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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

인류 그 마지막은 [인류 그 마지막은] 지금은 서기 3014년. 인류는 2000년 이후 가파른 곡선으로 발전하고.. 발전하고..또 발전해서 세계적으로 거대한 물질문명을 이룩하였다. 신약의 개발로 스스로 생명을 연장 시켜나갔으며, 기계의 발달로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의 생산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류는 지구를 떠나 달 뿐 아니라 화성에까지 도시를 건설했고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중이다. 대리석의 100배의 강도를 가진 화성의 H16 암석으로 만들어진 강남 최고의 아파트, 거실의 스크린 모니터에서는 극한의 직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화성 안티노 계곡에서 H16을 캐고 있는 노동자들의 하루를 방영해주고 있었다. H16이 어떤 지진에도 비틀어지거나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고 나서 대기업들이 너나없이 우주채굴사업에 뛰어들고 있었다. .. 더보기
화푸세요 은정씨 [화푸세요 은정씨] 그녀는 뻐근한 어깨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제 평소보다 조금 많은 손님을 받은 탓일 것이다. 그녀는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 아파트 앞에 조그맣게 미장원을 차렸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보고자 한동안 접었던 일을 다시 시작 한 것이다. 큰돈은 되지 않았지만 일은 그녀에게 잠깐이나마 복잡한 일들을 잊게 해주었다. 일찍 일어난 그녀는 어머니의 방으로 갔다. 간밤에 대로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더니 엄마는 주무시지 못했는지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눈치다. “엄마 잘 주무셨어?” “얘야. 나 한잠도 못 잤다. 우리 조용한 데로 이사 가야겠다. 이러다 죽겠어.” “좀만 참아 봐요. 진오 대학가면 그때 상철이도 내.. 더보기
호두나무와 꿈 [호두나무와 꿈] 우리가 욕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지금 나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뒤늦게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우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은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작은 이랬다. 남편의 사업부가 돈을 벌지 못하면서 부서가 없어져야만 했다. 눈치가 빠른 그이는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로써 할 수 있는 준비가 뭐가 있겠는가? 가끔 로또를 사거나, 때론 주식시장을 기웃 거리며 한숨 밖에 더 짓겠는가. 결혼 10년 만에 겨우 장만한 집 한 채의 대출이 아직 남아있었고, 애 키우느라 바빴던 나는 다시 사회에 나갈 엄두가 생기지 않았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를 생각한다면 버.. 더보기
진통제 [진통제] -거북이- 끙끙 앓는 아버지의 소리에 그녀는 잠에서 깼다. 새벽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지만 그녀는 신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30여분이 지났을까 아버지는 진통제를 드시고 다시 잠이 드셨는지 서서히 밤의 정적 속에 모든 것이 묻혀만 가고 그녀도 스르륵 잠이 들었다. 찢어지는 알람소리에 그녀가 다시 눈을 뜬 것이 아침 6시였다. 무엇에 쫒긴 듯 후다닥 일어난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눈을 비벼 잠을 쫓았다. 그녀는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 이제는 밥도 먹지 못하고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아버지의 방문을 지나칠 때면 그녀는 무섭기만 했다. 어제 밤의 신음소리로 아버지가 살아는 계시겠지 생각할 뿐이었다.그녀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한번쯤은 아버지.. 더보기
친구 [친구] -거북이 순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초등학교 때 한반을 했던 말자와 짝이 되었다. 형제라곤 오빠들뿐이었던 덕에 성격이 괄괄했던 말자와는 한동네 살 때 까지만 해도 단짝처럼 지내다가 순자가 아랫마을로 이사를 가고 학년이 바뀌면서 둘은 멀어졌던 것이었다. 지금은 18살의 과년한 처녀가 다 되었지만 어릴 적 친구를 만나니 둘은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단짝이 되었다. 말자는 옛날과 변함이 없었고 여전히 선머슴처럼 왈가닥이었다. 언니와 둘뿐이었던 순자는 그런 말자가 좋았으며 방과 후에 함께 시내를 쏘다니기도 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먹으며 시시한 연예인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거리고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말자는 성격과는 다르게 하얀 피부, 커다란 눈에 동글동글한 얼굴형과 앵두같이 빨간 입술을 가진 천.. 더보기
나를 버리고 돌아서는 길 [나를 버리고 돌아서는 길] 회색빛으로 물든 뒷골목에 분열한 나를 버리고 돌아온다.모든 거추장스러운 감정들과 난해한 사상들우아하지 못했던 옛 기억까지 나는 아닌 밤 아무도 지나지 않는 그곳에 몰래 나를 버려두고 돌아선다. 나를 방황케 했던 그것이 꿈속에서 차마 그리워 질 수도 있겠지만몽유병처럼 어둔 거리를 헤매던 슬픈 그것을 밝은 빛을 내는 전신주 아래서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뒷골목 으슥한 그늘 아래거추장스러운 감정에 범벅이 된 나를 버린다. 아무도 거두지 않는 오래된 더미처럼세상에서 외면된 나와 마지막으로 마주섰다 돌아서 나온다.이제는 누구에게나 무뎌지기를 바라면서. 더보기
어느새 엄마와 닮아 있는 나 어느새 엄마와 닮아 있는 나 -거북이- 4개월 전 나는 임신을 하였고 새로운 삶이라는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드디어 나도 엄마가 되는 건가? 항상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엄마라는 역할을 드디어 할 수 있다는 것인가?상상속의 나는 자상한 엄마, 사랑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런 엄마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나는 부지런히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도 하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부모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약점을 닮지 않은 아이가 나오길 바라게 되었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위기는 속이 부대끼고 아파오면서 눈앞으로 다가왔다. 입덧이 끝나면서 위염이 재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잘 먹지를 못하고 살이 .. 더보기
쓸쓸한 밤거리를 걸으며 [쓸쓸한 밤거리를 걸으며] 바람이 차츰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여름내 태풍같이 자랐던 우리는 이제 떠날 때가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을 햇살은 따가워 졌지만 추워진 날씨 덕에 나무는 이제 물을 먹지 않습니다. 쪼르륵 하는 물소리가 끊기고 우리는 신록을 벗고 빛나는 노란색 수트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찌르는 가을 해를 맞으며 더 가볍고 바스락하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이제는 나무를 떠나 자유로이 떠다닐 수 있는 앞으로의 여행을 기대하며 바람 따라 너울거립니다. 그러다 성급히 먼저 땅으로 떨어진 낙엽도 있었습니다.“안녕, 나 먼저 떠난다.”친구는 바람을 타고 먼저 가을여행을 떠납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 갓 걷기 시작한 아기 마냥 뒤뚱이며 멀어져 갑니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더보기
시계에 없는 움직이지 않는 시간 [시계에 없는 움직이지 않는 시간] 시계는 쉬지 않고 시간을 생산하고 있고 나는 숨을 쉬듯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소비한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사는 동안 아무리 바쁘게 일을 해도 시간이 빨리 가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하고 청소하고 산책을 하고 가끔 책을 읽는 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꾸역꾸역 마셨다 소화도 시키지 못하고 뱉어내 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바쁘게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성실히 시계의 째깍거림에 발맞춰 살아가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의 리듬에 따라 가는 그는 언제나 갓 입대한 신병처럼 빠르고 신선했다. 이렇게 나와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그를 보면서 시간의 신 카이로스의 불공평함을 생각했다. 차라리 빨리 늙어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로 .. 더보기
비상구는 없었다 [비상구는 없었다] -거북이- 내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삶을 소중히 하고 살아 왔지만 교과서에 없는 많은 변수들이 길 곳곳에 지뢰처럼 박혀 있는 줄 알지 못했다. 얼마나 조심히 살아 왔던 상관없이 나는 10대의 끝에, 20대의 끝에, 30대의 끝에서 막다른 골목과 항상 마주해 있었다.골목 끝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때 나를 유혹했던 비상구들이 있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내게 열렸던 그 비상구들은 얄팍한 함정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10대의 골목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항상 시한폭탄과 같았던 그들은 입시를 앞둔 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각자의 길로 떠나버리셨다. 아버지의 보호아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 더보기