고 담임한테서 전화가 와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 너 또 학원 빠지면 집에 가서 컴퓨터를 뺏어 버릴 거야. 알았지?”

“..........”

진오에게 이 말이 먹혔는지 잠시 주춤하는 모양이었다.

알겠어요.”

알았으면 학원 갔다와.”

시무룩하게 전화를 끊는 진오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불쌍한 아이.

하지만 그녀는 어디까지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는데 자신이 진오와 상철이의 인생에 너무 많이 얽혀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달랬다.

 

집에 갈 시간이 다와 갔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 가려나 생각하며 그녀는 가게를 정리했다.

집에 도착하자 안절부절 못하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여보,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안 나오셔.”

그녀는 가방을 현관문 앞에 팽개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엄마. 나야. 무슨 일이야?”

“.........”

화장실 안은 조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덜컹하고 잠겼던 화장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그녀를 불렀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했고 겁에 질려있었다.

그녀는 화장실에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엄마가 손으로 가리키는 변기 안을 들여다보았다. 변기 속에는 빨간 피가 섞인 오줌이 고여 있었다. 기어이 방광염이 다시 도진 것이다.

파킨슨 때문에 신체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엄마는 방광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광염으로 항생제를 많이 쓴 덕에 재발 시 더 이상 맞는 약이 없을 거라고 의사가 이야기 했었다. 이번에 또 감염이라면 슈퍼박테리아가 생긴 것이다.

내일 병원 가는 거지? 병원 가야해. 많이 아파. 알았지?”

엄마는 아이가 된 것 마냥 칭얼거렸다.

 

늦은 밤 --------’ 하며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신경이 예민해진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고 있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동생 상철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흘끗 시계를 쳐다보았다. 요즘 여자를 만나는지 계속 늦는 것 같았다. 집안의 장남이라 엄마가 오냐 오냐 키웠던 게 화근인 것이다. 자신밖에 모르는 동생. 자신의 아이를 그녀에게 맡기고는 어떻게 되어 가는 지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에 그녀는 다시 어깨가 쑤셔왔다. 내일은 토요일 이니까 잠깐이라도 사우나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 그녀는 사우나를 갈 채비를 하고는 거실로 나서다 골프채를 메고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상철이와 마주쳤다.

너 어디가니?”

그녀는 오늘은 상철이에게 엄마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오늘 볼일 있어. ?”

오늘은 네가 엄마 좀 봐줘. 나 오늘 너무 힘들어서 사우나 좀 갔다 와야겠어. 박서방도 주중에 엄마 보느라고 지쳤으니까 오늘은 네가 집에 좀 있어. ?”

힘들면 아줌마 불러. 돈은 내가 낼게. 됐지?”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고 동생은 밖을 나가려고 했다.

!!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 네가 모셔야 되는 엄마를 내가 모셔주면 좀 고마운 줄 알아야 되는 거 아냐?”

문을 열다만 상철은 골프채를 내려놓고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시종일관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이다.

누나. 내가 누나더러 엄마 모셔달라고 한적 없어. 그리고 힘들면 아줌마 불러 쓰라고 말했잖아. 돈은 내가 댄다고. 그리고 엄마.”

상철은 시끄러운 소리에 방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의 엄마를 보며 이야기 했다.

엄마도 그 정도로 아프면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병원에 가거나 요양원에 가는 게 맞는 거잖아. 안 그래?”

그는 그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집안은 침묵 그 자체였다.

아들에게 요양원이나 가라는 소리를 들은 그녀의 엄마는 우는지 웃는지 얼굴을 찡그렸고, 하나도 틀리지 않은 동생의 말을 들은 그녀도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붉어지는 얼굴을 푹 숙이고는 자동차 열쇠를 들고 집을 뛰쳐 나와 버렸다.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차의 시동을 켜고 있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렸다. 온갖 생각들이 다 지나갔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고 있었을 때 엄마와 둘째 동생네가 집에 찾아와서 한 달씩 묶었다 간일. 시댁의 형님들이 생활이 어렵다고 간간히 빌려가서 갚지 않은 돈이 근 천 만원이 다되어가는 것이며, 시어머니와 시아버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막내인 자신이 모신 것이며...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을 자신이 감당하며 살아온 것이 생각나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잘 대해줘도 아무에게도 고맙다는 말도 듣지 못 한다는 것을....

그녀는 사우나 가방을 뒷좌석에 실었지만 사우나를 이니 지나쳐 와 버렸다. 그냥 달리고 싶었다. 하늘이 파랗고 구름 한점 없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새삼스럽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달리는 길 끝에 그녀를 기다리듯이 서있는 산으로 차를 돌렸다.

산은 고요했고 나무는 무심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서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새소리와 꽃잎처럼 뿌려지는 개울소리가 그녀 마음의 어둠을 씻어내어 주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산으로 올라갈수록 많아지는 사람에 그녀는 머리가 울렸다. 서로 떠들어 대며 뭐가 신났는지 웃어대지만 그녀에게는 소음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에 남편과 함께 갔던 샛길로 들어섰다. 가파르긴 하지만 사람이 없어 한적했던 길을 몇 년 전 남편이 발견했었다. 고요한 오솔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녀는 진짜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을 혼자 두고 온 것이 후회 되었다. 오늘도 남편 혼자 고생할 것이 생각이 났다. 남편이 차라리 상철이처럼 냉정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녀가 덜 고생했을 거라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에휴....내 복이지..”

그녀는 터벅터벅 걸음을 걸었다. 나무들은 모두들 자기의 역량만큼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작은 나무는 작은 대로, 큰 나무는 큰 대로. 하지만 모두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며 질서를 지켜가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는 거겠지? 거리를 두면서. 그래야 질서를 유지하는 거니까. 하지만 불쌍한 우리 엄마가 요양원에가면 내가 마음이 아프잖아. 상철이가 재혼해서 진오가 구박받으면 어떡해..그래도 내가 참고 안고 살아야..맞는 거겠지..”

그녀의 가슴은 다시 엄마와 동생과 그의 아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점심때가 지나갔다. 배도 고프고 엄마에게 밥이라도 챙겨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올라가던 발길을 멈추었다.

 

가파른 오솔길을 막돌아 서려는 찰라 뭔가가 휙 하고 그녀 앞을 지나가는 바람에 그녀는 발을 헛디뎌 버렸다. 그리고 미끄러져 나무 둥치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고 말았다.

휘잇 휘잇 하는 밤 부엉이 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떳지만 앞이 깜깜해 그녀는 순간 실명을 하였나 착각을 하였다. 휴대폰을 열자 밤 10시가 다 되었고 삼십여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모두 남편의 전화였다. 그녀는 휴대폰의 밧데리가 간당간당한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다.

여보 지금어디야? 무슨 일 있는 거야?”

여보 나 청계산인데..정신을 잃었었나봐. 눈을 뜨니 밤이야.”

그녀의 남편이 침착하게 위치를 확인하고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이야기 하려는 찰라 안타깝게도 전원이 꺼져버렸다. 다시 휘잇 휘잇 부엉이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아래로 내려왔다. 다행히 저쪽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지 불빛이 보였다. 그녀가 불빛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것은 낡은 오두막 모닥불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할머니임을 알았다. 허리는 굽을 대로 굽어있고, 두 눈이 푹 꺼져있는 산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섬뜩한 마음이 들어 돌아서려고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왔으면 이리로 와 앉아

송판이 갈라지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그쪽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들켰음을 알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쭈뼛쭈뼛 모닥불 쪽으로 걸어갔다.

딱 얼굴만 봐도 알겠네. 남들이 다 내 맘 같지 않지?”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 같이 이야기 하는 할머니가 신기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애들을 잡아먹는다는 그런 할머니는 아닐 테고, 이런 산속에 산다는 것이 수상쩍었지만 자세히 보니 나빠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밤바람이 춥기도 해서 그녀는 모닥불 가로 슬며시 다가가 앉았다.

이것 봐,이것 봐. 그렇게 사람한테 당하고도 이렇게 아무나 믿어버리는 꼴 하고는. 그러니까 니 인생이 그따위 인거야.”

그녀는 그녀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할머니가 왠지 싫지 않아 그냥 웃었다.

저 할머니 길을 잃어서 그러는데 어디로 가면 청계산 입구로 갈수 있어요?”

할머니는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를 한 대 칠세라 손을 들어 올리고는

미친년,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자고 내일 가. 너는 그렇게 하게 돼있어.”

그녀는 갈수록 이상한 이야기만 하는 할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할머니 점장이세요?”

아녀.”

그럼 어떻게 저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세요?”

얼굴에 쓰여 있으니까.”

그럼 관상 보시는구나.”

남 일에 신경 꺼. 그러니까 네 년의 일이 꼬이는 거야.”

하하하, 맞아요 할머니. 저 오지랖이 넓어서 요 모양 요 꼴로 살아요.”

그녀는 후드득 타오르는 장작을 뒤적이며 할머니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오지랖이 태평양이지. . 그렇게 사는 게 네 년이 착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어. 그거 다 병이야. .”

그녀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한숨 소리와 함께 찌르륵 거리는 풀벌레들도 함께 울었다. 그녀의 무거운 마음과는 달리 숲 속의 밤은 고요했다.

맞는 말이에요 할머니. 잔정이 많아서 남의 부탁 잘 거절하지 못하고요. 어떻게 해서든 좋게 일을 해결해 보려고 저 하나 희생했는데 그게 잘하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픈 엄마는 점점 엄살이 심해지시고, 이혼한 동생은 지자식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한테 내팽개쳐 놓고, 둘째 동생은 연락이 끊긴지 오래됐어요. 그리고 시댁은 말도 못 하구요.”

그녀는 이야기 도중에 목이 메어왔다.

남들은 다 잘사는데 나만 왜 이러나 그런 생각 들지?”

할머니는 담배연기를 후 뿜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뚫어 볼 듯한 눈이었지만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 할머니 저만 왜 이렇게 사는 걸까요?”

미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더 잘 알겠지.”

이렇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너무 약해서......”

그때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말고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꼬부랑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집에서 작은 솥을 가지고 나와서는 모닥불에 걸개를 만들어 걸었다.

이거 먹으면 그 병 나아.”

?”

할머니는 솥의 뚜껑을 열고 국자로 휘휘 저어서는 다시 뚜껑을 닫았다.

이거 먹으면 그 병 낮는다구.”

속고만 살았나. 넘의 말은 그렇게 잘 듣더니 내말은 왜 안들어? 이거 먹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동트면 떠나. 그리고 잘 살아.”

이렇게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끓고 있는 솥을 바라보았다. 아침도 먹지 않고 나온 뒤라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뽀얀 국물에 잘 다져진 버섯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

그녀는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국을 한 수저 퍼 먹었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나는 맛있는 버섯이었다. 그녀는 따뜻한 국을 다 먹고 가방을 베고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경쾌한 아침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숲은 어제 올라온 그대로 아침을 열었다.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주변은 이미 잘 정돈 되어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했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그렇게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산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녀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엄마는 방광의 염증이 심해 소변을 호수로 받아야했다. 파킨슨마저 심해져 다리와 목의 근육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소변을 눌 때마다 아프다며 엄살을 피웠고, 그녀가 앞에 있으면 걷다가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참는다. 진오의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게임에 열중했고, 그의 아빠는 주말엔 여자를 만나러 밖으로 나간다. 한 달이 다 되가는 날 그녀가 조용히 그의 동생을 불렀다.

상철아. 너 계속 그 여자 만날 거니? 결혼 할 거야?”

상철은 조금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침착해져서 이야기 했다.

그럴지도 몰라. 근데 누나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

그녀 역시 동생의 말에 침작하게 받아쳤다.

그렇다면 너 이제 이집에서 나가 줬으면 해. 엄마도 같이 말이야. 그 여자에게 네 사정을 잘 말하고 그래도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결혼해도 아무 말 안할게. 진오는 한참 손이 가는 때니까 대학 갈 때 까지만 내가 데리고 있기로 하고.”

그녀의 말에 상철은 놀랐다. 평소의 누나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나. 갑자기 왜이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그냥 이치대로 했을 뿐이야. 엄마 유산, 너나 상호가 가장 많이 가져다 써놓고 엄마가 정작 필요할 때 나 몰라라하는 너희들 뒤치다꺼리 이제 그만하려고. 너희들 일은 너희들이 알아서 정리해. 네 결혼 문제도 그렇고. 은근슬쩍 엄마며 진오까지 나에게 떠넘기지 말고 말이야.”

상철은 그녀의 침착한 말에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논리적인 그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누나가 그렇다면 그렇게 할게. 하지만 진오도 같이 나갈게. 내 새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책임 질 테니까. 그리고 엄마는 당장은 나 혼자 돌볼 수 없으니까 상호랑 이야기 잘해서 요양원 알아볼게. 누난 마음 아파도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러면 안 된다느니 하는 그딴 이야기는 이제 하지 말고. 이게 내 최선이야.”

상철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엿듣던 그녀의 남편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있었다.

여보..괜찮아?”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 그녀는 극히 정상이었다.

 

며칠 뒤 엄마와 진오와 상철은 그녀의 집을 떠나 이사를 갔고 그날 바로 그녀의 엄마는 근처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날 그녀는 엄마를 따라갔다.

나쁜 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는 따라오는 그녀를 주먹으로 치며 울먹거렸다.

엄마 그러지마. 여기는 의사가 같이 있으니까 안심되고, 물리치료도 매일 할 수 있어 더 건강해 질수 있어요. 간호사들에게 좀 친절하게 하고요. 그럼 여기가 우리 집보다 나을 거예요.”

엄마는 그녀의 동정심을 자극해보려고 최대한 불쌍하게 걸어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옛날처럼 약하지 않았다.

.”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는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더 이상 절룩거리지도 않고 앞으로 휑하게 걸어가 버렸다.

자주 올게 엄마.” 그녀는 멀어지는 엄마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입원 수속만 밟고 나머지 일은 올케에게 맡기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과 다르게 집은 차분해졌다. 예전의 그녀 머릿속 같이 엉망이던 집이 정리가 되었다.

엄마를 피해 안방에서 나오지 않던 그녀의 남편도 오랜만에 거실에 나와 TV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진오가 쓰던 아들의 방도 정리가 되어 아들이 제대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정리가 된 상황에 자신도 어리둥절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억지로 떠맡아 짊어지고 가던 남의 짐을 주인에게 모두 돌려준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끔...아주 가끔은 예전의 그녀가 엄마와 상철이를 찾아가 미안하다고 우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무의식에 남은 죄책감일 것이다.

 

그녀는 주말에 남편과 다시 청계산을 찾았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이상한 할머니를 만났던 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주 오래된 큰 상수리나무만이 서있었다. 그녀는 등이 굽은 듯 휘어진 가지 하나를 건드려 보았다. 그리고 이끼가 가득 낀 나무뿌리 위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버섯이 잔득 나있는 것을 보았다. 나무 둘레를 한 바퀴 돌다 눈높이에 있는 작은 구멍에 뭔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것을 꺼내보았고 그것은 금방 넣어놓은 듯한 작은 쪽지였다.

그녀는 쪽지를 조용히 펴보았고 이내 피식 웃고는 종이를 바지 주머니에 잘 접어 넣고는 남편과 함께 그만 산을 내려왔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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