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를 버리고 돌아서는 길 [나를 버리고 돌아서는 길] 회색빛으로 물든 뒷골목에 분열한 나를 버리고 돌아온다.모든 거추장스러운 감정들과 난해한 사상들우아하지 못했던 옛 기억까지 나는 아닌 밤 아무도 지나지 않는 그곳에 몰래 나를 버려두고 돌아선다. 나를 방황케 했던 그것이 꿈속에서 차마 그리워 질 수도 있겠지만몽유병처럼 어둔 거리를 헤매던 슬픈 그것을 밝은 빛을 내는 전신주 아래서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뒷골목 으슥한 그늘 아래거추장스러운 감정에 범벅이 된 나를 버린다. 아무도 거두지 않는 오래된 더미처럼세상에서 외면된 나와 마지막으로 마주섰다 돌아서 나온다.이제는 누구에게나 무뎌지기를 바라면서. 더보기
어느새 엄마와 닮아 있는 나 어느새 엄마와 닮아 있는 나 -거북이- 4개월 전 나는 임신을 하였고 새로운 삶이라는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드디어 나도 엄마가 되는 건가? 항상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엄마라는 역할을 드디어 할 수 있다는 것인가?상상속의 나는 자상한 엄마, 사랑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런 엄마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나는 부지런히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도 하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부모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약점을 닮지 않은 아이가 나오길 바라게 되었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위기는 속이 부대끼고 아파오면서 눈앞으로 다가왔다. 입덧이 끝나면서 위염이 재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잘 먹지를 못하고 살이 .. 더보기
쓸쓸한 밤거리를 걸으며 [쓸쓸한 밤거리를 걸으며] 바람이 차츰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여름내 태풍같이 자랐던 우리는 이제 떠날 때가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을 햇살은 따가워 졌지만 추워진 날씨 덕에 나무는 이제 물을 먹지 않습니다. 쪼르륵 하는 물소리가 끊기고 우리는 신록을 벗고 빛나는 노란색 수트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찌르는 가을 해를 맞으며 더 가볍고 바스락하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이제는 나무를 떠나 자유로이 떠다닐 수 있는 앞으로의 여행을 기대하며 바람 따라 너울거립니다. 그러다 성급히 먼저 땅으로 떨어진 낙엽도 있었습니다.“안녕, 나 먼저 떠난다.”친구는 바람을 타고 먼저 가을여행을 떠납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 갓 걷기 시작한 아기 마냥 뒤뚱이며 멀어져 갑니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더보기
시계에 없는 움직이지 않는 시간 [시계에 없는 움직이지 않는 시간] 시계는 쉬지 않고 시간을 생산하고 있고 나는 숨을 쉬듯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소비한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사는 동안 아무리 바쁘게 일을 해도 시간이 빨리 가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하고 청소하고 산책을 하고 가끔 책을 읽는 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꾸역꾸역 마셨다 소화도 시키지 못하고 뱉어내 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바쁘게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성실히 시계의 째깍거림에 발맞춰 살아가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의 리듬에 따라 가는 그는 언제나 갓 입대한 신병처럼 빠르고 신선했다. 이렇게 나와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그를 보면서 시간의 신 카이로스의 불공평함을 생각했다. 차라리 빨리 늙어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로 .. 더보기
비상구는 없었다 [비상구는 없었다] -거북이- 내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삶을 소중히 하고 살아 왔지만 교과서에 없는 많은 변수들이 길 곳곳에 지뢰처럼 박혀 있는 줄 알지 못했다. 얼마나 조심히 살아 왔던 상관없이 나는 10대의 끝에, 20대의 끝에, 30대의 끝에서 막다른 골목과 항상 마주해 있었다.골목 끝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때 나를 유혹했던 비상구들이 있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내게 열렸던 그 비상구들은 얄팍한 함정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10대의 골목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항상 시한폭탄과 같았던 그들은 입시를 앞둔 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각자의 길로 떠나버리셨다. 아버지의 보호아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