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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먼곳에서

[먼 곳에서]

 

 

꺄악--”

새벽,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잠이 깨었다. 나는 나쁜 꿈을 꾼 것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벽걸이 시계는 막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남편은 부스럭 거리고 있는 내 쪽을 보며 눈도 뜨지 않고 물었다.

환청을 들은 것처럼 밖은 조용하였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아니, 꿈 꾼 거 아냐?”

그러곤 등을 돌려 다시 잠들어 버렸다.

꿈이었나?”

요즘 부쩍 나쁜 꿈들을 꾸고 있기는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분명한 소리였다.

뒷산 어디 멀리쯤에서 들려온 소리인 듯 했다. 집 뒤에 있는 산은 야트막하긴 하지만 깊은 산으로 사계절 등산객들이 많았다. 지금 이시간도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라면 산을 오르시는 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잠을 깨운 그 소리는 젊은 여자의 음성이었다.

납치? 살인? 나는 잠깐 이런 끔찍한 단어들을 떠올렸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살인 사건들이 항간에 떠들썩하게 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곧 해가 뜨겠지..’

나는 드문드문 생각을 하다 잠이 다시 들었다.

 

---”

이번에는 짧은 외마디 비명이었다. 마치 마지막 숨이 끊기는 짐승의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다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왜 그래 자꾸?”

남편은 이번에도 듣지 못했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뭔 일이 난 것 같아요. 또 들었어, 비명소리를

그랬어? 근데 난 왜 못 들었지? 잘못 들은 거 아냐?”

나는 남편의 얼굴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러자 남편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아냐, 절대로.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어. 비명소리였다고.”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는 무심하게 물었다. 갑자기 냉정해진 남편의 모습에 그녀는 잠시 주춤거렸다. 뭔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질책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신고...해야 되지 않을까?”

그랬다가 아니면 어떡하게? 허위로 신고하면 벌금 내는 거 몰라? 그리고 자기말대로 비명소리라면 지금 신고해도 늦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신고했다가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 소리가 꼭 사람의 소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한밤에 발정난 암코양이일지도.

그렇지만 이렇게 불까지 켠 이상 그냥 물러서기는 싫었다.

그래도 지금 신고하면 범인이라도 빨리 잡을지도 몰라요.”

내말은, 아니면 어떡하냐는 거지

남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한밤에 깨어 있는 이 상황이 귀찮고 짜증이 났을 뿐이다.

그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러는 그를 보자 그녀도 선 듯 어떤 행동을 취하기가 두려웠다.

남편이 그 소리를 들었어야 했는데. 얼마나 겁에 질리고 절박한 비명소리였는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와 누웠다.

남편과 실갱이를 하는 동안 해가 떠올랐고, 남편의 말 맞다나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잠깐 자고 일어나 나는 평소처럼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준비했다. 어제의 일이 가슴 한켠에 남아있을 뿐 그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지나갔다. 어떤 가련한 여자가 산속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말거나 산새는 울고 구름은 날아가고 나는 세끼의 식사를 하고 지구는 돌고....누군가의 시간이 멈췄다고 지구가 더디게 돌지는 않았다.

마음속의 불편함도 어느 정도 잊어 갈 때쯤 일이 터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서너 대의 경찰차가 집 뒤 등산로 입구를 막아섰고 노란 폴리스 라인이 쳐졌다. 나는 아찔함을 느꼈다.

제발 별일 아니기를 바랐다.

당신 말이 맞았네.”

남편의 한마디였다.

늦은 시간까지 경찰차가 왔다갔고, 엠뷸런스도 다녀갔다. 별일 아니길 바랐던 그 일을 우리는 저녁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동 야산 30대 여성 토막살인]

남편은 어떡해하고 웅얼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괜찮아 당신 잘못 아니잖아.”

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과연 내 잘못은 없을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키고 말았다.

째깍째깍 벽시계의 초침은 한 숨도 쉬지 않고 달려 나갔고, 다시 해가 지고 밤이 오고, 지구는 돌고, 사람들은 바쁘게 일상을 살 것이다. 아무 일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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